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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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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61>
금부도사 이숭의가 흠칠 놀랐다. 뜻밖의 역공인지라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당해보지 못한 금부도사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다. 금부도사라면 왕명을 집행하는 막강 권세를 자랑하는 신분이다. 의금부에 속하여 임금의 특명에 따라 배역자를 잡아 신문(訊間)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5품 관직인데, 벼슬로는 높지 않지만 궁궐 내에서 왕명을 따르고 있으니 권세는 막강했다. 이들이 형을 집행할 때 기분에 따라 참혹하게 고문해 죽이기도 하고,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이기도 하는 특권을 갖고 있었으니 사대부들도 자칫 잘못 걸려들면 골로 간다고 떨었다.

정충신의 역공에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이숭의가 곧 정신을 차리더니 꾸짖었다.
“나에게 칼을 빼들었겄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금부도사를 호위하고 있던 병졸들이 창과 칼을 겨누어 정충신에게 다가섰다. 정충신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턱 버티고 서있자 그 기세에 놀라면서도 이숭의가 외쳤다.
“이놈, 칼을 거두라! 뒷골목 패거리처럼 생떼를 쓰면 한 칼에 가는 수가 있다!”
“왕명에도 눈물이 있는 법, 당신은 어찌 피눈물도 없나? 세조대왕 시절 금부도사 왕방연의 일도 잊었는가? 그는 왕명을 받잡고 어린 단종대왕께 사약을 내리러 영월에 갔으나 감히 사약을 올리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을 때, 단종대왕을 모시던 공생(貢生:향교의 심부름꾼) 복득이란 자가 활시위로 목을 졸라 16세의 어린 단종대왕을 대신 죽였다. 왕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지만 왕방연은 눈물이 있어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약을 차마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후대에 그를 왕명을 거슬렸다고 비난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칭송하였도다. 거기서 배운 바가 없는가? 백사 대감이 불충을 하셨대도 훗날 돌아보면 그가 바로 충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릇된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 끝내 가문의 후사가 평탄치 못할 것이다!”
너무도 당당하게 누구도 범접치 못할 말을 하니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숭의도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어제의 햇볕이 오늘의 그늘이 되고, 오늘의 그늘이 내일의 햇살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신(功臣)과 공적(公敵)은 종잇장 한장 차이다.
“도중에 길주로 가는 기자헌 역당과 만날까 염려되니 고향집에 이틀 유숙하기를 허한다.”
이숭의가 꾀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사사로운 유정(有情) 때문이 아니라 유배길에 나선 기자헌과 길을 비켜간다는 이유를 내세워 백사의 행렬을 고향집에 머물게 한 것이다.
정월 열여드레 날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냇가의 얼음장을 깨는데 도끼로 무수히 얼음장을 내리찍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무서운 추위였다. 오줌을 누면 소변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눈밭에 바스러졌다. 회양(원산 인근)부사 이숙명, 선비 조원방, 뒤늦게 안변 인근의 이천(伊川)에서 쫓아온 돈시 이시백, 포천에서부터 따라온 백사의 자제와 친족, 생질인 토산군수 유부 등 십여명이 소요령에 이르러 이별했다. 회양부의 속가에 숙박하는데 먼저 귀양을 온 사간원 정언 강대진과 유문석이 어둠을 틈타 찾아와 귀양살이 지혜를 말해주었다.
“정국이 변하여 대세가 기울면 의정부의 정승이라도 능멸과 모욕을 받게 되는데, 그래도 뒤바뀔 가망이 있는 처지에 있을까 하여 지방수령이 은밀히 먹을 것을 보내고, 아전들이 몰래 찾아오는 수가 있고. 그러나 근본이 외롭고 변변찮아 앞길이 보이지 않는 자는 모욕과 학대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교분을 나누고 정의가 두터웠던 자가 능멸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보다 배나 속을 끓이게 됩니다. 허나 잊으십시오. 도저히 잊을 수 없겠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 잊으십시오.”
“걱정되는 것이 연좌법인데, 내 자식들 대가 피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오.”
