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농인-남도愛 산다 <15>함평 정찬국씨

카이스트 연구원·대학 교수에서 농부로 새 삶

인생은 배움의 연속 “죽을 때까지 배우고 싶다”

부모님 대장암으로 사별해 약초 연구하며 귀농

환·비누·바디워시·스프레이 등 약초가공도
 

9만9천㎡(약 3만평) 규모의 전남 함평군 학교면 야산에서 엄나무와 어성초 등 10여가지 작물을 재배하는 ‘함평 어성초·약초원’ 정찬국(66) 대표.

KAIST(한국 과학 기술원) 연구원, 신학대학 교수…. 농업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가지 직업을 모두 다 경험한 귀농인이 있다. 전남 함평군 학교면에서 10여가지의 약초농사를 짓고 있는 ‘함평 어성초·약초원’ 정찬국(66)대표. 정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약 10여년간 화학공학 설계를 연구하고, 20여년간 목회활동과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는 9만9천000㎡(약 3만평) 규모의 야산에서 엄나무와 어성초를 비롯한 10여가지의 약용작물을 수확해 환, 분말, 스프레이, 바디워시 등으로 가공·판매하며 연간 8천여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정 대표는 약초들을 재배해 환·스프레이·건초 등으로 2차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도전은 끝이 없다=

“…서울생활 50년 중 KAIST 연구원과, 20여년의 목회와 신학대학 교수, 학장을 역임하고 은퇴 후 내고향 함평으로 귀농한 함평어성초. 약초원 대표 정찬국 박사가…” 정씨가 판매하는 제품에 한장씩 꼭 들어가는 제품 사용 설명서의 한 부분이다. 언뜻 봐도 대단한 경력을 가진 그는 KAIST(한국 과학 기술원)에서 화학 공학을 설계하는 연구원이었다.

연구원 시절 정씨는 학구열로 똘똘뭉쳐 남는 시간을 활용해 화학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다. 그 중 하나가 신학이었다. 종교생활을 꾸준히 하던 그는 평소에도 신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원으로서 낼 수 있는 여유시간이 많지 않았던 탓에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 하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자고 마음먹은 건 연구원 생활이 10년차에 접어들면서 였다.

30대 후반의 그는 나이가 들어가며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기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 해보고 싶기도 했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신학이었고 공부를 하며 점차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학교에 다시 입학해 공부를 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후 1994년 신학학교로 입학해 신학석사·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목사, ‘아멘교회’ 담임목사 등을 역임했다. 이어 신학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아 후학양성에도 힘쓰며 20여년간 믿음과 사랑을 전파했다. 신학생활을 이어가던 정씨는 부모님 뿐 아니라 몇명의 친척이 대장암을 앓다 돌아가신것을 계기로 또 한번 직업을 바꿨다.

가족 중 상당수가 암으로 투병해 정씨 본인도 암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학연구를 통해 직접적인 예방과 치료를 하는 것이 었지만, 당시 그는 60대를 바라보고 있던 터라 직접 농사를 지어 약초를 재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후 2016년 함평으로 터를 옮겨 어성초를 재배하고 있다.
 

정 대표가 재배하는 어성초. 어성초는 잎에서 생선의 비린내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여개 약초·10여가지 가공제품=

염증 치료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어성초는 최근 아토피 피부질환에도 좋다고 알려지며 인기가 많은 약초 중 하나로 꼽힌다. 가벼운 염증성 질환부터 항생제 치료의 보조요법으로 사용될 만큼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정씨는 다양한 어성초의 효과 중 해독작용을 눈여겨 봤다. 그는 지난날 지네에게 물려 어성초를 바르고 나았던 경험이 있어 이런 효능을 가진 어성초라면 직접 농사를 지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농하고 처음 1년은 수입이 없었다. 작물의 특성상 2차가공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구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물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홍보가 부족해 판매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처음에는 수익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2차 가공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며 “다행히 시간이 흘러 함평군에서 국향축제와 나비축제 때 홍보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를 시작으로 일이 없는 날이면 함평군 곳곳과 수도권 등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홍보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를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홍보를 할 때 고객과 직접 만나며 소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어성초는 가공을 하지 않고 먹으면 쓰고 비린 맛이 강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꺼려한다. 이러한 문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소비자의 이야기를 듣고 참고한 후 더 쉽게 접하고, 좋은 제품으로 가공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한 결과 어성초 하나로 10여가지의 제품으로 가공했다.

특히 정씨의 제품은 효능이 좋기로 입소문이 났다. 꾸준한 소통이 바탕이 돼 신뢰가 쌓였고, 고객들은 정씨에게 다른 작물들도 수확해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씨의 제품은 사용하기에 편하고, 믿을만 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때마침 그의 산에는 엄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새로운 작물을 심기보다는 기존의 자원을 활용해 규모를 늘리자고 마음 먹었다. 엄나무는 원래 그의 산에 있었던 자원이었던 이유로 투자비용도 들어가지 않았다. 또한 가공도 어성초와 비슷한 형태로 하기 때문에 연구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고객의 의견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들어 단골고객까지 확보했다. 단골고객은 또 정씨에게 다른 작물을 요구했고 정씨는 머윗대, 작두콩 등을 차례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씨는 고객과 소통하고 작물을 늘려가 수익도 올리며 평판도 좋아지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그는 지금 약 3만평의 야산에서 어성초, 엄나무, 작두콩을 포함한 약 10여가지의 작물을 재배해 환, 분말, 비누, 스프레이 등 10여가지의 제품으로 가공한 후 판매하고 있다.
 

정 대표의 대표 작물 중 하나인 엄나무.

◇인생은 속도 보다 방향=

정씨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 자신만의 정확한 지침을 세워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귀농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며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방향을 잡았으면 흔들리지 말고 끊임 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능하다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 보기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면 어느 순간 길은 열려 있을 것이다”며 “하지만 그만큼 사전 준비와 계획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직접 만든 제품들을 해외로 수출해 판로를 개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학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아 후학에 힘을 쏟던 시절 그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호주 등으로 진출해 선교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해외에 나가있는 제자들을 통해 엄나무와 어성초의 해외 반응을 살핀 후 해외 실정에 맞게 개량해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사진/송민섭 기자 son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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