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8>
“참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해할 수가 없소. 지도자란 사람들이 시대를 내다보지 못하고 이불속에서만 주먹질하는 쫌팽이들 같소.” 홍타이지가 술김인 듯 큰소리로 떠벌였다.
“어째서 그렇다는 것이오?” 정충신이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신들은 백성의 원성은 외면한 채 그들끼리 피터지게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소. 배웠다고 고상한 이론을 들이대지만 싸우는 것은 천박한 것들이오. 밥풀데기 하나 생산하지 못한 공리공담이오. 상대방의 실수만 나오기를 기다리고, 그래서 실수가 나오면 결사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풍토요. 친명 사대도 나라의 이익은 배제되고 오로지 자신들의 출세만을 위한 이해 특실로만 따지오. 와르르 허물어져가는 담벼락을 붙들고 용을 쓴들 무엇이 나오겠소? 도대체 이해득실로 자리를 대체하니 한심스럽소.”
그는 또 후금의 눈부신 성장을 모르고, 옛 관성에 빠져서 친명 사대라야만이 나라의 진운이 결정되는 것처럼 위세를 부리는 것이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 왕의 권력기반이 취약하도록 명나라가 쥐어흔드는 것도 알아두시오. 때로는 겁박하고, 때로는 달래면서 명에 충실하도록 조종한단 말이오. 중신들은 그것이 대세인 양 따르자는 거요. 그러니 왕도 중심을 못잡고 있소. 이런 때 정충신 첨사나 장만 장군 같은 이가 ‘외교는 실리다’ 하고 충언을 마다하지 않은데, 묻히고 마니 헛수고요. 조선왕의 내치 기반이 취약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사실 이는 우리에게도 호기요. 이 사항은 조선에 파견된 우리의 밀자로부터 보고받은 거요.”
“젊은 왕자께서 나에게 힘을 넣어주시오. 친후금파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소? 강홍립 장군과 그 휘하 병력을 풀어주는 게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오. 이런 선물 보따리를 가자고 가야 조정해서도 내 말빨이 서지요. 그리고 강홍립 부대는 후금을 돕는 지원자지 전쟁포로가 아니오. 지금 가도에 들어가 있는 모문룡 부대도 우리 군사가 철저히 통제하겠소. 후금이 명을 치는 데 후방 지역이 안심해도 되도록 돕겠소.”
“귀관은 확실히 다르군. 친명이 아니라 했지요? 그러니 강홍립을 귀국시켜라?”
“그렇소.”
“그러면 내가 하나 제안하겠소. 조선이 명과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는 점을 약속하는 조선왕의 칙서를 받아오시오. 그러면 귀대를 약속하겠소. 한달간의 말미를 주겠소.”
정충신이 그와 헤어진 뒤 만포진으로 귀대하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의금부의 당상관 판사(금부도사)였다. 금부도사가 동행한 나장 넷을 곁에 세워놓고 정충신을 마당에 나오라고 소리쳤다.
“역장(逆長) 정충신은 들어라. 관향사를 죽인 것은 국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 모반이며, 지변사 재상의 명령을 거부한 것은 군기를 위반한 중대 범죄인즉, 형틀과 포승을 받아라. 지금 당장 서울로 압송할 것이다!”
“무슨 간나구 짓이여?”
마당에서 병졸들의 군기(軍器)를 수습하던 첨방군의 중부장 오달근이 불쑥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임진왜란 시 해남 울돌목에서 첨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병졸이었지만 무훈이 뛰어나 중부장 자리에까지 오른 장교였다.
“정충신 첨사야말로 진실로 나라를 지키는 참 군인이여. 나가 명량, 옥포, 돌산도, 행주전투에도 참전했는디 정 첨사야말로 지략과 용기, 부하를 사랑하는 인품을 가진 분이더랑개. 이순신 장군이 당한 것을 보았는디, 또 정 첨사마저 희생물로 삼을 것이여? 느그들 안디질라면 그냥 돌아가라. 나가 인자 장수를 모셨는디, 잃으면 되겠냐? 되도않는 모함으로 또 장수 하나 목딸려고 발광믄 안되제.”
그가 검을 허공에 휘둘러 시위하자 정충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멈춰라!”
“아니어라우. 이런 새끼들 믿고 나라 지키는 것이 뭣 같소야. 이래 디지나 저래 디지나 디질 것 같으면, 나도 한번 용이나 쓰고 갈라요. 나같은 사람, 인정한 사람한티 충성하고 가는 것도 영광이제라우. 그런 대접받을 일이 또 있을랍디여? 정 장수를 만나서 사람 대접 받았소야. 나날이 물똥 싸고, 창시는 찢어질라 하고, 이제나 저제나 디질 목숨이었는디, 정 첨사가 살려중개 나도 사람값 한번 해야지라우.”
그때 첨방군 병사들이 몰려들더니 정충신과 오달근을 에워쌌다. 이 광경을 보고 정충신이 호통을 쳤다.
“나는 국법을 어길 수 없다. 악법도 법이니 국가의 녹을 받는 자는 여기에 따라야 한다. 한양에 갈 일도 있으니 함께 떠나겠다.”
후금의 홍타이지와 나눈 의견을 조정에 알려야 하는 것이다.
“아니지라우. 악법도 법이라지만 못된 법을 만들어놓고 따르라고 하는 그자 목을 따야지라우. 어느 선각자는 악법도 법이라고 독배를 마셨다고 합디다마는, 나는 그런 법은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오. 그런 법을 맹근 새끼들 목부터 따부러야지라우. 여지껏 고렇게 해서 목에 힘주고 살아왔소. 엎어버립시다. 그래야 정의가 서지라우.”
그러자 군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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