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4부 풍운의 길 1장 인조반정<405>

비로 이괄이었다. 그는 김류를 빗대어 이렇게 비난했지만 김류로 말하면 능양군을 왕으로 추천한, 요즘식으로 말하면 킹메이커다. 이런 거물을 출병을 미적거렸다고 인간 취급을 안했으니 자기 죽을 꾀를 낸 셈이었다. 그러나 인조는 그런 이괄을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과인에 대한 충성도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거친 성격을 다스리면 어디에 중용해도 쓰임새가 있지. 영민하고 과단성이 있지 않은가.”

왕은 그를 한성판윤 겸 좌포도대장으로 임명했다. 왕실인 육조에서 복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성판윤도 결코 낮은 벼슬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괄은 이등공신에 대한 대접이 두고두고 억울하고 분통터졌다. 중신들이 그를 경계하자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함경도 군사들까지 끌고 와서 판을 엎어주니 날 엿먹였다 이거지? 곧 죽어도 그렇게는 안당하지. 나를 모함한 새끼들을 봐버릴 거야.”

복수심은 감춰야 빛이 난다. 상대방이 안심하고 긴장을 풀 때 단숨에 멱통을 따버려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방방 뜨니 김류, 이귀 등 서인 공신들이 이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역공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저런 자에게 칼을 쥐어주면 어떡하나. 칼춤 면허장을 내준 셈이지. 저런 놈에게 좌포도대장이라니,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

이괄의 성질대로라면 그들 모가지가 언제 탱자 열매처럼 떨어져 나갈지 몰랐다. 그런 어느날, 이괄은 부원수 겸 평안병사로 발령이 났다. 이서 김류가 선수를 친 것이었다. 아무리 기고 나는 장수라해도 보직이 바뀌고, 휘하 병사를 지휘할 명령권이 사라지면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평안도 영변에 머문 도원수 장만은 노구에 눈병을 앓아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조정은 후금이 침입할 우려가 있다고 하는 명분과 함께 도원수 장만의 안질(眼疾)을 구실삼아 이괄을 부원수 겸 평안병사로 임명해 쫓아버렸다. 왕은 멀리 떠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그대의 용맹성이야말로 변경을 지키는 듬직한 보루로다. 의주에 나가있는 정충신 병마좌우후와 함께 국경을 단단히 지킬 것을 명하노라.”

그리고 노잣돈까지 풍부하게 내렸다. 골칫거리는 이렇게 눈에 안보이는 곳에 쳐박아버려야 안심이 된다. 이괄이 제 성질 못이겨 홧김에 사표라도 내던지면 더 좋다. 재빨리 수리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가 아니어도 나라를 지키는 장수는 숱하게 깔렸다.

이때 조정은 하나는 보고, 다른 하나를 못보는 중대한 실책을 범했다. 이괄이 불만을 폭발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군사를 길러 치자, 정변을 일으키자... 달리는 말에 바람까지 실어준 꼴이었다. 이괄은 어느날 의주땅에서 병마좌우후로 복무중인 정충신을 찾았다.

“어이, 병마좌우후, 당신은 누구 편이오?”

두 사람은 강계 쪽으로 난 삼림 속 주막에 들었다. 조를 재료로 해서 만든 독한 밀주를 연거푸 마셨다. 금방 산에서 잡아온 푸짐한 멧돼지 고기가 술맛을 당겼다. 새하연 피부의 강계미인이 옆에서 술시중을 드니 모처럼 기분이 났다.

“내가 누구 편이라니? 후금 편이라도 든다고 생각하나?”

“그것 말고, 조정 새끼들 중 누구 편이냐고?”

“이 사람아, 조정 누구 편이 아니라 난 조선 편이야.”

“그런 족같은 얘긴 말고, 중앙 요로의 누구 줄을 잡았냐니까. 병마좌우후 벼슬이 저절로 되는 줄 아는가?”

“난 누구에게 자리 봐달라고 손 써본 적이 없어. 일하다 봉개 그런 자리가 주어졌제.”

“일하다 봉개? 그거 어디 말이요?”

“내 고향 전라도 말이여. 군인으로서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니 자리가 주어졌더라는 것이지.”

“정 형, 나한테 군사 오십만 빌려주소.”

정충신은 시건방을 떠는 이괄을 술로 맞대거리하고는 있었지만 불쾌했다. 나이도 열 살이나 아래인 것이 웃 벼슬 달고 나타나더니 자신을 깔아뭉개고 거드름을 피는 것이다. 그가 거듭 독촉했다.

“군사 줄 거야 안줄 거야?”

“니가 컸으면 얼마나 컸다고, 반말이냐. 니가 함경도병마절도사로 가면서 나한티 형이라고 존경한다고 했냐, 안했냐? 한양 한번 갔다 오더니 부원수 땄다고 나한티 웃사람으로 굴어? 이런 씨발놈의 새끼, 인간이 되어야제. 그런 놈한티 군사 한 명이라도 주겠냐?”

“부원수를 막대기 취급하네?”

“너 어따 대고 반말이고, 명령이냐.”

당장 주먹이 날아가 이괄의 전투모를 날려버렸다.

“아따, 형님 왜 그러시오. 좋은 일 도모하자고 한 걸 가지고. 형님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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