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7>

소연(小宴)이라고 했지만 걸판지게 한 상 차려졌다. 말고기가 통째로 나오고, 양의 뒷다리, 소의 안심과 허벅지도 한 소쿠리 담겨져 상에 올랐다. 다른 큰 소반에는 돼지족발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여진족의 통큰 잔치를 알 수 있었다.

“여진족의 족발은 정말 맛있소. 하나 뜯어보소.”

홍타이지가 정충신 첨사에게 큼지막한 소 다리를 집어 내밀었다. 무게가 꽤 나가는 우족이었다. 뜯어보니 잘 삶아진 육질이 한 입 물리는데 쫄깃쫄깃 식감이 좋고 구수했다. 독한 옥수수 술을 주거니 받거니 걸치니 취기가 올랐다. 밖에서는 정충신을 수행한 병사들과 후금 병사들이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정 첨사, 첨사가 녹둔도에서 근무할 적에 다이샨 형과 친교를 맺었다는 말을 들었소.”

“서로 돕고 지낸 추억이 새삼스럽소. 그땐 해서여진, 해동여진, 장백여진족들 때문에 건주여진이 힘에 겨워했었지.”

“그렇소. 우리의 건주여진은 약탈을 하지 않소. 대의를 위해 삽니다. 대신 해서·해동·장백여진의 몇몇 부족 따위가 도둑질을 일삼소. 우리도 똑같다고 취급하면 안되지. 우리를 위협하던 다른 부족들을 정 첨사께서 일망타진한 것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하오.”

스물아홉의 물오른 청년답게 그는 총기가 흐르고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매사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정충신은 그가 훗날 큰 일을 낼 사람으로 단박에 알아차렸다. 실제로 그는 명나라를 멸망시킨 뒤 후금을 청나라로 개국하고, 청 태종이 된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병자호란을 일으킨 저주의 인간이기도 하다. 그는 청 태종에 등극하자마자 아버지 누르하치를 태조로 봉하고, 1936년 겨울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 남한산성에 숨은 인조를 불러내 항복을 받아내고, 군신 관계를 맺은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을 인질로 끌고 갔다.

일찍이 정충신과 맺었던 우정을 지속했더라면 그런 치욕의 비극도 막았을지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역사의 변곡점에서 작은 일 하나가 전환점을 만들어낸 경우가 있었던 사례에 비추어 보면 그런 가정법이 결코 틀린 것도 아니다. 또다른 교훈을 주는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은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되어있다. 정충신이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압록강과 백산 근방에서 여진족 후예들이 여전히 약탈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여기 가지고 온 두상도 모두 그것들이오. 여진족을 하나로 통일했으면 통일 영도자로서 이런 야비한 잔당들을 소탕해야 할 것이오. 후금은 연경을 노리고, 중원을 제패할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발밑에서 발등을 찍는 자가 있다면 힘이 약화될 것이 아니겠소? 조선국의 국경을 넘나들며 백성들을 괴롭히면 조선국과도 긴장관계가 유지되오. 그러면 후금이 안심하고 연경을 칠 수가 없지요.”

“못된 여진 부족을 잡아준 것 정말 고맙소.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에 잡아주니 훈장 하나 드리고 싶소. 우리는 사르후 전투 이후 병력 손실이 큽니다. 그래서 후방을 미처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대안을 내자면, 그자들을 후금군의 부대로 편입시켜 명나라 정벌의 선두에 세워보시오. 못된 짓한다고 분리시키면 고립감으로 더 말썽을 피웁니다.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뜨리는 것 명심하시오.”

“좋은 말씀이오. 정충신 장수 같은 조선의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친교를 맺고 부모국으로 섬길 수 있소. 한데 조선국의 중신들은 후금을 글 못배운 야만족에, 생고기를 뜯어먹고, 맹수들처럼 짐승을 잡으면 창자부터 내어먹는다고 경멸하고 있소. 나로서는 참을 수가 없소. 앞으로 문명을 깨우치고, 만주어도 만들 것이오. 그런데 조선국이 명나라를 섬기고,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소이다.”

“그 점 나도 고민하고 있소이다.” 정충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역사를 볼 때, 말갈족의 부족 가운데 속말말갈과 백산말갈이 고구려에 복속했다가 고구려가 멸망한 뒤 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朝陽]에서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들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할 때, 우리도 그 부족으로 복속되었소. 그래서 우리는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어 왔으나 조선으로 넘어온 이후 조선의 사대부는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했습니다. 우리를 축생 취급하면서 명나라만을 우러르고 있었소. 우리 힘이 커지는 것을 모르고 형제국 후금을 뻘로 알고 있단 말이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지혜로운 상께서 명나라 구원병 1만8천을 요구했을 때 1만 5천을 보낸다 하고 실상은 1만3천을 보냈소. 그들이 일일이 수를 세진 못하니까요. 그들 또한 전쟁 상황을 보아서 상께서 후금군에 투항하라고 했던 것이오. 그래서 강홍립 장군이 이끈 우리 군사가 귀국의 진영에 들어와있소. 후금군은 이들을 인질로 잡아두고 있는데, 이것부터 푸시오. 형제국이라면 그리 해야 하오. 그것부터 증명해 보이시오.”

“조선 조정은 여전히 친명배청을 주장하며 후금을 치자는 중심세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알고 있는 이상 인질들을 내줄 수 없소.”

홍타이지는 조선 사대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광해의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말빨이 서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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