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76>

정충신은 평안도 강계도호부 만포진 첨사로 부임하자마자 ‘해유첩(解由牒)’을 가져오도록 군관 막료장을 불렀다. 해유첩(혹은 해유서)이란 관원이 교체될 때 후임자에게 행정사무와 소관 물건을 인계하고, 재직 중의 회계와 인적 사항을 인수인계하는 서첩이다. 정충신이 막사로 들어온 막료장에게 물었다.

“이름이 뭔가.”

“조백입니다.”

“조백? 조백이란, 전라도 말로 ‘조백있는 놈’이라고 해서 분별력 있는 괜찮은 놈을 말하는 것인데, 과연 그런 뜻이렸다?”

“겪어보면 아실 것입네다.”

“부모가 작명을 잘했군. 해유첩 가져왔나?”

“여기 대령했습니다.”

정충신이 서첩을 받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간자들이 그렇게 득시글거리는가?”

“그렇습니다.”

“왜 득시글거리는가.”

“만포진이 군사요충지고 교통요지니까요. 압록강 건너에 지린성(吉林省) 지안(輯安)이라는 후금의 군사요충지가 있고, 바이산(白山)·퉁화(通化)·퉁화현(通化縣)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압록강 남안은 미인이 많이 사는 우리의 강계지역입니다. 그 새끼들이 강계 미인을 탐하면서 조선 국경선을 정탐합니다요.”

“지안 놈들이 그런다고? 지안은 사실 우리의 고토다.”

“고토라고요?”

“그렇다. 고구려의 발상지이자 고구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리왕이 졸본에서 천도하여 지안에 수도로 정했고, 그래서 그곳에는 고구려의 유적이 많다. 고을 중심에 있는 국내성도 고구려 군사가 축성했고, 환도산성과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도 거기에 계시다. 지안에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이 2만개가 넘으니 그 규모를 알 것이다. 그것을 중국에게 내주고 말았다.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냥 헌상했다.”

“금시초문입니다.”

“변경을 지키려면 우리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혼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닝개.”

그가 고향 사투리로 말하고 덧붙였다.

“국경의 군사는 더욱 국가관이 투철해야 한다니께! 그자들이 강계 미인만을 탐하기 위해 몰려오지만 동시에 호시탐탐 침략하기 위해 동정을 살필 것이다. 그래서 조정에서 군사 규모가 큰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두었고, 1,500의 군사를 배치한 것이다. 알겄는가?”

만포진에는 군사상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국 직봉(直烽) 5개선 중 하나로 서북 방면의 내륙 봉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만포진의 여둔대에서 시작된 직봉 제3선은 의주ㆍ안주ㆍ평양ㆍ개성을 거쳐 한성의 목멱산(木覓山:지금의 남산) 봉수대로 연결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압록강의 풍부한 수량을 이용해 상류인 원창·자성 지역의 울창한 숲에서 나무를 베어 뗏목을 떠내려 보내는 원목(原木) 집산지로서의 경제적 기능을 수행했다.

“여진(후금)과 접하고 있다면 여진어 통역관이 배치되어있을 텐데, 여진어 통변사가 몇인가?”

“하세국 등 셋이 있다가 하나는 간자 협으로 붙들려서 생사를 모릅니다.”

“하세국을 불러들이라.“

“지금 누워있습니다. 다들 쓰러져 있을 것입니다.”

“미친 놈들, 벌건 대낮부터 술 쳐먹고 헤롱거리고 있단 것이냐?”

정충신이 버럭 화를 냈다. 부임하기 전 만포진 관원들 근무태도가 해이되었고, 군사들은 군기가 빠져있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이 모양일 줄은 몰랐다. 조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북소리가 울려도 움직이지 않고 제멋대로 지내고 있었다.

“군졸들이 혹한의 기후풍토에 못견디는 데다 이질 돌림병이 돌아서 한결같이 쓰러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작 보고하지 않았느냐?”

“차마 신임 첨사 어른께 그 말부터 꺼낼 수가 없었나이다. 차차 나아지리라고 생각했습지요.”

군영 막사 밖으로 나가보니 과연 군졸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2월의 혹한인데도 군졸들이 눈밭에 쓰러져 숨을 할딱거리는 자도 있었다.

“이놈의 새끼들, 이게 뭐냐? 이런 군대로 어떻게 국경을 수비한단 말인가. 전원 비상이다! 모두 훈련장으로 집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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