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9)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29)

정충신은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보시오. 내가 목숨 버리고 싶어서 이 짓하겠는가? 아무리 꾀 많고 지혜로운 조조, 조자룡이라도 첩자 앞에서는 전략 오류가 있을 수 있소. 문제는 최후에 도성을 지키고, 적을 격퇴하는 일이오. 그대와 원수질 생각 없으니 당장 물러가렸다. 대거리할 시간이 없다.”

정충신은 선전관 일행을 가두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아니, 나를 가두면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가.”

“금부도사, 선전관을 죽이는 사람도 있다. 전쟁 중에 장수 목을 치면 더큰 화가 생긴다는 걸 모르나. 구중궁궐에 있으니 위세만 있지 사리판단을 못해. 목숨 건지려거든 입 다물라.”

정충신은 군관장 회의를 소집했다.

“우리의 군사로는 잘 다듬어진 이괄군을 당분간 이겨낼 방도가 없다. 한양에 진격할 때까지 저들의 진을 빼는 전략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해놓고 한양 인근에서 일대 회전으로 잡아야 한다. 지연전술을 쓰면 이괄 군사 중에서도 회의한 나머지 이탈자가 있을 것이다. 벌써 기익헌 이수백이 흔들린다는 첩보가 있다. 추격부대를 편성해 예성강에 방어선을 치겠다.”

이괄 군이 예성강을 건너게 되면 개성이 지척이고, 거기서부터 평야지대가 펼쳐지니 이괄의 보군이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칠 것이다.

“계속 지연술을 쓰면 삼남(충청, 전라, 경상)의 병사들이 북상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인즉,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든 괴롭혀야 한다. 후방군이 전력을 증강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충신은 소모전을 폈고, 이괄 군은 최대한 소모전을 피하고 산길을 따라 남하했다. 그들은 한양을 먼저 점령하겠다고 기세좋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선두와 후미 사이가 떨어졌다. 후미를 자르면 적의 군세도 약해질 것이라고 보고, 정충신은 군사들에게 명했다.

“군기병이 적진을 갈라라.”

기마부대가 쏜살같이 이괄 군의 허리를 잘라 교란했다. 정충신이 궁수들에게 명했다.

“궁사들은 후미에 처진 적도들을 향해 활을 쏘아라.”

화살이 일제히 날아가고, 적도들이 우왕좌왕하며 한꺼번에 몇 명씩 쓰러졌다.

“창검부대 나서라!”

창검부대가 들이닥쳐 갈팡질팡하는 이괄 군을 무찔렀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선두와 고립되어 낙오되니 그들은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부대를 튈 생각을 가진 자도 있었다. 정충신이 외쳤다.

“너희 반군은 애초에 조선의 병사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사세를 잘못 판단하면 평생을 두고 후회하고, 너희들 처족이 몰살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 불문곡직하고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 절대로 계급장 강등될 일 없을 것이며,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이때 황해도 지방군이 말을 몰아 합류했다. 경기도 지방군도 들어오고 있었다. 지원군이 도착하자 적도들이 전황 불리를 알고 한꺼번에 투항해왔다. 이 광경을 우마차에 실려 뒤따르던 선전관이 감격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충신이 중군장에게 명했다.

“중군장은 지금 죽은 적도들 수급을 열 개 베어오라.”

중군장과 부장이 골짜기에서 활과 창과 칼을 맞고 죽은 적도의 머리를 베어왔다. 정충신이 이것들을 보자기에 싸서 선전관에게 내밀었다.

“적장의 수급은 아니지만 이것을 궁궐에 가지고 가서 승전보를 알리시오. 작은 승리가 종당에는 큰 승리를 안게 될 것인즉, 한양에서 일대 회전을 벌이겠다고 보고하시오.”

“정 장군, 우리가 잘못 살폈소. 용서하시오. 우리가 너무도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조정에 알리겠소. 건투를 비오.”

감격한 선전관 일행이 말을 타고 사라졌다.

“투항병이 들어왔으니 우리 군세가 강화되고, 이괄 군은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마탄과 예성강 인근 전투에서 반군 200을 죽였으나 관군도 전사 30, 부상 50을 기록했다. 혹자는 마탄전투가 실패했다고 하나 정충신이 이괄군의 전력 손실을 가져온 작은 승리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이괄은 후미가 잘려나간 것을 보고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군사들의 행군을 일시 정지시켰다. 그가 이동 대(臺)에 오르자 기라병이 깃발 신호를 요란하게 올렸다. 천총, 기사장, 초관들이 뒤따라 영기를 흔들며 군사들의 함성을 유도했다. 선두의 군사들은 여전히 전열이 잘 정비되어 있고, 훈련이 잘 되어있는 정예병들이었다.

“여러분에게 대단히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 금방 전령이 알려오기를, 왕이 조정 중신들을 이끌고 공주로 도망갔다고 한다. 이제 한양은 우리의 것이다! 조선은 내 손안에 있다!”

와-, 하고 군사들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함성을 질렀다. 왕이 도망갔다는 것은 반군에게 사기를 올려주기에 충분했다. 후미의 군사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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