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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4장 광야에서<372>

“상감마마께 이렇게 전하십시오. 명나라에 군대를 파병하자는 것은 대명 추종론자들의 주장이나 여러 가지 정황상 적절치 않다구요. 의리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하지만 따를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라야 정당성을 인정받습니다. 타락한 나라를 도울 이유는 없슴니다. 임진왜란 시 명나라가 우리에게 파병했지만, 따지자면 조선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심리적 위안이 되고, 왜군에게 압박 요인이 되긴 했으나 전략부재, 전술부재, 거기에 온갖 갑질에 민폐만 끼쳤습니다. 분탕질한 것은 왜군이나 명군이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관군과 의병들이 강고한 연대속에 작전을 펴나갔다면 왜군을 섬멸했을 것입니다. 해상에서 이순신 장군이 열두척의 배, 아니 해남 어부의 배 한 척까지 포함해서 열세 척이 힘을 모으니 왜의 해군단을 무찌른 것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가 육상전에서 고통을 겪었던 것은 명군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왕께서 명군을 하늘처럼 떠받들었으니 우리만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러면 후금에 파병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기왕에 조선 병사를 파견하기로 했다면 전세를 파악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병략은 세상에 없소.”

“어차피 명은 타락하고 부패해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 하루 이틀 사이입니다. 이런 나라를 상국으로 모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후금은 우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고, 조선을 조상의 나라로 우러르면서 조선의 문명을 배워 자신들의 무지와 야만을 깨우치려 합니다. 후금의 군대는 기마민족의 뛰어난 기동력과 놀라운 용맹성, 그리고 여진 부족을 통일시킨 위대한 지도력과 누르하치 후계자 자식들의 웅대한 야망과 꿈이 있습니다. 외교란 힘있는 자와 협력하는 현실세계의 생존법이고, 명분은 학문세계에 있는 이상론입니다. 흥기하는 신흥국가와 관계를 재설정하십시오. 강홍립 도원수가 군대를 이끌고 명과 후금의 결전지인 사르흐로 나가되, 굳이 후금과 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명나라 군대는 썩은 빗자루 꼴이니 필패는 자명한즉, 후금과 척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누르하치의 자식 다이샨 패륵과 홍타이지는 제가 접촉하겠습니다. 조선 원병은 대세를 보아서 후금국에 투항해 인적 손실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썩은 빗자루로는 마당을 쓸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체찰사께서 직접 상감마마께 진언 올리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한양에 다녀오면 함께 함경도로 떠날 것이렸다?”

“제가 이곳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스승을 추모해서만이 아닙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의 조국을 그려보기 위해서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장만이 대화를 마치고 다시 도성에 들어갔다. 어전에 이르니 광해가 맞았다. 장만이 정충신을 만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 듣고 난 임금이 말했다.

“그 사람의 생각과 과인의 생각이 다를 것이 없소. 모두들 명에게만 기울자고 하는데 나는 생각이 예전분터 달랐소. 강홍립을 출병시키되, 장 체찰사는 정충신 궐위장을 대동하고 변경으로 가시오.”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정 궐위장은 지금 백사의 묘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옵니다. 다만 필요하면 소신이 그를 진중에 불러 후금과의 관계를 자문받고자 합니다. 포천과 함흥까지는 말 달리면 하루 반이면 당도하는 곳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상주 벼슬을 내려주겠소.”

함경도 감영(監營)의 직속 부서에 벼슬을 내리거나 관하 부윤·목사·부사·군수·현령 중 한 자리를 줄 수 있고, 함경병마절도사나나 함경수군절도사 부관 자리를 맡길 수 있다.

“그 사람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벼슬도 버리고 스승의 유배지로 떠났고, 스승의 묘를 지키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일반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정충신의 요청대로 지금 강홍립 부대를 출병시켜 주십시오.”

1618년 강홍립은 1만8천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것은 선악을 고집하는 조선조의 정치풍토에서 벗어나 실리를 염두에 둔 광해의 밀지를 받고 나선 출병이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과의 사이에서 조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살폈는데, 겉으로는 명나라를 돕는 것처럼 싸우다가 전세를 보아서 후금과 협상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이는 정충신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었다.

강홍립 군대는 출병하자마자 상당한 타격을 받고 곧바로 후금군에 투항했다. 광해군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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