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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59>
정충신이 궁궐로 들어서는데 마침 이이첨을 만났다.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겸임하는 막강 권력의 실세답게 그는 도포 자락을 한껏 제껴가며 걷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도승지 한찬남이 따랐다. 두 사람은 동갑나기로 핵심 요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욱조(六曹)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몇 달 전 해주옥사(1616년)를 해치운 해결사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그 끌탕을 보고하기 위해 어전을 찾았던 것이고, 왕의 두터운 신임을 재확인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해주옥사란 이이첨·한찬남이 반대파인 박승종·유희분 등 소북 세력을 제압한 사건이다.
이이첨 정인홍 한찬남 대북 세력은 소북 세력인 황신·남이공이 황해도로 귀양간 때에 “구월산에 큰 도적이 숨어있다”는 악소문을 퍼뜨리고, 그 배후에서 황신 박승종 유희분 이이첨이 모반을 꾸미고 있다고, 행실이 나쁜 건달 박이빈·박희일 등을 시켜 투서하게 했다. 역모에 이이첨의 이름까지 포함된 것은 범죄 사실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이 사실을 박이빈이 그대로 황해 감영을 찾아 고변했는데, 이이첨까지 무고해 생사람까지 잡는다고 해서 황신과 박이빈이 주살되었다. 황해목사 최기는 박이빈 등의 공초(供招:범죄 사실을 진술) 내용을 “흉서에 이름이 오른 자는 모두 외척 대신(인목대비의 인척)의 실세한 자다”라는 내용으로 고치려 했다. 인목의 친인척은 무조건 배척대상이었으니 그렇게 조작하려 했던 것인데, 그 역시 역모의 괴수라는 대역죄로 고문을 못이기고 장독(杖毒)에 죽었다.
이렇게 해서 경쟁 세력인 소북 세력을 하나하나 제압하고 대북 세력이 국가권력의 핵심부에서 전횡을 휘둘렀다. 결국 광해의 왕권도 이들 이이첨 세력의 신권(臣權)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이첨은 모처럼 기분좋게 한찬남과 술 한잔 걸칠 마음으로 대궐을 빠져나오려는데 정충신을 만났다. 그는 기분이 확 상한 태도로 물었다.
“정 궐위장이 여기 무슨 일인가?”
“상감마마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나도 익히 알고 있지. 그래 백사 대감의 밑자리가 그렇게도 걸더란 말인가?”
“무슨 말씀이시오?”
정충신이 불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백사 대감이 사람 모으는 재주는 대단하지만, 지금 시국이 그럴 때인가? 중신들은 물론 이시백 최명길과 같은 제자들이 청파 사노 집에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다면서?”
“백발의 어르신이 귀양을 가는데 이별의 정도 못나눈단 말이오?”
“붕당이야 막을 수 없지만 세를 결집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어머니를 내치지 말라는 것이 중죄요?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대역죄인이나 되는 듯이 몰아붙이고, 북변으로 귀양을 보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요? 선왕 시절부터의 충신을 이렇게 개망신시킬 수 있소? 비정하지 않소?”

“이런 개새끼가 있나?”
한찬남이 버럭 화를 내며 한 대 갈길 태세를 취했다. 이때 이이첨이 막았다.
“아서. 정 궐위장의 기개 하나만은 높이 사겠네. 그러니 백사 대감도 정 궐위장을 수제자로 여기시는 것이지. 참으로 사제의 의리 하나만은 인정하겠네. 하지만 국가대사를 이끌어가는 데는 사사로운 정이 있을 수 없지.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이듯이 또다른 태양이 떠오르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네. 어서 돌아가시게.”
“상감마마를 알현해야 합니다.”
“아닐세. 내가 대신 전하겠네. 도승지 어른과 언쟁을 했다는 것이 들어가면 정 궐위장이 곤란해져. 내가 대신 말씀 올려서 산수좋은 유배지로 모시도록 하겠네.”
“그럼 기왕이면 남쪽으로 보내주세요. 해남 강진 완도 진도 쪽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들은 정충신을 돌려보내고 다시 대전으로 들어갔다. 임금을 마주한 이이첨과 한찬남이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이첨이 말했다.
“백사 이항복 대감의 집에는 중신은 물론 무인과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있습니다. 한시라도 지체하면 난이 날까 두렵사옵니다. 금방 정충신 공궐위장이 다녀갔던 바, 불만을 잔뜩 늘어놓아 상감마마께 불민을 저지를까 저어되어서 달래서 보냈나이다.”
“그래?” 왕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도성에 둘수록 시끄럽습니다. 화근을 미리 없애기 위해서는 먼 관북지방으로 배소를 고쳐 명하십시오. 삼수나 북청이 최적지입니다. 그래야 왕래를 완전 끊을 수 있습니다.”
“알았도다.”
상감은 이이첨·한찬남의 거듭된 간언에 지쳐서 명을 내렸다. 백사를 압령(押領)하기 위해 금부도사 이숭의가 청파로 달려갔다. 사노의 집 마당에 이르자 이숭의가 소리쳤다.
“죄인 이항복은 어명을 받들라! 대역죄인 이항복은 날이 밝거든 관북의 북청으로 이거하라! 단 유배소의 위리안치는 면한다!”
정충신이 요청한 남쪽 유배는 성사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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