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는 그만했으면 한다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민주주의는 무엇이 옳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서 있는 체제다. 누구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다. 이런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의견과 내 의견을 서로 공존 가능한 경쟁의 상대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규범은 상대를 규정함에 있어 거부감을 갖게 하는 용어를 앞세우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파당과 내가 속한 파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쟁이나 혁명으로 방법으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견과 차이를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혹은 그런 차이와 이견을 통해 배울 수 있어야 민주정치를 이끌고 또 지킬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길을 잃었다. 한쪽은 혁명의 논리로 상대를 대하는 것 같고 다른 쪽은 전쟁에 나선 것처럼 상대를 대한다. 상대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대를 없애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대립하는 양쪽 모두 상대보다 좀 더 바람직한 대안을 추구하려는 성실한 노력과 준비 대신 강한 언어와 공격적 태도로 일관한다. 자신이 믿는 옳음에 대한 헌신만 있으니 상대에게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물론이다. 모든 것이 상대의 잘못일 뿐,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돌아볼 의사는 없다. 의미 있는 논쟁이 들어설 여지가 있을까? 없다. 합리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불모의 흥분 상태가 지배하는 정치, 파당적 싸움만 있는 정치에서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규범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가 될 수 없다.

시민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경쟁하는 정당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도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대화가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정형화해서 비난하는 일이 일상화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소수의 횡포’뿐이다. 다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체계는 이들 무례한 소수에 의해 파괴된다. 그들은 동료 시민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사회는 더 깊이 분열되고 시민 개개인은 동료 시민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받는다.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더 아프게 할 비난의 소재를 찾는 일에 열의를 보이는 상황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나 정중함 같은 덕목이 자라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인 참여자, 나아가 도덕적 자기 결정과 정치적 선택의 능력을 갖춘 주권자에 있다. 좋은 정치란 가능한 한 그런 수준의 시민 주권이 실천될 수 있는 조건을 성숙시키는 데 있다. 공적 논쟁의 규범을 준수하면서 합리적 토론과 합의의 형성을 모색해 갈 수 있어야 좋은 정치다. 정치를 좋게 만들고 싶다면 상대를 야유하고 모욕하는 일이 아니라, 바람직한 변화의 목표와 내용을 구체화하는 일에 더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남긴 폐단을 척결하고자 한다면 그보다 더 시민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책임성의 규범을 준수하는 좋은 정부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 민주당이 과거 자유한국당이 집권당일 때보다 국회를 더 잘 이끌고자 한다면 자유한국당이 보여주는 잘못과 한계를 반기며 야유하기보다는, 언어와 정책 행동의 모든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수준과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비록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 차원에서 성과가 있을 때 지금과 같은 나쁜 정치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유익함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미래도 없고 대안도 없는 양극화 정치에 빠져버린 데에는 자유한국당의 책임만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집권당과 청와대 스스로 과거 정권에 비해 얼마나 달라진 방법으로 정치를 이끌어왔는지 돌아보고, 이제라도 우리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누가 집권하든 여당일 때는 여당스럽기만 하고 야당일 때는 야당스럽기만 하면 변화가 없다. 누구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개척하는 쪽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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