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3>

모문룡 군대가 멀리 바다로 빠져나가자 압록강 국경지대는 한숨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만포진 병사들이 여전히 이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부는 풍토병까지 걸려서 일어서지 못했다.

병사들은 대부분 삼남지방에서 올라온 첨방군(添防軍)들이었다. 첨방군이란 전라도 출신 수병들로 구성된 군 집단인데, 남해안을 부방(赴防)하는 임무를 띠고 동원되었던 군사들이다. 임진왜란 때 남해안 수군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용맹한 전라도 남해안 연해 고을의 청년들만을 징발해 싸우게 한 인력들이다. 여수와 고흥 장흥 해남 진도 해안마을에 사는 어부 출신들이며, 일본의 새 영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한 이래 조선국이나 유구(琉球), 명나라를 침공하는 일을 중지했기 때문에 조정은 이들을 빼돌려 압록강 최북단 만포진에 배치했다.

전쟁이 끝났으면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용맹성이 돋보이기 때문에 북쪽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계속 군대에 잡아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용맹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고향과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복무한다는 고적감과, 여전히 접적지역의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점, 그리고 기후풍토가 맞지 않아 한결같이 고통을 받고, 먹을 것이 절대로 부족해서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려있었다.

정충신이 막료장을 불렀다. 아직까지 이질병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은 경위야 어떻든간에 군령권자의 책임인 것이다.

“성안의 솥을 모두 거둬와서 강변에 벌여놓고 콩죽을 끓여서 먹이라. 병이 낫지 않았다면, 병의 근원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잘 먹여야 한다. 몸이 보호되고 몸의 열기를 토해내면 낫게 될 것이다.”

정충신은 군사 숙영지로 나갔다. 한 막사를 도는데 덩치 좋은 병사가 그의 앞으로 달려오더니 무릎을 끓었다.

“첨사 나리, 이런 개 상녀르 판이 다 있습니까요?”

“무슨 일이냐.”

“동로(東路) 서로(西路)에 전염병이 도져서 감염자가 속출하는디도 젼향사는 관원을 파견하여 여제(?祭)를 올리고 있소. 귀신을 위로한다는 제사를 지낸다고 병이 낫소? 병 구완한다는 표시만 하는 것이랑개요!”

“그러면?”

“약물을 구해주고 관향미(管餉米)를 병사들한티 풀어야지라우. 뭐 염병났다고 귀신 위로한 디로 수십 석씩 갖다 바친답디여? 산꼭대기에 올리면 산짐승이나 멧새들이 좋아하겄지라우. 도대체 무슨 염병할 짓이랍디여?”

관향미란 변경을 방비하는 군사를 위해 특별히 비축한 군량을 말한다. 관향사라는 벼슬을 두어 고을을 돌며 군량을 확보하도록 하는데 평안도의 부사, 관찰사의 위임을 받은 관향사가 이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잡음이 많았다. 군사들에게 줄 것을 빼돌리니 군졸들이 하나같이 허덕인 나머지 탈영자가 나오고, 남아있는 자는 영양실조에 퍽퍽 쓰러지고, 이때 반항하는 군졸을 매타작으로 반 죽여놓고, 어떤 경우에는 당사자에게만 밥을 두둑이 먹여 군말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왔느냐.”

“해남에서 왔지라우.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 싸움을 벌일 때 나도 출진했는디 허벌나게 왜것들 조사부렀지라우. 그때는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무찌릉개 왜것들 꼭 마른 수수깡 넘어지듯 하더랑개요. 그란디 삼천리 밖 북방 변경으로 옹개 묘하게 되어부렀소. 무슨 순지 모르겠소. 여기서 이렇게 개피볼 적시면 도망갈라요. 인생 뭐 별거랍디여? 나 이제 막가파요.”

병사를 돌려보내고 정충신이 강계목사관에 주둔한 관향사를 불렀다.

“백미와 조, 찹쌀, 콩. 감자를 넉넉하게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군사들이 굶주리고 있다. 그 지출명세를 가져오라.”

“어디다 쓰게요?”

“어디다 쓰게요라니? 군령권자라면 당연히 군량 실태도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첨사 나리는 나라를 잘 방비하는 일, 즉 전투를 잘하는 전략을 세우는 자리요. 식량 보급은 나에게 주어진 임무요.”

관향사가 빳빳하게 나왔다. 그는 병조의 병참 대장을 구워삶아 놓았으니 뒷탈이 있을 리 없었다.

“뭐라고? 병사들이 굶주리고 독초까지 뜯어먹고, 흙을 먹는 자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군사들이 무슨 사기가 오를 것이며, 싸울 힘이 있겠느냐. 멀리 삼남지방에서 올라왔다고 개무시해도 되냐?”

“왜 다른 첨사 나리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정 첨사 나리만 따집니까? 오지랖도 넓소. 뭐가 좀 아쉬운 게 있는 모양인데, 강촌에 이미 술자리 마련해놓았고, 어여쁜 강계 기생들 잡아두었소이다. 용돈도 놓아두었으니 실컷 마시고 즐기십시오. 인사를 미처 차리지 못해서 미안하외이다.”

“에라, 개새끼.”

그 자리에서 그를 늑신하게 패주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며칠 지나자 병조의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만포진 관할 관향사를 풀라는 명이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계홍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