백사는 무엇보다 후대가 염려되었다. 굴복할 수 없었지만 그것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지요. 가장 큰 것이 연좌법인데 삼족, 즉 위로는 아버지 형제에 미치니 이는 조족(祖族)이요, 옆으로는 형제와 그 소생에게 미치니 이는 부족(父族)이요, 아래로는 아들 및 손자에게 미치니 이는 기족(己族:자기 친속)이라 멸문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 처족까지 미치니 어찌할 수가 없나이다. 당쟁의 화가 미친 이래, 이른바 역적이라는 것이 사실인 경우도 있고 원통한 경우도 있소이다. 원통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아버지 형제나 아들들과 조카들이 무슨 죄가 있소이까. 더구나 부녀자까지 노비의 신분으로 만들어 모질지 못한 성격 때문에 자결하지 못하는 것인데, 인인군자(仁人君子)로서는 이들을 측은하게 여겨야 마땅한데 요즘 풍속이 경박하여 무릇 희롱의 대상이 됩니다. 부녀자로서 노비가 된 자는 반드시 점고(點考)를 받게 하는데, 이에 따라서 그 여자들의 얼굴이 예쁜지 어떤지 엿보고 있소이다. 곤궁할 때에 받은 감동은 골수에 새겨지기 마련이고, 곤궁할 때에 받은 원망 또한 골수에 새겨집니다. 통한의 세상이오.”<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일부 인용>
“참으로 추한 세상이로다.” 백사는 이렇게 속으로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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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61>
금부도사 이숭의가 흠칠 놀랐다. 뜻밖의 역공인지라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당해보지 못한 금부도사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다. 금부도사라면 왕명을 집행하는 막강 권세를 자랑하는 신분이다. 의금부에 속하여 임금의 특명에 따라 배역자를 잡아 신문(訊間)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5품 관직인데, 벼슬로는 높지 않지만 궁궐 내에서 왕명을 따르고 있으니 권세는 막강했다. 이들이 형을 집행할 때 기분에 따라 참혹하게 고문해 죽이기도 하고,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이기도 하는 특권을 갖고 있었으니 사대부들도 자칫 잘못 걸려들면 골로 간다고 떨었다.

정충신의 역공에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이숭의가 곧 정신을 차리더니 꾸짖었다.
“나에게 칼을 빼들었겄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금부도사를 호위하고 있던 병졸들이 창과 칼을 겨누어 정충신에게 다가섰다. 정충신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턱 버티고 서있자 그 기세에 놀라면서도 이숭의가 외쳤다.
“이놈, 칼을 거두라! 뒷골목 패거리처럼 생떼를 쓰면 한 칼에 가는 수가 있다!”
“왕명에도 눈물이 있는 법, 당신은 어찌 피눈물도 없나? 세조대왕 시절 금부도사 왕방연의 일도 잊었는가? 그는 왕명을 받잡고 어린 단종대왕께 사약을 내리러 영월에 갔으나 감히 사약을 올리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을 때, 단종대왕을 모시던 공생(貢生:향교의 심부름꾼) 복득이란 자가 활시위로 목을 졸라 16세의 어린 단종대왕을 대신 죽였다. 왕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지만 왕방연은 눈물이 있어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약을 차마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후대에 그를 왕명을 거슬렸다고 비난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칭송하였도다. 거기서 배운 바가 없는가? 백사 대감이 불충을 하셨대도 훗날 돌아보면 그가 바로 충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릇된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 끝내 가문의 후사가 평탄치 못할 것이다!”
너무도 당당하게 누구도 범접치 못할 말을 하니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숭의도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어제의 햇볕이 오늘의 그늘이 되고, 오늘의 그늘이 내일의 햇살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신(功臣)과 공적(公敵)은 종잇장 한장 차이다.
“도중에 길주로 가는 기자헌 역당과 만날까 염려되니 고향집에 이틀 유숙하기를 허한다.”
이숭의가 꾀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사사로운 유정(有情) 때문이 아니라 유배길에 나선 기자헌과 길을 비켜간다는 이유를 내세워 백사의 행렬을 고향집에 머물게 한 것이다.
