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4부 풍운의 길 1장 인조반정<406>
“좋은 일 도모하자고? 무슨 일이여?”
“엎어버려야지요!”
“뭘 엎어? 뭣 땀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놈이 가져가버렸소.”
“그런 거 한두 번 겪나?”
그런데 이괄의 말은 엉뚱했다.
“반정 정사공신 33인 중 공훈이 3등급으로 나뉘는데, 내가 2등급이란 말이오. 화날 일 아니오?”
“화날 일?”
정충신은 이괄이 반정 봉기 시 함경도 군사를 진두지휘해 창의문과 창덕궁을 단숨에 점령하고, 궁궐을 쓸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용맹이 아니었다면 궁궐 수비대를 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일등공신이 되지 못하고 2등 공신이 되었단 말이오. 이것 엎어버려야 하는 것 아니오?”
“그것 때문에 군사 오십을 달라고 했던 거여?”
“그렇지요. 그러면 형님도 역성혁명의 일등공훈자가 되지요. 우리가 한번 엎어서 우리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한번 해보니 별 것 아닙디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요.”
“그러니까 반정의 공훈으로 보자면 이괄 부원숙 일등공신이 되어야 하는데 사대부들의 협잡 때문에 이등공신으로 격하되었다, 그 말이제? 그래서 엎어버리자?”
“그렇소.”
“에라이 못난 새끼. 그따위 것 가지고 혁명을 하자고?”
정충신이 단번에 술상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왜 그러시오.”
“쪼잔한 새끼구먼. 그런 명분으로 나라를 엎자고? 그건 명분도 아니여. 자기 잇속 챙기자는 행패지. 나 실망했네. 이괄의 배창시가 고렇게 좁은 줄 몰랐네. 사나이 대장부가 천하를 엎을라면 명분과 대의가 있어야 하는디, 고작 이등공신이 된 것이 분해서 나라를 엎자? 에라이 못된 인간. 고 반반한 쌍판대기가 미안하지도 않나? 나는 그렇게는 못해. 일등공신이면 어떻고, 이등공신이면 어떤가. 사대부 중신들의 농간을 그딴 식으로 대응하면 결코 그자들을 타고 넘을 수 없어.”
“이리 돌려치나, 저리 돌려지나 치는 건 메 아니오. 좌우지간 때려엎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듭시다.”
“좋은 세상 만든다고 해도 그런 것으로는 안된당개. 나 가네. 술값은 부원수가 내게.”
그는 그길로 도포자락을 한껏 제치고 주막을 나섰다. 이괄은 뒤따라 나서려다 말고 다시 술방에 주저앉았다. 그가 기생에게 말했다.
“이름이 애생이라고 했겄다?”
“네. 애생이옵고, 열여덟이옵니다.”
“너는 나를 따라가야 한다. 영변대도호부로 가자. 안따라 오면 너를 죽이고 가겠다.”
이괄은 거사 모의를 안 이상 애생이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거사를 치르기 전까지는 그녀 입을 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진영으로 데리고 가 첩실로 앉혀야 했다.
정충신은 진영으로 돌아오면서도 이괄에게 실망을 해서 스스로 화가 치밀었다. 틀도 괜찮고, 집안 좋고, 머리도 좋고, 용맹성도 있는데, 너무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다. 도대체 배우고 익힌 것이 고작 그 정도 그릇이란 말인가. 이괄은 선조 말기 10대 때 관직에 올라 선전관부터 목사까지 높은 직책을 오갔다. 집안 좋고 관운도 좋아서 정충신보다 나이가 한참 아래였지만 지금은 그의 위의 벼슬을 차지하고 있었다.
좋은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것이 독불장군에 비타협적이고 오만한 품성을 낳았을까.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거나나 출세한 부모의 후광으로 인생 편하게 살아가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니 자수성가한 사람들, 집안의 후원도 없고, 연줄도 없이 오직 맨땅에 박치기하며 살아온 무지랭이 출신들에게 그는 얄밉고 괘씸한 대상이었다.
어느날 정충신 진영에 여인이 찾아왔다. 곱게 차려입은 옷에 더해 미모가 출중한 여자였다.
“장군 애생이옵니다.”
객주집의 기생 애생이었다.
“무슨 일인가.”
“영감이 심부름 보내서 왔나이다.”
애생이 가마에서 커다란 궤짝 세 개를 내렸다.
“산삼뿌리와 녹용이옵니다. 영감이 선물로 보낸 것입니다. 여기 편지도 있사옵니다.”
애생이 옷소매에서 서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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