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6)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26)

이괄이 황주 송림 사이의 산협에서 여러 장수들을 불렀다. 중군 이윤서, 별장 유순무 이탁, 우후 이신이 왔고, 뒤이어 한명련이 들어왔다.

“한양 소식은 들어왔는가.”

“아직 전령과 척후병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명련이 울부짖었다.

“따지고 말고 할 것이 없소이다. 당장 쳐들어 갑시다. 요절을 내야 하오이다. 미적거리다 그나마 도성에 남아있는 사람들 다 죽입니다.”

그러나 기자헌 현즙 윤수겸 유공량 등 이괄의 동조세력이란 사람들은 이미 청소가 되었다.

“빨리 가서 응원세력을 구해야 한다니까요. 내가 당한 일 생각하면 이가 갈리오.”

한명련은 한양으로 끌려가 하옥되고, 날마다 문초를 받던 일을 생각했다. 문초를 받던 투옥자 하나가 탈출하는 바람에 의금부 판사와 동지사 이주회가 파직되었다. 문초하다가 혐의자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탈주자가 생기면 용서되지 않는다.

새로 추관이 된 정인택이 명성을 날리고자 나머지 투옥자를 매일같이 데려다가 조졌다. 의금부 뜰에는 국문을 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매일같이 허공을 찢었고, 이때 멋모르고 잡혀온 한명련의 사돈 정용영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기를 몇차례였다. 이를 지켜보던 그 아들 정찬이 없는 사실도 지어서 죄인이라고 자백했다. 이괄과 한 패라고 말한 것이다.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결국 둘 다 죽었다.

다만 편하게 죽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모진 매를 맞고 죽는 대신 칼 한방에 가버린 것이다. 이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본 한명련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라고 생각하고, 추관(推官)이 잠시 쉬는 사이 탈출해 구성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붙잡혀 끌려가다가 이괄이 구해줘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의 원한과 복수심은 하늘에 닿았다.

“한 순변사의 복수심을 내 모르는 바 아니오. 하지만 황주를 뚫어야 하는데, 그 자의 용맹심과 지혜를 뚫을 수가 없단 말이오.”

“그 자란 누굴 말하는 것이오이까.”

“정충신이오.”

정충신은 이괄이 북으로 패주할 때는 가만 놔두었지만 다시 말을 돌려 한양으로 쳐들어갈 적시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이괄은 꿰뚫고 있었다. 정충신은 소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장수다. 선굵은 군인의 소양과 무인 사상을 지니고 있다. 사나이다운 기백과 범접할 수 없는 권위는 천하의 이괄이라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괄은 정충신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충신을 밟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를 우회해서 쳐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이끌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있었다.

“정충신 하나 못잡는단 말이오?”

“정충신은 치밀한 사람이오.”

그러면서 생각이 났다는 듯 중군장에게 명했다.

“병사들을 군집시키라.”

그는 군세를 재편해 사기를 올린 다음 진격할 태세를 갖출 생각이었다. 열병식을 통해 사기를 올릴 생각이었다.

평소 훈련을 잘 받은 군졸들인지라 삽시간에 일만 명의 군사들이 산골짜기 조련장에 모였다. 천총, 기사장, 초관의 지휘에따라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고 모이니 사기가 충천했다. 어느새 칼과 창은 서리같고, 금고(金鼓)와 취각 소리는 천둥을 진동했다. 좌우 병방이 나아가 대열을 정돈하고 행수집사(선임하사)가 군령을 전하는 영기(令旗)를 흔들어 선두에 서니 이괄은 군복에 총립을 쓰고 팔도부원수의 수기(手旗)를 등에 꽂고 큰 칼을 손에 들고 대 위에 우뚝 섰다. 대장대에는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이 일만 병사의 함성이 섞여 백설로 뒤덮인 산골짜기를 녹여버릴 것 같았다.

이괄이 대장대에 올라섰다.

“모두들 듣거라. 백보 전진을 위해서 십보 후퇴를 했다. 내가 잠시 뒤로 물러선 것은 우리 군사의 진용을 재편성하고 군사력을 보다 확충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중앙의 간신배들을 타도하고, 올바른 나라를 세우러 가는 혁군(革軍)이다. 그간 혹한 속에서도 연일 훈련을 받고 군력을 보강하느라 수고들 많았다. 그 힘을 쓸 때가 드디어 왔다. 나 이괄은 북관을 지키는 부원수로서 다시 한번 새로운 각오로 진군령을 내리는 바이다! 역적들이 동병(動兵)하여 궁궐을 범하고 있다. 군왕이 구원을 요청해와 분기한 것이다. 가자!”

“가즈아!”

군졸들의 함성이 하늘을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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