정월 열여드레 날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냇가의 얼음장을 깨는데 도끼로 무수히 얼음장을 내리찍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무서운 추위였다. 오줌을 누면 소변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눈밭에 바스러졌다. 회양(원산 인근)부사 이숙명, 선비 조원방, 뒤늦게 안변 인근의 이천(伊川)에서 쫓아온 돈시 이시백, 포천에서부터 따라온 백사의 자제와 친족, 생질인 토산군수 유부 등 십여명이 소요령에 이르러 이별했다. 회양부의 속가에 숙박하는데 먼저 귀양을 온 사간원 정언 강대진과 유문석이 어둠을 틈타 찾아와 귀양살이 지혜를 말해주었다.
“정국이 변하여 대세가 기울면 의정부의 정승이라도 능멸과 모욕을 받게 되는데, 그래도 뒤바뀔 가망이 있는 처지에 있을까 하여 지방수령이 은밀히 먹을 것을 보내고, 아전들이 몰래 찾아오는 수가 있고. 그러나 근본이 외롭고 변변찮아 앞길이 보이지 않는 자는 모욕과 학대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교분을 나누고 정의가 두터웠던 자가 능멸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보다 배나 속을 끓이게 됩니다. 허나 잊으십시오. 도저히 잊을 수 없겠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 잊으십시오.”
“걱정되는 것이 연좌법인데, 내 자식들 대가 피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오.”
백사는 무엇보다 후대가 염려되었다. 굴복할 수 없었지만 그것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지요. 가장 큰 것이 연좌법인데 삼족, 즉 위로는 아버지 형제에 미치니 이는 조족(祖族)이요, 옆으로는 형제와 그 소생에게 미치니 이는 부족(父族)이요, 아래로는 아들 및 손자에게 미치니 이는 기족(己族:자기 친속)이라 멸문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 처족까지 미치니 어찌할 수가 없나이다. 당쟁의 화가 미친 이래, 이른바 역적이라는 것이 사실인 경우도 있고 원통한 경우도 있소이다. 원통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아버지 형제나 아들들과 조카들이 무슨 죄가 있소이까. 더구나 부녀자까지 노비의 신분으로 만들어 모질지 못한 성격 때문에 자결하지 못하는 것인데, 인인군자(仁人君子)로서는 이들을 측은하게 여겨야 마땅한데 요즘 풍속이 경박하여 무릇 희롱의 대상이 됩니다. 부녀자로서 노비가 된 자는 반드시 점고(點考)를 받게 하는데, 이에 따라서 그 여자들의 얼굴이 예쁜지 어떤지 엿보고 있소이다. 곤궁할 때에 받은 감동은 골수에 새겨지기 마련이고, 곤궁할 때에 받은 원망 또한 골수에 새겨집니다. 통한의 세상이오.”<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일부 인용>
“참으로 추한 세상이로다.” 백사는 이렇게 속으로 읊조렸다.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61>
금부도사 이숭의가 흠칠 놀랐다. 뜻밖의 역공인지라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당해보지 못한 금부도사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다. 금부도사라면 왕명을 집행하는 막강 권세를 자랑하는 신분이다. 의금부에 속하여 임금의 특명에 따라 배역자를 잡아 신문(訊間)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5품 관직인데, 벼슬로는 높지 않지만 궁궐 내에서 왕명을 따르고 있으니 권세는 막강했다. 이들이 형을 집행할 때 기분에 따라 참혹하게 고문해 죽이기도 하고,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이기도 하는 특권을 갖고 있었으니 사대부들도 자칫 잘못 걸려들면 골로 간다고 떨었다.
정충신의 역공에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이숭의가 곧 정신을 차리더니 꾸짖었다.
“나에게 칼을 빼들었겄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금부도사를 호위하고 있던 병졸들이 창과 칼을 겨누어 정충신에게 다가섰다. 정충신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턱 버티고 서있자 그 기세에 놀라면서도 이숭의가 외쳤다.

“이놈, 칼을 거두라! 뒷골목 패거리처럼 생떼를 쓰면 한 칼에 가는 수가 있다!”
