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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95>

정충신은 언가리의 추궁에 정작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이들을 데려다 광화문도 보여주고, 남산에 올라가 활터와 기마대 훈련장과 도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의를 다지고 정보도 공유하고 싶었다. 형제국의 의를 강화하면 더많은 협력 가운데서 상호 부국강병을 도모할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조정 신료들이 난리칠 것이다. 상놈의 새끼들을 데려다 무엇에 쓰냐고 목에 핏대를 세울 것이다. 쌍것들 상대해서 얻을 것이 무어냐고 당장 그들을 쫓아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라고 감정이 없고, 생각이 없을 것인가. 고기만 먹고 사는 유목 기마민족답게 사나운 성질 그대로 나라를 분탕질해버릴 것이다.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져 있는데 누르하치의 사위 올고대가 따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신(使臣)도 왕래하고 물건도 주고받는 것은 내외의 간격을 없애자는 뜻인데, 지금은 마치 문고리 닫아걸고 손님을 청하는 것과 같으니, 서로 교류하는 신의가 있다고 말할 수 없소. 우리가 여러 차례 국서를 보내서 물어도 제대로 답서가 오지 않았소이다. ‘건주위마법족하(建州衛馬法足下)’ ‘후금국한(後金國汗)’이라고 쓰는데 건주위마법족하라는 모호한 말로 우리를 농락하기요? 우리를 어린 아이로 여기는가? 우리와 교류하면 우리에게 이로운가? 귀국에게 이로운가?”

누루하치는 사신이 올 때 재물을 가져온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군 포로들을 송환하려고 한곳에 모아두었다. 그런데 재물은커녕 포로를 돌려달라는 내용도 없는데다가 자신을 향해 ‘건주위마법족하’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해석이 여러 가지라는 여지를 주긴 했으나 대체로 어린애로 본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평안도 관찰사 박엽을 통해서였다.

누루하치에게 왕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내기엔 명나라 눈치가 보이고, 또 사대부들은 여진족을 불상놈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무방하다고 보고 평안도 관찰사로 입막음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평안도 관찰사 박엽은 사르후 전투 때부터 악명이 높는 자였다. 계집을 품고 다니며 상납 받고 계급을 팔아먹은 부패분자였다. 그는 희대의 탐관으로 찍혀 처형당한 후 평양 백성들이 시체를 가루로 만들어 허공에 날려버렸다. 그런 사람을 사신이라고 보냈으니 누르하치는 심히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대답해 보시오. 우리와 교류하면 우리에게 이로운가? 아니면 귀국에게 이로운가?”

올고대가 재차 물었다.

“누가 이롭고 누가 해로운지는 예상할 수 없으나,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로 전쟁에 시달려서 양국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 각자 국경을 지키며 대대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국서(國書)에 회답하지 않은 것은 실로 그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서 그러한 것인데, ‘모호한 말’로 농락했다는 것은 지나친 말씀이오이다. ‘사신을 왕래하자’는 말은 일리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근래 없었던 일이기 때문에 감히 독단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귀국에는 명나라 사람이 없는가?”

“유격 모문룡이 수군을 거느리고 와서 용천 항구에 정박해 있습니다.”

“저들이 조선군을 징발하면 귀국은 돕지 않을 것인가?”

“도우려고 했다면 약 1개월 전의 진강(鎭江)전투에 왜 우리나라 사람이 1명도 없었겠습니까?”

“두 원수가 우리에게 잡혀 있은 지가 오래됐소. 몽고의 장수 재새도 같은 해에 잡혀왔는데, 지난달 소와 양을 1만 마리로 속환(贖還:몸값을 치르고 돌아감)했소. 이런 예로 본다면, 두 원수의 가격도 높을 것이오. 데리고 가려한다면 몸값을 지불해야 하오.”

“덕분에 어제 만나서 회포를 풀었습니다. 화가 나면 잡아두고 화가 풀리면 놓아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니, 굳이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데려가겠다는 거요? 안데려가겠다는 거요?”

“데려가야지요. 대신 가격이 맞을랑가 모르겠소.”

며칠 후 누르하치가 언가리와 그의 아들 대해를 보내 말하기를 “아직도 사신의 왕래를 허락하지 않으니 조선국의 예물을 받을 수 없다. 돌아가서 조정에 아뢰어 사신의 왕래를 허락받는다면, 다시 와서 이 문제를 매듭지어라. 만약 허락을 받기가 어렵다면 억지로 요청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사신이 반드시 만포(滿浦)를 경유하여 돌아가는데, 무슨 의도인가?”

“별도로 다른 뜻은 없습니다. 저는 만포의 관원으로서 명을 받고 왔으니, 당연히 만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오랑캐 장수 2명이 나서서 “그것이 아니라 모 유격이 용천에 있기 때문에 의주의 길을 열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 교류하든지 말든지 분명하게 해야지, 어째서 굳이 몰래 가려고 하시오? 이미 진강으로 가는 길에 분부해서 접대하도록 했으니, 내일 그 길로 돌아가시오” 하였다. 오랑캐 장수의 말을 가로막고 언가리가 물었다.

“우리 후금과 조선은 군사들이 오가면서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상하게 하지 않았으니 우호적인 의도가 아니겠는가. 옥강 사건 등 변경의 사건들도 양국에 원한을 품은 것이 아니오. 그런데 조선이 우리를 홀대한단 말이오. 나중에 어떻게 이 무례를 감당하려고 그러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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