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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65>
귀양지를 지키는 병사가 조보(朝報:조정의 소식)를 가져왔다. 조보에는 인목대비에 대한 정청(庭請)이 완결되었음을 고지하고 있었다. 정청이란 국가에 중대사가 있을 때 세자 또는 의정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정(宮庭)에 이르러 계를 올리고 전교를 기다리는 일이다. 내용은 인목대비의 존호를 삭제하고 ‘대비’ 두 자를 버리고, 서궁(덕수궁)에 유폐시켜 단지 ‘서궁’이라 부르라는 교서다.
“역모사건을 다스리는 것이 죄의 형편을 알아보지도 않고 편견에 의하여 엄하게만 다스리고 있으니 인목대비 폐위를 청한 무리들이 실제로는 큰 역적이다. 내가 아는 가까운 사람들 중에도 폐비를 주장하는 정청에 참여한 자가 있으니 한심스럽구나.”
백사는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난폭한 일들로 하여 장차 임금에게 큰 화가 미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예법의 나라에서 예의범절을 치는 것은 치명적인 화근의 근거가 된다.
“상감마마의 드높은 기상이 망쳐질 것 같아 안타깝구나.”
그는 간신배의 무리들이 왕권을 넘어섰다고 속을 끓였다. 마음을 상하니 기력이 쇠해지고, 풍기(風氣)마저 더해져 백사는 손발이 마비되기까지 했다. 정충신이 스승을 따라온 것은 단순한 수발을 드는 것이 아니요, 참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인데, 궁중 사정을 잘 모르니 답답했다.
이항복은 조섭(調攝:병 치료를 위하여 몸을 보양하는 것)을 회피했다. 신임 판관 조정립이 부임해 왔다는 말을 듣고 그는 더욱 절망했다. 판관이 교체된 것은 두말할 것없이 그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조정립은 대북 정인홍의 문하생으로 간관(諫官)으로 있을 때, 백사를 모함하고 공격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귀양지까지 이게 뭔가.”
정충신이 주먹을 불끈 쥐고 복수할 태세를 갖추자 백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서. 조정립은 요사하고 간사한 역적 무리의 한 사람이나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되었다. 나를 감시 차 온 것이니 나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바라건대 항상 몸과 마음을 반듯하게 해야 할 일이다. 새 판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수성 찰방 정양윤, 온성 판관 김호가 북청에 도착했다. 그들은 대간(臺諫;사헌부의 관직)으로 재임하면서 백사를 원악지로 귀양 보내자고 주장한 무리들이다. 이이첨에게 아첨하고 인목대비 폐비를 반대한 무리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특차되어 고급 지방 관속으로 승진한 사람들이었다. 백사는 온 몸이 묶인 신세라는 것을 알았다. 귀양을 왔어도 중앙정치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정양윤과 김호가 백사를 찾아와 문안을 드렸다.
“저희들은 대감을 원악지로 귀양 보내도록 주장한 바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금 대감을 뵙게 되니 묘한 인연인가 합니다. 지난해의 일이 어찌 저희들 본심에서 한 일이겠습니까. 한 목숨 부지하고자 죽기 싫어서 했던 일이오이다. 대비 폐위 문제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대북 세력이 무서워 누구 하나 그들의 주장에 거부하는 사람이 없었나이다. 한 치의 혀끝을 잘못 놀리면 죽음에 이르는 형편이니 어느 누가 바른말을 하거나,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는 저희가 신분을 감추고 임지로 부임하고 대감을 찾지 않으려 했으나 양심상 그럴 수 없어서 찾아뵈었나이다. 대감의 귀양살이가 지방 관속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진 행적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고 있나이다. 저희의 실책을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한 그들이 백사의 병색을 동정하였다. 백사가 말이 없자, 그것이 섭섭했던지 정양윤이 나섰다.
“대감, 한 말씀 주셔야지요.”
백사가 말없이 지필묵을 꺼내어 딱 두 글자를 써주었다.
“위민(爲民)이라...”
글자를 내려다보던 김호가 읊조렸다. 그들은 더욱 머리를 수그렸다.
첩첩산중 북관 땅에도 봄이 완연하여 비탈의 밭고랑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병사가 백사를 위해 거처 서쪽에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띠짚 정자를 세웠다. 백사는 중풍이 재발한 뒤로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문밖 출입을 멀리했다.
병사가 찾아와 문안을 올리고 말했다.
“북청 성안에 도경당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도경당의 연못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연못을 덮었고, 배꽃 향기가 그윽합니다. 함께 나가시지요.”
“고맙지만 내 발로는 나가지 않겠소. 나라에 어려운 일을 당하여 바른 직언을 한 죄로 귀양온 죄인이 한가롭게 구경이나 다녀서야 되겠소? 불의를 보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요, 의리와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 많아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는데 임금의 용포가 어울린다든지, 걷는 품새가 아름답다는 따위로 아첨하니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소이다. 대궐이 둘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삼공(三空)이 이미 오래되어 왜나라나 오랑캐 무리에게 침략의 기회를 주었으니 나라가 패망할 징조가 임박하였소.”
삼공이란 농토가 텅 비고[田野空], 조정에 인재가 텅 비고[朝廷空], 창고가 텅 비는[倉?空] 것을 말하고, 서로 증오(證悟)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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