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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4장 광야에서<371>

“장군께서 어인 일로 여기까지...”

정충신이 말 울음소리를 듣고 초막 밖으로 나오니 마상에 장만 장군이 우뚝 앉아있었다.

“근무지 복귀 중 들렀네. 그래, 세상과 등지니 살만한가?”

장만 체찰사는 함경도 근무지로 복귀하던 중 포천 산막을 찾은 것이었다. 정충신이 구유통 앞걸대에 장만이 타고 온 말 고삐를 묶고 여물을 가득 구유통에 부었다. 장수들은 본인의 먹이보다 말을 잘 먹이는 것이 예의로 알았다.

“어서 들세나.”

장만이 주인처럼 앞장서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마주 앉고, 정충신이 다기를 끌어와 차를 다렸다.

“조익과 장유가 한달 전에 다녀갔습니다. 세상 풍파를 몹시 걱정하더군요.”

“그러니 내가 여기 온 것이 아닌가. 스승이 돌아가셔서 추앙하는 모양은 좋네. 하지만 스승의 유지를 이런 형식으로 받들지 않아도 되느니, 묘지기가 무슨 뚱딴진가?”

장만이 애처럽다는 듯이 정충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점잖고 자애스런 풍모였다. 문치주의의 시대라는 조선조에 이렇게 품격을 갖춘 문무겸장의 인물은 보기 드물었다.

“벌써 내 나이 오십대 중반, 노년의 나이일세. 그런데도 나라의 부름을 받고 눈보라치는 북방 변경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정 첨사는 원숙한 경지의 40대 초반이니 국방에 한창 물이 오른 나이일세. 무르익은 나이를 허송할 셈인가. 나를 따르게. 주상 전하의 윤허도 받았네. 오랑캐는 고래로 우리 변경을 넘보고, 지금은 명나라를 치러 굴기하고 있네. 그들은 우리를 경계하면서 명나라와의 대전을 준비하고 있네. 중원을 먹겠다는 것이지. 이런 때 정 첨사가 나서야 한단 말일세. 명과 후금의 물성을 꿰고 있지 않은가. 상감마마께서는 후금과 대결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시네. 그건 나나 정 첨사 생각 아닌가.”

“그런데 대명파를 어떻게 제어한단 말입니까.”

대명파는 명나라를 따르자는 집권 세력들이다. 여기에는 세력들이 혼재되어 있었지만 광해를 반대하는 세력이 그런 명분을 만들어 좇고 있었다. 광해로부터 유배를 떠난 최명길 가문과 조익, 장유 가문도 그 명분을 내세워 각을 세우고 있었다.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에서가 아니라 자기들 이해와 결부시켜 찬반 의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대국을 따른다. 의리를 지킨다는 이념에 사로잡혀 현실적 이해 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명분론만을 내세워 기왕에 맺었던 군신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무인은 현실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시대의 대세가 달라지면 그에 기민하게 조응해 돌파해 나가는 논리를 갖고 있다. 문이 유연하고 무가 경직되는 것으로 아는데 조선조 사회는 이상하게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무인 세계가 더 탄력적이고 유연하다. 그것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정충신은 그런 현상을 보며 문관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방편으로 삼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명길·조익·장유는 광해에 불만을 품고 한판 뒤집자며 그를 끌어내려는 계획이고, 장만은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 외교력을 발휘하라고 그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만 장군을 따르는 게 옳다. 그를 따라 함경도로 가면 눈꼴 사나운 붕당의 이전투구 현장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고 장만을 마주 보았다.

“장군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잘한 일일세. 이 참에 이괄도 데려올 참일세. 용기있고 판단력이 빠르지.”

정충신도 이괄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연령상으로는 한창 아래지만 정충신은 그를 가까이 두고 벗처럼 지냈다. 그런 연유가 있었다. 이괄은 선조 말기 10대부터 관직에 올라 선전관·목사직에까지 올랐다. 대신 재기가 발랄했으나 좌충우돌이 많았다. 정치에 엮였다 하면 사달이 났다. 그래서 충돌이 잦았다. 광해군 지지 세력이었던 대북파가 아닌 온건한 중북파였기 망정이지 권력 핵심부에 있었다면 정가를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그런 성격 때문에 주류에 오르지 못하고, 무인들과 교우 관계를 맺었다. 이때 정충신도 그와 교유했다.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신세가 자신과 같은 처지라서 둘은 가까워졌다.

“이괄과 친하다면서?” 장만이 물었다.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러면 잘 되었군. 장차 남이흥도 데려다 쓸 것이야. 진부목사(1617년 광해 9년)로 나가있는 그도 부를 것이야. 힘을 모아봐.”

남이흥은 진주목사 재임 기간 진주대첩에서 산화한 고경명·고인후 의병장과 의기 논개의 뜻을 기리는 촉석루를 중수한 사람이었다.

“장군께서 부임지로 가시기 전에 도성을 한번 더 다녀가셔야겠습니다.”

“그건 또 왜?”

장만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정충신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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