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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16)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16)

아, 너희 훈신들이여(嗟爾勳臣)
잘난 척하지 말라(毋庸自誇)
그들의 집에 살고(爰處其室)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고(乃占其田)
그들의 말을 타며(且乘其馬)
또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又行其事)
너희들과 그들이(爾與其人)
돌아보건대 무엇이 다른가(顧何異哉)

“어떻소이까.”

이괄이 ‘상시가’를 읊조린 뒤 정충신의 눈치를 살폈으나 정충신은 다르게 말했다.

“우리 군사끼리 충돌하면 이때를 노려서 가도를 점령한 모문룡이 튀어나올 것이오. 후금도 이때다 하고 조선반도로 진격할 것이오. 나로서는 나라를 먼저 살피는 것이 군인의 도리라고 생각하오이다. 세상이 어떠하든 군사는 엄히 나라를 지켜야 할 것이오. 경고하건대, 더 이상 내 앞에서 모반 얘기는 꺼내지 마시오. 나는 부원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지만 나라를 엎겠다고 하면 내가 먼저 나가서 막을 것이오. 술병이 들어 자빠져있는 영변 좌병방을 지금 데리고 가시오.”

정충신이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이괄이 부원수 체통에도 불구하고 아쉽다는 듯 애걸했다.

“사형, 반정 과정에서 주도 세력인 거의대장(擧義大將) 김류의 우유부단한 처사대로라면 우리는 벌써 다 죽었소. 그것을 내가 바로잡은 거요. 신경진이란 자, 잘 아시지요? 그자는 반정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일등공신이 되었소. 왜 그러는 지 아시오? 바로 이판대감 이귀란 자가 끼워넣어서 참여하지도 않은 자를 1등공신에 올린 것이오. 화나지 않소?”

신경진은 임진왜란 초기 탄금대전투에서 4만여의 조선군이 왜군에 전멸하자 자결한 신립 장군의 아들이었다. 그는 신립의 벗 백사 이항복이 그의 아비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그를 경원부사와 벽동군수로 근무하도록 했다가 이귀가 평산군수 재임시 중군장으로 전속되어 복무하면서 이귀와 함께 반란 준비를 했다. 그러나 계획이 누설되어 효성령(曉星嶺) 별장(別將)으로 밀려나 인조반정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사람이 무던했으나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오판이 잦아 징계를 자주 받은 사람이었다.

임진왜란 직후 부산진 첨사가 되었을 적에 왜 열도를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화의를 반대하여 사절단을 쫓아버렸는데, 그 일로 체임(녹봉을 일정 기간 받지 못한 벌)을 당했고, 광해군 시기,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정책을 펴면서 나라의 중심을 잡아나갈 적에는 대안없이 비판의 목소리만 냈다가 정직이 된 적도 있었다. 결국 좌천 인사에 불만을 품은 때, 김류 이귀 최명길이 꾸미는 반란 모의에 참여해 외척 관계에 있는 능양군(인조)을 모반 대오에 연결한 공로가 있었다(그는 후에 3정승에 올랐다).

정충신은 그런 그를 정치장교라고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같은 백사(이항복) 문하였지만 생각과 지향하는 길이 달라서 시국을 보는 눈도 달랐다. 길이 다르면 서로 다른 길을 가듯이 지금은 서로 소 닭쳐다보듯 지내오고 있었다.

“사형, 화나지 않소?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신경진 따위를 ‘분충찬모립 기명륜정사(奮忠讚摸立 紀明倫靖社)’라는 이름으로 일등공신에 녹훈을 주고 평성군에 봉했단 말이오.”

다분히 정충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화를 북돋는 것이었다.

“부원수 어른, 나는 그런 논공행상에 관심이 없소이다. 백척간두에 놓여있는 나라를 굳건히 지키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오.”

“지금 조정은 후금을 배격하고 명나라를 다시 모시자고 난리법석이요.”

“그건 이괄 장수도 마찬가지 아니오? 자기 이익에 따라서 외세를 이용하고 있으니 나라가 갈팡질팡이오. 나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 신흥국가 후금과의 관계를 증대하고, 그들과 화의하면서 변경을 안정시키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오. 그런데 사대부는 자기 이익과 결부되어 사대하느냐 마느냐의 근거로 삼는단 말이오. 참으로 민망한 일이오. 이렇게 나가면 외세가 먼저 우리의 진의를 알고, 덤빌 것이오.”

“알았소. 이것으로 끝내겠소. 나중에 서로 목숨을 구걸하지 않도록 합시다.‘

이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거칠게 영청(營廳)을 나갔다. 기왕에 기밀이 누설된 마당이라면 빨리 선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괄이 기방에서 나온 좌병방을 데리고 영변으로 돌아가는 도중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그가 좌병방을 무릎 꿇게 한 뒤 준엄하게 꾸짖었다. 온 산천은 눈발이 드세어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최 병방 듣거라. 너는 부원수의 명을 거역하고, 또한 엽색으로 탈선했다. 안주 방어사의 계교에 넘어가 주색(酒色)에 취해 거사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하였다. 너를 살려주면 필연코 우리를 배신할 것인즉, 여기서 칼을 받아라.”

그 말과 함께 이괄의 장검이 허공을 한번 크게 가르면서 좌병방의 목을 쳤다. 좌병방의 두상이 나무열매처럼 눈밭에 톡 떨어졌다. 잘려나간 목과 두상에서 선연한 핏물이 눈밭에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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