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0)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20)

그 시간 이괄은 일만삼천여 군사를 이끌고 영변을 출발해 박천군을 지났다. 맹중 고을에서 이십리쯤 달렸을 즈음 죄인을 끌고 가는 행렬과 맞닦뜨렸다. 이괄이 나서서 죄인 압송 행렬을 막았다.

“어디서 오는가”

“구성에서 내려온다.”

“압송된 자 죄목이 무엇인가?”

선전관이 불쾌하다는 듯 눈알을 부라렸다.

“국사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그 태도가 무엇이냐? 너는 누구냐?”

“보면 모르느냐. 반란군을 쫓는 관군이다. 우리 기라병을 보아라.”

과연 기라병들이 관군 깃발을 흔들고, 병사들 역시 관군 복장이다. 군사들은 각 고을의 현감 따위 사병(私兵)들에게서 볼 수 없는 군기가 꽉 잡혀있었다. 선전관이 금방 꼬리를 내렸다.

“장군, 알겠습니다. 압송해가는 이 자는 이괄이란 자와 모의해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요. 의금부로 끌고가서 조지면 다 불겠지요.”

이괄이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포박된 채로 형틀 안에 갇혀 우마차에 실려가는 자를 보았다. 그는 어지간히 두둘겨맞은 듯 상투가 흐트러진 채 머리칼이 산발했고, 얼굴이 깨졌으며, 홑적삼은 핏물이 얼룩져 있었다.

“나이도 어지간히 먹은 것 같은데, 이 죄인이 누구라고 했겄다?”

“구성순변사 한명련이란 자요.”

이괄이 속으로 놀랐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죄인을 바라보았다. 만난 적은 없으나 그의 서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라에 대한 걱정과 힘께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이괄을 동정하는 내용이었다. 이괄이 따르는 군졸들을 향해 명령했다.

“호송관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잡아 묶어라. 물어볼 것이 있다.”

금부도사, 선전관 등 호송관들이 일시에 묶였다. 이괄이 수레의 형틀에서 한명련을 끄집어내 포승줄을 풀고 이동 병참 보급대로 데려가 술을 한바가지 떠먹였다. 정신이 나간 듯하면서도 묶인 몸이 풀리고, 내력없이 술을 마시자 한명련은 한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빈 속에 먹은 술인지라 금방 주기가 돌았다.

“당신 나 모르시요?”

이괄이 물었다.

“모르겠소. 뉘시오?”

“내가 팔도부원수 이괄이오.”

순간 한명련이 몸을 떨더니, 으으으 섧게 울었다.

“내 한 순변사 처지를 아오이다. 서신을 받았소만 영변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병사들 훈련에 매달렸으니 답서할 시간이 없었소.”

“짐작하고 있었소이다. 장하오이다.”

한명련은 임진왜란 시 경상우도 별장으로서 의병장 곽재우 휘하에서 적을 물리친 공적으로 선조로부터 청람삼승포(靑藍三升布) 두 필을 상으로 받은 야전 무장이었다. 진주 방면에서 왜의 침공이 드세어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의병장 김덕령과 함께 진지를 보수하고 방어벽을 쳤다. 정유재란 때에는 권율의 휘하에서 회덕과 공주에서 분전했다. 임진왜란 말기에는 의병장 정기룡 부대와 합세해 적군을 밀어냈다. 곽재우, 김덕령과 함께 야 성향이 짙었고, 미천한 신분 때문에 공을 세우고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완고한 조정 사대부는 의병장 곽재우, 김덕령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그를 업수이 여겼다. 사헌부에서는 그의 신분을 들어 체직(遞職:벼슬을 갈아줌)을 거부했는데 은퇴기에 어찌어찌 구성순변사(1623년, 인조 1년)에 보직되었다. 순변사는 우역(郵驛), 농형(農形), 성곽을 순찰하는 한직이었다. 그동안의 전공에 비해 보잘것없는 벼슬이었다. 그래서 사표를 낼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이괄이 발기하자 냉큼 합류할 생각을 가진 것이다.

“한 순변사는 이제 살아도 살았다 할 것이 없소. 나와 서신까지 주고 받고, 또 나를 만났으니 꼼짝없이 나와 내통한 것이요. 나를 따르겠소, 아니면 그들에게 칼을 받겠소?”

무고를 당해 압송당한 처지에 따르지 말라고 해도 백번 천번 따를 판이었다. 처자식들도 끌려갔으니 더 이상 희망이 없었고, 고달픈 자신을 돌아보아도 분기해야 했다. 그리고 중신들을 갈아먹고 싶었다.

“따르다 마다요. 간신배 놈들을 이 손으로 박살을 내버리겠소.”

“그러면 저 자들부터 조치하시오.”

이괄이 한명련에게 의금부 금부도사와 왕실의 선전관 처치권을 주었다. 칼을 쥔 한명련이 단번에 달려들어 포박된 자들 목을 쳤다. 칼이 서툴렀던지 숨이 끊어지지 않자 이괄이 검으로 확인 처치했다. 두 사람은 빼도박도 못하는 반역의 선봉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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