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농인-남도愛 산다 <6>영암 이영호·신순희씨 부부

귀농 초기 달방신세…전남 최초 애플수박으로 ‘승부수’

고물·폐지줍고 일용직까지 생계형 노동 ‘물불 안가려’

우울증 아내 위해 ‘시골행’ 결심…고난의 유일한 돌파구

“귀농에 대한 부푼 기대 접어두고 소확행 쫓는 게 이상적”
 

연이은 사업 실패와 육아로 인해 우울증까지 앓았던 이영호(49)·신순희(45)씨 부부는 귀농 초기 달방살이를 하며 전전긍긍했지만 전문 농업경영인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애플수박 6동과 한우 70여마리를 키우며 연 매출 8천만원을 올려 영암군의 귀농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애플수박 6동과 한우 70여마리를 키우며 영암군의 귀농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신순희·이영호씨 부부..

지난 2011년 전남 영암군 서호면으로 귀농해 애플수박 농장과 한우 축사를 운영하는 이영호(49)·신순희(45)씨 부부는 올해로 8년 차 베테랑 귀농인이다. 나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귀농 생활 안정기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우스갯소리로 ‘브라보 마이 귀농 라이프’라고 외치는 그들에게도 뼈 시린 풍파는 있었다. 서울에서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도시 생활의 일상에 지쳐 우울증까지 앓았던 아내. 귀농은 그들에게 닥친 고난의 유일한 돌파구였지만 여느 귀농인들과 다를 것 없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사전에 체계적인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귀농을 결정한 터라 3년 차까진 모텔촌을 돌며 ‘달방살이’를 했고 통장잔고는 얼마 못 가 바닥을 쳐 ‘텅장(텅텅 빈 통장)’이 됐다. 입에 풀칠하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득달같이 고물과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이런 극악의 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그들은 자연 속 풍류를 즐기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자는 신념 하나는 고수하자고 다짐했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귀농 5년 차만에 전남 최초 애플수박 농가를 운영하게 됐으며 이듬해엔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번듯한 집도 갖게 됐다.

지금은 애플수박 비닐하우스 6동(3천490㎡)을 운영하고 한우 70마리를 키우면서 연 매출 8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부농이 돼 영암군의 귀농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과처럼 깎아 먹을 수 있는 애플수박.
‘전남 최초 애플수박 농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당도와 품질면에서 월등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이영호씨 부부가 재배하는 애플수박.

▶무한불성(無汗不成)=무한불성(無汗不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이씨 부부는 입을 모아 8년간의 귀농 생활을 이렇게 일축했다. 신씨는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잘 나가는 사무직 근로자로 일했다. 사내에선 일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회사 임원들의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했지만, 그에겐 일과 함께 연년생인 세 자녀의 육아를 병행하기란 벅찬 일이었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겠다는 자그마한 목표마저 점차 짐짝처럼 느껴졌고 마음은 병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남편이 운영했던 개인 물류 사업도 성과가 도드라지지 않자 이들은 해결책이자 현 상황의 돌파구로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

물론 주위 사람들의 거센 만류도 있었다. 벼의 모종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농업 문외한이면서 무슨 귀농이냐는 비아냥 섞인 조롱도 들었지만 이씨에겐 아내 신씨의 건강과 귀농하고 싶다는 의사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이들은 귀농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직업 귀천의식 버리고=“직업에 대한 귀천의식, 자존감 다 버리고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악심 먹고 버틴 거죠”, “그런 생활을 4, 5년 가량 하고 보니 서서히 귀농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것 같아요”

지난 2011년 귀농 초기 생활은 썩 녹록하지 않았고 역경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역설이다. 그들은 도시에서 먹고 자라 농업 경험이 전무했을뿐더러 쉼터 역할을 해줄 집과 농사 지을 농지 마련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농업 지식이야 영암 귀농·귀촌 사이트와 다른 농가에서 일손을 도우며 습득할 수 있었지만 5인 가구가 머무를 집을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한 달에 25만원짜리 모텔방과 여관을 전전긍긍하며 생활했다. 이씨는 가족을 위해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에도 아침 댓바람에 고물과 폐지를 주우러 다녔고 일용직 노동을 서슴지 않았다. 낮에는 귀농해 성공적으로 안착한 농가를 전국적으로 찾아다니며 작물 재배기술을 익혔고 밤에는 농업기술센터의 귀농·귀촌 교육을 이수했다. 또 이씨는 축산업을 경영해 성공하겠다는 당찬 꿈을 위해 영암군 왕인대학 한우교육을 받으며 현재는 전남농업마이스터대학을 다니며 축산업 심화 과정 단계를 이수 중이다.
 

이영호씨 부부는 소를 키우며 축산업을 경영하기 위해 영암군 왕인대학 한우교육을 받았다. 현재 심화 단계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축사 내 소의 모습.

▶우여곡절 끝에 발돋움=그는 5년전 달방살이 시절 매스컴에서 우연히 본 애플수박을 보고 매료돼 전남 최초로 재배에 도전하게 됐다. 지역의 특수 소득작물인 만큼 주변 농가로부터 노하우나 재배 방법을 배울 수 없어 1년에 3기작인 애플수박 농사를 모두 망치기도 했다.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고정적인 수익도 없는 악조건이었지만 ‘전남 최초 애플수박 농가’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오전·오후, 하루, 한달 등 시기별 농업 용수 양 조절이 애플수박 농업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현재는 비닐하우스 6동에서 생산한 애플수박을 SNS 기반으로 홍보하며 카카오마켓 등을 통해 판로를 확대하고 있고 부업으로는 청양고추 비닐하우스 2동을 운영 중이다.
 

이영호씨 부부가 부업으로 재배 중인 청양고추.

▶예비 귀농인들에게…=이들은 성공적인 귀농 정착을 위해서는 ‘열정’과 ‘만족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조건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혹여나 가족 모두가 귀농을 할 경우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만이 해답이다”며 “아이러니하지만 귀농이라는 것이 ‘빛 좋은 개살구’와 같아 귀농하기 전에는 아름답고 밝은 삶만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고충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갖고 내려온다면 자만해져 귀농에 대한 열정, 성공하겠다는 다짐이 부족해 실패할 수도 있다”며 “작고 적은 것에 만족하며 차근차근 농업을 일궈내다 보면 어느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작정 귀농했다고 집을 짓거나 농지를 구매하지 말고 2년 정도는 귀농 생활을 겪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를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사진·영상/송민섭 기자 son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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