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채 동부취재본부 취재국장의 ‘순천만에서’

나라 잃은 8월 29일 경술국치, 잊지 말자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이 치욕적이고 악랄한 조문의 시작과 함께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10년 경술년 8월 16일 3대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비밀리에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에게 합병 조약안을 넘기며 수락을 독촉했고, 22일 조약 체결, 그리고 일주일 뒤인 29일 공포됨으로써 519년간이나 지속한 조선의 모든 통치권이 완전히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제가 강제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은 날로 ‘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경술국치’, ‘국치일’ 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8월 29일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이라고 기억하고 있을까? 일제식민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항거했던 3월 1일 독립만세운동과 나라를 되찾은 8월 15일 광복절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는 많아도 나라를 빼앗긴 날이 언제인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한 매체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경술국치가 어떤 것인지 아는 신세대의 비율은 51.2%라고 한다. 이 날을 기억하고 소환하지 않는다면 후대에 또 다른 경술국치의 치욕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109년 전 그 날 일제는 우리나라의 모든 권리를 빼앗는 병합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과 인권유린 아래에서 36년 동안 잊을 수 없는 굴욕의 세월을 보냈다.

또한 1945년 광복이후 지금까지도 일본은 뻔뻔하게도 자신들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도덕적인, 비인간적인 모든 행위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우리를 유린했다는 우리의 소리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앵무새같이 형식적인 대답만을 하고 있다.

경술국치를 통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일본과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인정한 것, 러시아가 1903년 일본과의 협상에서 북위 39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를 나누자고 한 것, 1905년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일본의 조선 점령을 눈감아주기로 한 것, 세계 2차대전 종료 후 패전한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가 분할된 것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일본이나 강대국들에게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의 힘을 키워야할 것이며, 또한 우리 내부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겠다는 다짐과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에 분노하고 성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응징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힘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힘이 없다면 응징은커녕 또다시 굴욕을 당할 수 있다. 굳이 무력적인 지배가 아니더라도 정신적, 문화적으로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겨 버릴 수 있다.

과거는 돌아갈 수는 없어도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암울한 치욕의 시기, 반만년 역사를 단절시킨 수치의 역사. 그러한 치욕과 질곡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지금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우리 모두 경술국치일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끊임없이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희생한 선열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살려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현재의 국내외적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교훈이 역사 속에 있다. 역사에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일이 있는가 하면, 슬프고 수치스러운 일도 있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이라도 익히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대한민국의 국권과 주권을 지키는 일, 경술의 국치에서 깨달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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