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 국면에서 묻히는 노동조건과 지역균형발전
형광석(목포과학대 교수)

아베 신조(安倍 晋三)로 대표되는 일본 지배세력이 내세운 수출통제, 즉 우리나라를 백색국가(white list,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 국가)에서 배제한 조치는 그들의 역사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19세기 말 이후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이 한국,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누린 제국주의에 대한 진한 향수가 그들의 몸 세포에 자리 잡았다.

일본은 ‘수출 관리’라 하고 우리는 ‘수출 통제’라 하는 한일 경제전쟁 국면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경제면에서도 넘을 수 있다는 도전의지를 자극했다. 정치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민주제도가 정착되고 정권교체가 평화롭게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일본보다 앞선다고 봐도 좋겠다. 시민의 성숙하고 차분한 대응도 민주화와 촛불혁명 과정에서 축적된 내공과 실력의 발현으로 보인다.

경제전쟁이 상승국면에서 조금 잠잠한 국면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생각해본다. 자리 잡은 공간과 밥 먹는 방식에 따라 각자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만, 경제전쟁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역주행하지 않는지 회의가 든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사람중심경제’가 뭣인지 헛갈리게 하는 조치가 나왔다.

첫째, 경제전쟁 속에서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조치가 후퇴할 조짐을 보인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의 국산화를 목표로 한 연구개발이나 대체품목 도입에 필요한 시험 등의 업무에서 주 52시간 노동제 예외 허용, 산업재해 예방 차원에서 기업이 작성하는 공정안전보고서와 유해·위험방지계획서의 심사·승인 기간의 단축 등이다. 주 52시간 노동제가 아직 시행 전인데도 벌써 그 속도를 조절하자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여당 원내 수석 부대표가 11일 대표 발의했다는 보도를 보고, 필자의 회의감은 더욱 커졌다.

둘째,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틀이 흔들리는 조짐이 교육부문 조치에서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 6일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대응 대학혁신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지난 11일 치 <연합뉴스>의 “대학구조개혁 계획 5년 만에 폐기…돈 없으면 알아서 문 닫아라”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교육부의 ‘대학혁신 지원 방안’에 관한 보도자료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렇다. “이번 방안은 ‘혁신의 주체로 서는 대학, 대학의 자율혁신을 지원하는 지역과 정부’를 주된 정책기조로 설정한다.”

‘자율혁신’은 매혹적인 언사지만 외부 충격이 없다면 일어나기 어렵다. 서울 소재 대학(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이 ‘자율 혁신’한다면서 지방의 현실을 고려할까? 지역균형 발전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 제고에 긴요함을 인정할까? 지방이 서울로 가는 학생의 자금원임을 인식할까? 언감생심이다.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 소재 대학이 스스로 자율로 입학정원을 감축할 동인은 거의 없다.

서울 소재 대학을 선호하는 성향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에서 서울 소재 대학은 입학 자원에 대한 독점적 지위에 있다. 출발선부터 서울에 소재한다는 점만으로 지방 대학보다 경쟁력 우위는 현저하다. 입학정원 감소 추이는 이를 보여준다. 대학교육연구소가 2018년 11월 발행한 <대교연 통계>를 보니, 입학 정원이 서울 소재 대학은 2013-2018년 기간에 3.199명 감소하지만 지방 소재 대학은 46,880명 감소했다. 그 감소율은 각각 3.5%와 11.2%이다. 지방 소재 대학 입학정원 감소율은 서울 소재 대학보다 7.7%포인트 높다.

지금처럼 지방대학이 계속 위축된다면, 서울 소재 대학 입학정원의 축소가 미미하다면,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쫓아서 당장 입시를 앞둔 청년은 물론이고 그 가족도 서울과 그 인근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욕구와 동력이 강해질 거다. 거북한 표현이지만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이제 보편적인 용어가 됐음에 유의해야 한다.

한일 경제전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기업 부문의 지배구조와 하도급관계에 대한 개혁이 묻혀서는 곤란하다. 최소한 노동자의 고통 분담에 상응하는 비례적인 조치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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