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상 동신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의 남도일보 화요세평
나주 SRF 9차 거버넌스 회의를 마치고
조진상 (동신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지난 6월 17일 나주 SRF 9차 거버넌스 회의가 열렸다. 2달간의 교착 국면이 지속되었던 터라 긴장반 기대 반의 회의였다. 어김없이 팽팽한 줄다리기와 설전이 있었지만 다른 때보다 원만하게 진행됐다. 타협과 절충 가운데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다. 지난 1월 초 거버넌스 출범 이래 6개월 만에 어렵게 합의안 작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의견 접근의 골자는 2개월의 준비 기간, 1개월의 시험가동으로 환경 영향을 조사한다. 5km 이내 법정 동·리 주민을 대상으로 주민투표 70%, 숙의형 공론화 30%를 반영한 주민수용성 조사를 통해 SRF 가동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직 합의안이 최종 타결되지는 않았다. 양측의 본진에 돌아가서 의견을 수렴·조율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달리 큰 문제가 없다면 10차 회의에서 합의안에 서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회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거버넌스는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해체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9차 회의안이 수용된다고 가정해 보자. 다 지어진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 방식에 의해 최종 가동 여부를 결정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그동안 주민투표가 몇 번 있었다. 사업이 취소된 사례도 있다. 남해군의 화력발전소 건설 사례가 그렇다. 그러나 모두 계획단계에 있거나 공사 중인 경우였다. 다 지어진 경우는 없었다.
나주 SRF는 우리나라 주민 환경운동 중에서 가장 많은 집회를 한 환경운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지난 6월 13일 마지막 집회 기준 시운전 이후 1년 10개월 동안 87회의 집회가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 한겨울 혹한의 추위속에서도 매주 계속되었다. 아마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하면 바로 인정받지 않을까? 집회는 물리적 충돌없이 법의 테두리속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주 SRF 주민 운동은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일환으로 타 도시에서 이주한 새 주민과 그동안 나주에서 살아왔던 원주민이 힘을 합쳐 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문화적 이질감과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뜻을 같이해 왔다. 특히 7개 읍면동 대책위를 중심으로 토박이 농촌 주민의 수년간에 걸친 투쟁과 노력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나주 SRF 거버넌스는 산자부, 전라남도, 나주시, 한난, 범대위(주민)가 모두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5자 간 합의 구조다. 복잡하고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협상 과정은 지난하고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때로 고성이 오가기도 한 치 양보 없는 설전과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기도 했다. 오랫동안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지루한 샅바 싸움이 계속되기도 했다.
살얼음판 같은 협상 테이블 속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상생의 해결 대안을 찾고 절충·타협안을 모색하는 데 지혜를 모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산자부와 전라남도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시험가동 없는 환경 영향조사가 큰 쟁점이 되었다. 4·11 한난앞 대규모 시민 집회와 6·13 나주시청 앞 집회에도 불구하고 안전 문제, 기술적 문제, 책임 문제로 반드시 시험가동을 해야 한다는 한난측과 2년 전 시운전 때의 악몽을 떠올려야만 하는 주민 입장의 현격한 차이로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곤 했다.
현재 상황이 타개되지 않으면 주민들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길거리 투쟁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오늘 저녁 주민들은 거버넌스 보고대회를 갖는다. 지난 9차 회의의 협상안을 놓고 수용할 것인지 새로운 강경 투쟁의 길로 나설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나주 SRF 주민운동은 촛불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쓰레기 연료의 선택이나 대기오염물질의 배출 같은 환경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잘못된 정치 관행과 행정행위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9차 회의결과를 받아 들이더라도 주민들 앞에는 객관적인 환경영향조사와 공정한 주민투표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주민 대표들에게는 모함, 이간질, 계략, 갈등과 대립 등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주 SRF는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주의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듯이 건전한 지방자치도, 깨끗한 공기와 환경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시민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하고 뭉치는 것만이 SRF 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이고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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