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98>

“모문룡의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로만 그러는 것 아니오?”

“그렇지 않소. 모문룡은 명나라 장수지만 명나라에서도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고 있고, 조선에서도 귀찮은 존재입니다. 물론 후금도 마찬가지지요. 모두가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자가 흉악하기 때문입니다. 장수란 애초에 장수로서의 품격과 금도가 있는 법인데, 그자는 내 고향 전라도 말로 간나구 새끼입니다.”

“간나구? 간나구가 뭐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간사스런 자를 말합니다.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고 별짓을 다하는 무뢰배를 말합니다.”

“그런 자를 지금 조선국은 지원해주고 있지 않소. 가도에 모셔놓고 무슨 벼슬자리인 양 먹을 것, 입을 것, 색정을 해결하라고 어여쁜 기생까지 넣어주고 있소.”

그렇게 말하자 정충신은 정작 할 말이 없었다. 명나라라면 말뚝에게까지 인사를 하는 것이 사대부의 태도다. 사대는 조정의 문화로 이미 체화되었고, 그것이 큰 예절국가인 양 스스로 치부한다. 그러니 그의 야유성 발언에 말발이 서지 않는다.

“나가 한번 나설 것이요. 나는 후금과 함께 갈 것이요.”

누르하치의 조카인 사을고성의 수장(守將) 서거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좋은 말이오. 하지만 홀홀단신으로 되겠소? 여전히 조선국은 명나라를 부모국으로 우러르고, 우리의 힘을 깔봅니다. 이래가지고 교린(交隣)이 가능하겠습니까. 모문룡의 행악을 막지 않고 더러워서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의 힘만 키울 뿐,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을 것이오. 조선국과의 교린은 한(汗) 합하께서 바라는 바이고, 여러 장수들이 조선을 헐뜯는 말을 해도 한께서 한사코 막으며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명나라와 원수가 된 것은 싸움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명나라가 여러 가지로 우리를 속이고 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은 원래 우리와 원수가 된 적이 없다. 적국이 많은 것은 우리에게도 이롭지 않으니 조선을 각별히 모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냥 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겠지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라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정충신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누르하치가 차관(差官)을 보내 모문룡 건 등 복잡한 문제를 접고 화친을 하자고 요구해서 조선측 사신 박규영과 황연해를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껏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진강 탕참에서 우리 수비군 장졸이 살해되었다. 부대의 말도 가져갔다.

“모문룡 일파가 조선과 후금을 이간질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요. 증거가 있소.”

후금에 체류하는 내내 정충신은 혼란스러웠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대두되고, 다른 문제를 처리하면 또다른 것이 올라왔다. 그래서 사신으로 출장 나온 자들이 책임을 질 것이 두려워서 탈주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대신 그는 후금에 대한 것을 손금보듯 볼 수 있었다. 정충신은 부대에 복귀해서 장계를 썼다.

-후금은 장차 천하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니 우리만의 근심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문룡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몰래 행군하여 습격한 일은 북변의 우리 수비군 진영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인데, 우리가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해는 오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와 원수가 될 때 칠 명분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들과 교린을 강화하는 동시에 우리 군사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장계 때문일까, 조정에서 갑작스럽게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병조판서 장만이 옷을 벗고 고향 통진으로 물러앉았다. 연령 때문에 은퇴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공명정대한 공사 처리가 권간(權奸)들의 시기를 받아 물러난 것이었다. 광해의 통치 기반은 의외로 허약했다. 병조는 강화되긴 커녕 몰락을 가져오고 있었다.

어느날 덩치 큰 사내가 만포진을 찾았다. 그의 말이 자르르 기름이 돌았다.

“나 이괄이오.”

눈썹이 짙고 우락부락한 눈망울에 말씨도 굵었다. 호방한 인상이었으나 한 성질하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콧방울이 큰 것이 고집스럽게도 보였다.

“얘기 많이 들었소. 그런데 여긴 어떻게...”

“나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지금 임지로 가고 있소. 만포진 정 첨사 얼굴 한번 보고 가려고 찾았소이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축하라니요.”

“후금국에서 이제 돌아왔으니 미처 알 수가 없었겠구먼. 정 첨사는 평안도 병마좌우후로 발령이 났습니다. 훈령증이 곧 도착할 거요.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임명장을 갖다 준 셈이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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