“왕명에도 눈물이 있는 법, 당신은 어찌 피눈물도 없나? 세조대왕 시절 금부도사 왕방연의 일도 잊었는가? 그는 왕명을 받잡고 어린 단종대왕께 사약을 내리러 영월에 갔으나 감히 사약을 올리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을 때, 단종대왕을 모시던 공생(貢生:향교의 심부름꾼) 복득이란 자가 활시위로 목을 졸라 16세의 어린 단종대왕을 대신 죽였다. 왕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지만 왕방연은 눈물이 있어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약을 차마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후대에 그를 왕명을 거슬렸다고 비난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칭송하였도다. 거기서 배운 바가 없는가? 백사 대감이 불충을 하셨대도 훗날 돌아보면 그가 바로 충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릇된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 끝내 가문의 후사가 평탄치 못할 것이다!”
너무도 당당하게 누구도 범접치 못할 말을 하니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숭의도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어제의 햇볕이 오늘의 그늘이 되고, 오늘의 그늘이 내일의 햇살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신(功臣)과 공적(公敵)은 종잇장 한장 차이다.
“도중에 길주로 가는 기자헌 역당과 만날까 염려되니 고향집에 이틀 유숙하기를 허한다.”
이숭의가 꾀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사사로운 유정(有情) 때문이 아니라 유배길에 나선 기자헌과 길을 비켜간다는 이유를 내세워 백사의 행렬을 고향집에 머물게 한 것이다.
정월 열여드레 날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냇가의 얼음장을 깨는데 도끼로 무수히 얼음장을 내리찍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무서운 추위였다. 오줌을 누면 소변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눈밭에 바스러졌다. 회양(원산 인근)부사 이숙명, 선비 조원방, 뒤늦게 안변 인근의 이천(伊川)에서 쫓아온 돈시 이시백, 포천에서부터 따라온 백사의 자제와 친족, 생질인 토산군수 유부 등 십여명이 소요령에 이르러 이별했다. 회양부의 속가에 숙박하는데 먼저 귀양을 온 사간원 정언 강대진과 유문석이 어둠을 틈타 찾아와 귀양살이 지혜를 말해주었다.
“정국이 변하여 대세가 기울면 의정부의 정승이라도 능멸과 모욕을 받게 되는데, 그래도 뒤바뀔 가망이 있는 처지에 있을까 하여 지방수령이 은밀히 먹을 것을 보내고, 아전들이 몰래 찾아오는 수가 있고. 그러나 근본이 외롭고 변변찮아 앞길이 보이지 않는 자는 모욕과 학대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교분을 나누고 정의가 두터웠던 자가 능멸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보다 배나 속을 끓이게 됩니다. 허나 잊으십시오. 도저히 잊을 수 없겠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 잊으십시오.”
“걱정되는 것이 연좌법인데, 내 자식들 대가 피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오.”
백사는 무엇보다 후대가 염려되었다. 굴복할 수 없었지만 그것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지요. 가장 큰 것이 연좌법인데 삼족, 즉 위로는 아버지 형제에 미치니 이는 조족(祖族)이요, 옆으로는 형제와 그 소생에게 미치니 이는 부족(父族)이요, 아래로는 아들 및 손자에게 미치니 이는 기족(己族:자기 친속)이라 멸문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 처족까지 미치니 어찌할 수가 없나이다. 당쟁의 화가 미친 이래, 이른바 역적이라는 것이 사실인 경우도 있고 원통한 경우도 있소이다. 원통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아버지 형제나 아들들과 조카들이 무슨 죄가 있소이까. 더구나 부녀자까지 노비의 신분으로 만들어 모질지 못한 성격 때문에 자결하지 못하는 것인데, 인인군자(仁人君子)로서는 이들을 측은하게 여겨야 마땅한데 요즘 풍속이 경박하여 무릇 희롱의 대상이 됩니다. 부녀자로서 노비가 된 자는 반드시 점고(點考)를 받게 하는데, 이에 따라서 그 여자들의 얼굴이 예쁜지 어떤지 엿보고 있소이다. 곤궁할 때에 받은 감동은 골수에 새겨지기 마련이고, 곤궁할 때에 받은 원망 또한 골수에 새겨집니다. 통한의 세상이오.”<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일부 인용>
“참으로 추한 세상이로다.” 백사는 이렇게 속으로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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