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되돌아본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닮은 점은 두 전쟁 모두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싸웠고, 전쟁은 선전포고 없이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이 승리한 점이다.

다른 점은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겼지만 러시아 ·독일 · 프랑스 등 3국 간섭으로 한반도 지배에 차질이 생겼고, 러일전쟁에서 이긴 후에는 미국과 영국의 양해를 얻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된 점이다.

1894년 2월10일(음력1월10일)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하여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들이 봉기했다. 5월31일에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고종과 민왕후는 청나라에 군대 지원을 요청했다. 특히 민왕후는 1882년 임오군란의 악몽 때문에 더욱 급박했다.

6월초에 청군이 아산에 도착했다. 일본군도 거류민단 보호를 구실로 인천에 들어왔다. 6월11일에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에서 전라감사와 화약(和約)후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7월23일 새벽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난입했고, 청·일 간에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7월25일에 일본 해군은 아산만 풍도 근처에서 청나라 함정을 기습 공격했다. 일본은 8월1일에 선전포고했고, 9월15일에 평양에서 청군을 격파하고, 9월17일에는 황해해전에서 청국함대를 격침시켰다.

1895년 2월에 북양함대 기지가 궤멸되자 이홍장은 일본으로 달려갔다. 이홍장은 피습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4월17일에 시모노세키 조약을 이토 히로부미와 체결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이다.

1.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승인한다.

2. 요동반도·대만·팽호 열도를 할양한다.

3. 2억 냥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한다.

그런데 6일 후인 4월23일에 러시아·독일·프랑스 3국이 일본의 요동반도 점유를 반대하고 나왔다. 일본은 4월29일에 요동반도 반환을 결정했다.

이러자 고종과 민왕후는 친러로 돌아섰고, 일본은 1895년 8월20일에 민왕후(1897년에 명성황후로 추존)를 경복궁에서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을미사변). 1896년 2월11일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고(아관파천), 1897년 2월20일에 환궁하여, 10월12일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한편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군비를 확충하고 철저히 준비했다. 1902년 1월20일에는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고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공동 저지하기로 했다.

1904년 2월8일 밤, 일본 해군은 여순 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 포격했고, 2월10일에 선전포고했다. 고종은 선전포고 하루 전인 2월9일에 국외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듯 서울을 점령하고 2월23일에는 강제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8월22일에는 친일파 재정 · 외교 고문(顧問)을 통해 내정간섭을 본격화하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었다.

일본군은 파죽지세였다. 1905년 1월에 여순을 함락했고, 3월에는 봉천도 점령했다.

이러자 러시아의 유일한 희망은 발틱 함대였다. 1904년 10월에 발트해를 출발한 발틱 함대는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 위하여 7개월 만에 대한해협에 도착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는 1905년 5월27일에 발틱 함대를 궤멸시켰다.

한편 도쿄를 방문한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는 7월29일에 가쓰라 수상과 밀약을 맺고.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상호 승인하였다. (이 밀약은 1924년에야 공개되었으니 고종이 알 리 없었다.)

8월12일에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맺고 한국의 지배권을 보장받았다.

9월5일에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중재아래 러·일간에 ‘포츠머스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 1조는 ‘러시아는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 · 경제 · 군사적 우월권이 있음을 인정한다.’였다.

이렇게 약소국이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는 약육강식의 국제질서는 냉혹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 중재 덕분에 190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1월17일에 일본은 을사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탈취했다.

11월24일 미국 본토로부터 철수 통고를 받는 주한미국공사는 11월28일에 가장 먼저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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