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모이면 말이되고…정신이 된다
백현옥(송원대학교 교수)

봉오동 전투, 김복동, 박열, 말모이, 미스터 선샤인, 귀향, 눈길, 아이캔 스피크…

3·1절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전후로 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개봉했다. 이 가운데 조선어학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말모이’에서 나온 ‘글자가 모이면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이면 말이되며 말이 모이면 정신이 된다’는 대사가 요즘 들어 가슴에 콕 와 닿는다.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과 맞물려 더 뜨겁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말과 성씨, 문화를 말살하려던 1940년대의 어느날과 경제적 타격을 주겠다는 2019년의 어느날이 묘하게 닮아있다.

일본불매운동이 벌어진지 한달, 실제로 불매운동에 대한 붐이 일어나고 속속들이 올라오던 일본 기업과 제품 리스트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흔하게 보고 쓰던 그 이름들이 일본 제품이었다니…. 일본은 공식적인 선포는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어느새 우리 곁에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에게 주는 금액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줄줄이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주변 사람들, 물건을 살 때도 리스트를 확인해보는 가족들, 일본과 관계 없다는 성명을 내놓은 기업들. 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국민들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꼭 동참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생겼다.

경제보복 이후 소녀상 전시중단은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꽤나 많은 분노를 일으켰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소녀상 되기’ 캠페인은 SNS상에서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두 개의 의자와 소녀상 포즈를 따라한, 웃음기 없는 사진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특히 한국으로 퍼지며 한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보이는 사진들이 남녀 성별과 관계없이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역시나 자랑스럽고 멋있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평화를 상징할 수 있다면 소녀상이 되는 것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딸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당하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 이 말은 ‘엄마부대’라는 떳떳하지 못할 이름을 걸고있는 단체의 대표가 한 이야기다. 그 대표는 저 말과 함께 아베를 향한 사과와 세월호에 대한 망언으로 굉장히 이슈가 되었다. 저 말을 보자 소름이 끼쳤다. 내 딸이 스스로 다쳐 생채기만 나도 속이 상한데, 내 딸이 사랑한다는 남자를 데리고 온다한들 아무리 좋은 남자여도 아쉬울 것 같은데, 자신의 딸을 걸고 한다는 말에 내가 힘이 쭉 빠졌다. 과연 위안부 할머니들 또는 자기 딸의 얼굴을 보면서도 저런말을 할 수 있을까. 말모이의 대사가 다시 떠올랐다. “말은 곧 정신이다.”

우리는 처음 말을 배울 때 자음과 모음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에 대한 호칭부터 자주 접하는 것들을 발음하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자주 하는 것, 보는 것, 만나는 사람 등에 대한 말을 빠르게 습득한다. 말로 표현이 가능해지는 시기에 우리는 글을 배우게 된다. 자음과 모음, 받침, 띄어쓰기와 같은 글쓰기를 배우게 되고 익숙해지면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생각은 자신이 자주 하는 것, 보는 것 등으로부터 비롯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쩌면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내용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여러 가지 망언과 악플들이 함께 떠올랐다. 나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데 쓰이는 것. 특히나 유명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과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고 불쾌한 내용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저 글을 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아무리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보도록 기록하는 내용이 저렇게나 무자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내가 쓰는 말과 글에 대한 것은 어떠한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힘들게 한 적은 없었는가. 앞으로의 말과 글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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