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9>
“내가 국법을 어겼다고 하니 도성에 들어가서 정정당당히 따질 것이다.” 정충신이 말했다.
“고것이 통하간디요? 통할 적시면 고따구로 일을 안하제라우. 북방 변경에서 군사력으로, 외교력으로 멸사봉공하는 장수의 뜻을 모르고, 어떻게든 쥐잡듯이 잡아서 자기들 위엄을 과시하려고 하는디, 고렇게 거만 떨 거리를 주면 안된단 말이오.”
여전히 오달근이 우겨댔다. 금부도사를 호위하던 나장 중 덕대 큰 자가 긴 칼로 오달근의 목을 겨누었다.
“나대지 마라. 지금 당상관께서 엄중히 직무를 집행중인데 잡소리 내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나 그때 오달근의 주먹이 나장의 턱주가리에 정통으로 꽂혔다. 나장이 턱을 싸쥐고 벌러덩 나가 떨어졌다.
“씨발놈아, 무슨 잡소리여? 나는 만주벌판에서 오랑캐 다섯놈을 한방에 조사버린 인간이여. 나가 승복할 수 없는 더러운 국법을 지킬 성 부르냐? 지킬 것 같으면 니놈들한티 대들들 안하제. 여차하면 나는 국경을 넘어서 후금 진영으로 튈 것이여. 후금군대 들어갈 것잉마. 인생 별거 있가니? 내 배때지 따뜻하게 해주는 곳이 내 진지여. 더러운 사대부들보다 고렇게도 사는 삶이 있당개. 너 살고 잡으면 나한티 대들들 말어.”
금부도사도 그의 태도에 기가 죽어서 정충신의 눈치를 살폈다.
“물러나라.” 정충신이 명령하자 금부도사도 거들었다.
“정 첨사와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장졸들은 물러나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는 병사들을 쫓을 생각이었다. 장졸들이 흩어지고, 턱주가리를 맞고 고꾸라진 나장이 일어나 먼지 묻은 제복을 털며 뭐라고 씨부렁거렸지만 대꾸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정충신은 금부도사를 막영으로 안내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압송되겠소. 그러잖아도 궁궐에 들어갈 참이었소.”
“사무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자격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대신 수행원이 2명 붙도록 하겠소. 정 첨사가 신뢰하는 오달근 중부장이 선임호송원으로 수행하도록 하겠소.”
그것은 오달근을 궁궐까지 데리고 가서 처단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정충신이 말했다.
“오달근 중부장은 국경선을 지키는 핵심 장교요. 내가 자리를 비우면 그가 직접 야전군을 통솔해야 하고, 만포진의 행정 사무도 처결해야 하오. 나장들이 나를 잡으러 왔으니 나장들이 나를 호송하면 될 것이오.”
“나도 존심이 있는 사람이오. 나장들 보는 앞에서 내가 개망신을 당했는데, 그냥 덮고 가자고요?”
감히 금부도사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잡아다가 반 죽여놓아야 하는데...
“사안의 본질은 그게 아니잖소. 나를 국법에 회부하려는 것이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충성스런 나의 부하가 대들었는데, 그것은 내가 알아서 조치하겠소. 판사를 불쾌하게 했지만, 부정과 비리가 횡행하는 관향사를 혼내준 것을 장졸들은 누구나 없이 통쾌하게 여기고 있소이다.”
그때 밖에서 고함소리가 터지고, 싸움이 벌어졌다. 나장들과 장졸들 사이에 충돌한 것이었다.
“나라의 법이 완전히 개판이 되어버리누만.”
금부도사가 눈을 감고 어금니를 물었다.
“북방 변경은 본시 군인들이 거칠고 사납소. 그런 정신이라야 맹수같은 오랑캐들을 칠 수 있지요. 내가 그렇게 훈련시켰소.”
막영 밖으로 나오자 의금부 나장들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 있었다. 그들 앞에 우뚝 서있던 오달근이 외쳤다.
“요새끼들이 나를 생포하려 하는디 부하들이 가만 두겠소? 허벌나게 쳐맞제! 의금부 나리, 나는 당신들이 하나도 안무섭소야!”
그가 칼을 빼들고 금부도사에게 다가들자 금부도사가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대기시켜놓은 말 잔등에 올라 줄행랑을 놓았다. 나장들도 말을 타고 금부도사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정충신이 우두커니 서있다가 막료에게 말했다.
“행장을 꾸려라.”
정충신도 말에 올라 금부도사의 뒤를 추격했다. 그들 일행은 벌써 강계 읍내를 지나 성간에 이르고 있었다. 뭔가 뒤의 낌새를 느낀 금부도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정 첨사가 우리를 따르다니요?
“장수가 국법을 어길 수 있소?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소. 한양 가는 길을 내가 잘 아니 내가 안내하겠소.”
정충신이 애마의 궁둥이를 다시 차자 말은 비호처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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