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2)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22)

왕권 찬탈 음모에 선조의 후궁 정빈민씨의 맏아들 공이 관여했다면, 그 뿌리가 결코 얇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반정혁명을 같이한 동지 이괄이 반역의 주역이 되었으니 사태는 심각하다. 경솔한 발언이나 행동, 자칫 줄을 잘못 서면 언제 골로 갈지 모른다. 한번 고꾸라지면 집안은 만고의 역적이 된다. 힘들여 쌓아온 가문의 영광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없이 소신보다는 눈치보기로 논쟁이 시작되었다.

“구체적인 증인이나 증거가 없이는 인성군과 이괄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소이다. 자칫하면 동지와 벗을 능멸하는 씻을 수 없는 과를 범하게 되는 것이오.”

“맞소이다. 모함과 음해와 이간질로 우리가 얼마나 국력이 소모되었소이까. 이것은 군자의 법도가 아니올시다.”

“뭐가 어째요? 이만한 증거를 가지고도 신중하다니요? 이것으로 역모는 충분하오!”

중신회의는 관련자들을 잡아다가 당장 문초해서 흑백을 가리자는 강경파와, 뚜렷한 증거없이 소문만으로 옥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전조(前朝:광해군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되니 신중하자는 온건파의 주장이 맞섰다.

충신과 역적의 차이는 종잇장 한 장 차이다. 그러나 난세일수록 최후의 승리자는 장수자(長壽者)다. 요리조리 피해서 목숨을 이어붙이고, 눈치를 때리며 연명하면 가솔들 안다치고, 종족도 이어가며, 선산의 묘비도 풍성하게 꾸밀 수 있다. 어떤 굴종이 있어도 승자 편에 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어느 편에 서야할지 난감하다. 모두들 떨자 왕 역시 겁을 먹었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자신도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래도 용감한 사람은 이귀였다.

“한명련, 천 것이 기어이 이괄에게 붙었군. 천 것이 벼슬을 하면 꼭 이렇게 배역(背逆)을 한다니까.”

사대부의 편견은 이미 교조화되었다. 중신들은 저마다 다시금 머리를 굴리고, 눈치로 때리고, 통빡을 쟀다. 어떻게 하면 승자 편에 설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오? 과인은 제관들만 믿소. 대답해보시오.”

답답한 나머지 인조가 물었다. 그러나 이원익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뒤집어지는 것이오? 몽진해야 하는 것이오?”

몽진은 도망간다는 점잖은 궁중 언어다. 이귀가 나섰다.

“전하, 궁중 질서를 정비하고, 도성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괄의 동조세력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이괄을 때려잡자고? 사려깊게 생각해봅시다.”

김류는 공신 책정때 이괄을 괄시한 것에 대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안된다니까요. 고변서에 나온대로 기자헌, 이시언 등 도성 안에 이괄의 지지 세력이 숨어 있잖습니까. 틀림없이 이괄과 내응할 것이오이다. 미리 차단해야 하옵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그러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중신들이 떼창하듯 부르짖었다. 회의는 언제나 강경 분위기에 휩쓸리게 마련이다.

“그, 그, 그리하면 그리하라.”

의금부와 선전관, 포도청까지 동원되어 즉각 기자헌, 이시언 정인영 정찬 성백구 한여길 유공량 이성 윤수겸 현즙 등 북인 남인세력 40명을 잡아들였다. 의금부 국청에서의 매질은 매일 계속되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며 비명소리는 도성의 하늘을 뚫었다. 볼기의 살이 찢기고 코와 입에서는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모진 매를 이길 장사는 없었다. 맞아죽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혐의를 시인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안불어도 죽고, 불어도 죽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세가 기울어진 희미한 북인이나 남인이었을 뿐, 사실은 애먼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40 수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이 숙청에는 이귀와 최명길이 주도했다.

이것을 보고 도성의 민심이 싸늘해지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백성들은 마치 무엇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이괄의 난이 명분을 얻어가는 중이었다.

이괄은 구성순변사 한명련과 그 부자 병력이 합류하자 군세가 더욱 막강해졌다. 이괄은 부하 이수백, 기익헌과 함께 불어난 군사 1만5천과 항왜병(降倭兵) 200여명을 이끌고 순식간에 개천을 점령하고, 순천(順川), 자산(慈山), 중화(中和), 황해도 수안를 거쳐 황주 북편에 이르렀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