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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30)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31)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31)

인조는 자신의 왕위 등극에 명나라 장수 모문룡의 지원을 받은 것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대국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으로 반대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사대에 온몸이 쩔어있는 조정은 명의 장수 말이 나오자 단번에 승부가 나버렸다. 그것만이 정권 탈취의 이유라고 볼 수 없었지만 어버이 나라 명나라가 뒤에 있다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모문룡은 명나라 장수였지만 적국인 후금을 물리치긴 커녕 그들과 내통하고, 평안도 서해안의 가도에 들어와 군벌로서 살고 있었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들쑤시며 재산을 약탈하고, 예쁘다고 보이는 처녀들을 마구잡이로 끌고가 농락하는 일종의 군사 양아치였다.

그런 그가 조선 사신단의 요청을 받자 두말없이 흔쾌히 출정을 응낙했다. 그러나 응낙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내놓고 약탈하라고 면허장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모문룡은 후금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패잔병들을 데리고 가도로 들어갔으나 군사의 수준은 형편없었고, 대장의 품성은 지저분하니 군세라고 할 것이 없었다. 그들이 자유분방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관서지방으로 들어가 약탈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무뢰배였다.

이 소식을 들은 정충신이 버럭 화를 냈다. 모문룡이 조선의 내전에 개입하면, 첫째 후금이 가만 있을 리 없고, 그러면 자칫 국제전의 양상을 띤다. 둘째 모문룡이란 자의 품성이 양아치 그대로인데, 내놓고 양민 위에 올라타면서 중앙에 전비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상녀르 새끼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이구먼. 나는 그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모문룡 군대를 국경 밖으로 밀어내라.”

정충신이 명령하자 몇몇 부장들이 난색을 표했다. 조정에서 시키는대로 하면 못해도 본전인데, 왜 그를 막아 화를 자초하느냐는 것이다.

“뭐여? 명나라를 지성사대(至誠事大)하면 후금이 가만 있겠냐? 꼼짝 못하게 묶어두지 않으면 우리가 요절이 나. 모문룡이란 자가 천하에 없는 간나구 새낀데,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전에 복무했던 선사포 첨사에게 밀통을 넣어 철산 앞바다를 철통같이 방비하라고 명했다.

“모문룡 군사는 벌써 육지에 상륙해 천지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전령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꼴이 우습게 되었군. 명나라 군사가 우리와 연합을 맺는 것으로 알면 후금군이 가만있겠나? 그렇다고 모문룡 군대가 지원군으로서 역할을 할만한 수준도 아니란 말이다. 조정에 있는 새끼들은 물정도 모르고 도상 작전만 한단 말이다.”

실제로 모문룡은 이괄 반군을 무찔러준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식량과 물자 지원을 요구했다. 그를 불러들였으니 그가 요구하는대로 안들어준다는 것도 말이 아니었다. 결국 조선은 매달 1만석의 미곡을 모문룡 군사에게 지원했다. 이를 위해 서량(西糧), 모량(毛糧), 당량(唐糧)이라는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백성들에게는 임진왜란의 피해상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또 모문룡 군대에 국가 경비의 3분지 1 되는 쌀을 보내게 되었으니 백성과 나라의 피폐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러니 누가 나라를 뒤집어 엎겠다고 나서도 박수칠 판이었다.

『인조실록』(인조 5년 4월19일)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국가 경비의 3할 이상을 소모하고 있는 밑빠진 독 같은 존재가 바로 모근(毛根:모문룡의 비칭)이다. 그런데 모문룡을 친다는 명분으로 후금군이 조선반도로 진격했다. 우리 땅이 그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후금군은 어느날, 몇 개 부대를 동원해 모문룡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을 전격적으로 침략했다. 조선은 안으로는 이괄과 내전을 치러야 하고, 밖으로는 후금군과 모문룡의 군대가 조선반도에서 싸우는 전장을 제공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눈치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모문룡은 후금과의 전투는 피해가는 대신 조선 조정으로부터 전비를 꼬박꼬박 챙겼다. 그 전비는 명나라 조정 대신들에게 상납하는 뇌물로 제공되었다. 가도와 철산의 모문룡은 명나라 장수가 아니라 해상 밀무역 조직의 두목이었다.

“사대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개판되는군.”

정충신은 쫓겨난 광해 임금을 생각했다. 광해는 명과 후금, 왜나라를 균형적으로 다루는 외교적 수완이 있었다. 그로인해 동서남북 4면의 변방은 모처럼 무탈했다. 북방 오랑캐는 정충신이 맡아 안으로 군사력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후금 군사 지도부와 친교를 맺어 국경선을 안전지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인조가 등극하면서 친명(親明)을 역성혁명의 근간으로 삼더니 모문룡에게 전비를 제공하고, 후금에게는 침략의 명분을 주었다. 이런 형편없는 외교가 어디 있나. 그러면서 왕은 공주로 도망가서 새가슴처럼 떨고 있다. 정충신이 속으로 읊조렸다.

“쪼다 새끼.”

“네?” 부관이 깜짝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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