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수 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걷고 싶은 광주 만들기
노경수(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직립보행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자 특권이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자동차와 빌딩, 지하도, 고가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힌 도심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걷는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차량의 주행권 못지않게 보행권도 소중하다는 인식은 1990년대 초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자동차보다 사람이 주인 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육교 철거, 횡단보도 설치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사람과 자동차 사이의 힘겨루기는 지난 1997년 말 뉴욕의 맨해튼 한복판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맨해튼의 차량 주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무단횡단을 막기 위해 차도와 보도 사이에 울타리를 쳤고, 우회전 차량의 대기로 인한 정체를 줄이려고 교차로마다 횡단보도를 하나씩 폐쇄해갔다. 하지만 이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행자 뉴요커들이 승리하였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도시들은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변화되는 흐름 속에 있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초기의 노력은 보행자의 접근과 안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도시미관을 위한 계획인 보도블록(bricks)과 현수막(banners), 거리공연장(bandstands), 볼라드(bollards), 둔턱(berms)을 설치하는 유명한 ‘5B’ 프로젝트도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도시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보도, 횡단보도 신호등, 가로등, 쓰레기통 등과 같은 거리 시설물을 설치하고 개선하는 일에 많은 비용과 인력을 소모했다. 그런데 왜 보행자 거리는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것일까?
유럽의 유서 깊은 유명한 관광도시를 걷다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도시들이 보행자에게 그다지 안전하거나 편리한 도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보행에 장애물도 많고 무질서한 이 거리를 왠지 모르게 걷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관례적으로 생각하는 ‘보행 친화적’ 기준을 별로 충족시키지 못한 이 어수선한 도시들이 어떻게 보행자들의 천국이 되었을까? 그것은 도시 속에서 여러 상징물과 거리, 블록, 건물이 한데 어우러진 ‘조직(fabric)’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매우 뛰어난 도시 조직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도시 분위기가 보행자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제프 스펙은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라는 책에서 보행 친화적 도시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유용성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장소들을 가까운 거리에 두어 걷기의 생활화를 의미한다. 둘째, 안전성은 보행자가 안전한 거리를 조성하여 실제로도 안전하고 보행자가 보호받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셋째, 편안함은 도시의 도로를 내 집의 일부같이 만드는 것이다. 넷째, 흥미로움은 친숙하면서도 특색 있는 건물을 이용해 매력 있는 거리를 조성한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먹자거리, 식자재 마트, 학교, 관공서, 도서관, 체육관 등 생활 SOC에 모두 걸어서 도달할 수 있도록 도시를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첫 번째 조건인 유용성이며 ‘압축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보행거리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게 입구 수를 많이 배치해, 걸어갈 때 다채로운 볼거리 체험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업 시설이 점차 대형화되고 실내 공간에서 놀이·휴식·쇼핑 등을 모두 해결하려 한다. 그로 인해 거리와 외부 공간은 보행자와 점점 멀어지고 22일 이용섭 시장이 많은 시민과 함께 광주역 앞에서 출발하여 남광주시장을 지나 동성중까지 푸른길 공원 8.0km 전 구간을 완주하는 사진으로 보았다. 도시공원과 걷기의 중요성을 직접 실천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근사했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첫 사업인 자동차공장 합작법인 설립이 순항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광주로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필요조건이라면, ‘걷고 싶은’ 도시는 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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