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4>

“관향사를 풀어주라고? 어떤 자가 그러더냐?”

“명령은 상급 기관인 병조에서 내리는 것이지요. 군기의 기본은 명령과 복종입니다.”

“썩었구나. 그릇된 지시는 따르지 않겠다.”

“한번 따져봅시다. 정 첨사도 완전무결한 군인이오? 혹 잘못된 판단으로 명령을 잘못 내리는 경우가 없소? 그때마다 병졸이 따지고 대들면 어떻게 군사조직을 통솔하고 관리하겠소?”

“그러니 매사 몸을 단정히 하고, 부하가 곯지 않도록 솥을 자주 살펴야 하고, 외적 침략에 대한 방비를 게을리해선 안되는 것이다.”

“좌우지간 관향사를 잘못 건드리면 골로 가요. 그는 권부의 후손입니다. 누구도 손을 못댄다니까요. 정 첨사 나리는 참 눈치도 없소이다.”

“그놈이 못된 짓을 했으면 국법에 따라 엄히 다스려야지, 권부의 자제라고 묵인하고 외면하면 나라의 질서와 기강이 서겠는가. 모범을 보여야 할 자가, 병조에 뒤를 봐주는 자가 있다고 타락하면 그 군사조직이 어떻게 되겠느냐.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는 못한다.”

“아아, 실제로 칼이 들어간다니까요. 나는 누구 편도 아니지만 칼 들어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소이다.”

“그릇된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도 군인이 취할 길이다.”

“대국도 그럽디다. 사절단의 일원으로 연경(북경)에 다녀왔는데, 부패가 만연해서 금은이 아니면 누구 하나 만날 수가 없습디다. 그런 비리가 일상사가 되었는데 명을 우러르는 우리라고 별 게 있겠습니까. 서로 사이좋게 뜯어먹고 사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렸지요. 나쁜 것은 먼저 따르는 것이 우리네 기질이지요.”

“배울 것을 배워야지!”

정충신이 옥졸(獄卒)을 시켜서 갇힌 관향사를 불러내도록 지시했다. 관향사가 포승줄에 묶여서 마당으로 끌려나왔다. 정충신은 병사들을 소집해 마당에 집합시켰다.

“병영에서 통탄할 일은 병사의 먹을 것을 빼앗는 짓이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용서가 된다. 작전에 실패해서 부하를 죽이는 일도 용서가 된다. 그러나 병사가 먹을 양곡을 빼앗는 것은 절대로 용서가 안된다. 여기 끌려나온 자는 병사들이 먹을 식량을 빼돌려 주색잡기에 빠졌다. 자기 처자식 잘 먹이고, 좋은 글 배우도록 명강사를 초빙해 가르치고, 출세를 위해 윗줄에 상납했다. 그렇게 해서 권력과 부가 세습되도록 했을 것이다. 병사들이 물똥을 싸고, 먹을 것 제대로 못먹고 병구완도 못하고 쓰러져서 몇 명씩 시체로 나가는데, 이 자는 관향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군량을 착복했다. 그 죄를 준엄히 묻지 않으면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병사들이 그 말을 듣고 전향사에게 달려들어 각목으로 머리를 박살내고, 삽으로 어깨를 갈기고, 다리를 분질렀다. 관향사가 즉사했다. 병조에서 파견된 전령이 겁을 먹고 말을 타고 도망을 가버렸다.

때려죽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사들이 복수심으로 달려드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이 저 자를 죽인 것은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책임을 질 것이다. 여러분은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서 솥의 콩죽을 배불리 먹기 바란다.”

정충신이 병사들을 해산시키자 모두들 솥으로 가서 콩죽을 배불리 먹고 만세를 불렀다.

그 무렵 명나라는 쌀과 소금, 수레를 끄는 일소와 먹이용 소 5백두를 보내달라는 밀지를 조정으로 보내왔다. 군사 1만5천을 파병했는데도 만족하지 않고, 피복만 제외하고 나머지 물자를 모두 대라는 것이다. 조정이 명의 청을 받아들이려면 또 백성들을 쥐어짜야했다. 이런 때 관향사의 군납비리가 터져나오고, 그는 병사들에게 맞아죽었다. 조정은 이런 급보를 접하고 갈팡질팡이었다. 광해군은 병조판서 장만을 불렀다.

“불결한 소식을 듣고 있었소?”

“네, 듣고 있었습니다. 군사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군수물자를 충원 또는 보급 지원하는 자가 군량을 빼돌려 사복을 취했다면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부패와 비리는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자초합니다. 그 돈과 향응으로 자기 자리를 보전하고, 승진의 근거로 삼는다면 나라의 기강이 어떠하겠습니까. 여말(麗末) 정권을 잡은 무인들이 조정 요직에 들어앉아서 자기 사람들을 들어앉히기 위해 막대한 재물을 착취하여 사용하였나이다. 그 재물은 매관매직과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충당했지요. 그래서 비리 구조가 나라를 흐리게 해왔던 것인즉, 일벌백계가 중요합니다. 마침 창주 첨사직이 공석이므로 정충신을 그 책임을 묻도록 창주첨사로 좌천시켜 보내려고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것 없소. 그런 것은 선왕 때도 그랬소.”

광해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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