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7)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27)

이괄은 한껏 군졸들의 사기를 올려놓고 남하의 길을 택했다. 세 조로 나누어 본군은 동로(東路)인 황주-연탄-봉산 방향으로 진격하고, 2군은 황주-안악-재령 서로로, 3군은 중앙로인 황주-사리원-신원을 뚫고 남하했다. 그렇게 해서 멸악산에서 집결해 진용을 재편해 한달음에 배천-개풍-개성에 도달할 계획이었다. 일단 개성을 점령하면 한양은 눈앞이고, 임진강 뱃길만 건너면 상황 끝이다.

“중앙 진출군은 보무를 당당하게 하고 가라. 동로와 서로의 군대는 철저히 은폐물과 엄폐물을 이용해 남하하라. 위장전술이다.”

중앙로는 강군보다 약군으로 편성했다. 약골 부대로 변신시켜 관군을 유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밑밥을 던져주면 관군은 위세를 몰아 격퇴하러 들 것이다. 이때 동로와 서로의 군대가 몰아붙여 대거리하면 관군을 쉽게 물리칠 것이다.

황주를 우회하여 남하하던 이괄의 본진이 봉산의 산산(蒜山)에 이르러 관군과 맞닥뜨렸다. 정충신 관군의 본대는 단숨에 이들을 쫓아 궤멸시켰다. 이괄군은 의외로 약체였다. 숫자도 많지 않으니 물리치는 데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상황을 보고 대번에 정충신이 알아차렸다.

“이괄이 군사를 분산시켜 남하하고 있다. 약체 군을 밑밥으로 던져주면서 관군의 추격을 지연시키고, 본진은 득달같이 한양으로 달려갈 것이다. 지금 당장 척후병은 동로와 서로를 샅샅이 뒤져 적정을 살펴오라.”

척후병이 적정을 살피고 돌아오는 사이 이괄 군대가 중앙 본진을 응원하기 위해 먼저 와 덮쳤다.

“병사들은 황주 동쪽 상원과 수안을 지키라. 남쪽 봉산에는 후진 관군을 집결시키라.”

정충신은 이괄군의 포위망을 흔들고 유격부대를 풀었다. 유격전은 정충신이 광주 무등산에서 익힌 전술이고, 소년병 시절 이치 웅치전에서 크게 전과를 올린 바 있다. 일대 일로 부딪치거나 습격을 하는 데 있어서는 유격 전술이 효율성이 높다. 당장 수급 다섯을 베었다. 그러나 그들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군이었다. 정충신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무슨 전쟁이라고... 그렇게 느끼는데 갈수록 관군의 숫적 열세로 밀리기만 했다. 반군은 13000이고, 관군은 이것저것 쓸어 모아보아야 1500이었다.

“남이흥 부대를 불러라.”

지원군을 받았지만 여전히 기동 병력이 열세였다. 양측방에서 공격을 받아 관군이 패퇴했다. 순식간에 관군의 전력 손실이 막대했다. 이러다 다 죽일 판이었다.

“퇴각하라.”

단 한사람의 목숨이 중요했다. 이때 정주목사 정호서가 군사를 이끌고 당도했다. 숙천부사 정문익도 군사를 이끌고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호흡이 맞지 않아 전선을 교란하는 이괄 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사명감 없는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구월산으로 도망가 숨어버린 자도 있었다.

패전 소식을 접한 평양 종사관 김기종이 달려와 정충신을 위협했다.

“안주는 중진(重鎭)이요, 공은 방어사까지 겸직하고 있으니 안주성을 굳게 지켜 적으로 하여금 감히 동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공의 책임이거늘, 이 난세에 성을 버리고 평양도원수를 찾더니 이괄 군대와 붙자마자 패장이 되었다,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군율로 엄히 다스리겠다.”

정충신은 어이가 없었다. 그도 화가 난 나머지 호통을 쳤다.

“야, 이 새끼야. 종사관 따위가 벌을 주러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냐? 전쟁 중엔 일시적으로 패퇴할 수 있고, 승리할 수도 있다. 패퇴하면 전열을 재정비해 승리로 갈 길을 뚫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밀렸다고 벌을 준다면 어느 장수가 배겨내겠느냐. 당장 나가지 않으면 이 칼이 너의 목부터 베겠다.”

벼슬아치라는 것들이 도대체 한심해서 못볼 지경이었다. 눈앞의 성과만 보고 공과를 논한다. 그리고 위세를 부린다.

“군사들 다 죽여놓고 무슨 수작이냐?”

“이놈의 새끼야, 적도들의 뜻은 한양 궁궐을 목표로 진격하는데, 그 목표를 차단하는 것이 본관의 임무다. 좆도 모르는 새끼가 도원수부에 있다고 쫓아다니며 벌을 준다고 위협을 해? 에라이 씨발놈, 푸줏간의 돼지고기가 필요한 판에 잘되었다. 니 배때지 갈라서 배고픈 군사들 먹이겠다.”

정충신이 실제로 장검을 쑥 뽑아드니 김기종이 뭣 빠지게 말을 달려 사라졌다.

“장만 도원수께 말씀드려라. 일시 밀리지만 종국에는 승리할 것이라고!”

종사관 등뒤에 대고 큰소리 치고 정충신이 군사를 다시 모았다.

정충신 관군의 포위망은 지휘 체계가 여러 갈래로 분산돼있는데다 통일되지 못해 각 전투 부대가 제대로 협공 지원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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