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31)‘천치고개-빈계재’ 구간(2019. 8. 10)
등산로엔 원추리 꽃 한창…빨간 장마딸기도 ‘유혹’
존제산 초입길서 또 잡풀로 고생… 철조망 걸려 넘어질뻔
주릿재 오르자 존제산 정상석·태백산맥 문학비 ‘우뚝’
백이산 정상은 밋밋…‘외서면장’세운 정상석만 존재감
 

존제산.

아침 6시 30분에 친구를 태워 보성군 율어면 선암리를 내비에 입력한 후 출발하였다. 4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를 1시간 운행한 끝에 7시 30분경 선암생태통로에 닿아 차를 주차하고, 존제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나섰다. 지난번 구간에서 너무 고생을 조심조심 길을 찾는데 이곳도 초입지에서 100여미터는 긴 풀과 잡목으로 뒤덮여 길 찾기가 쉽지 않다.

20여분을 오르니 존제산 미사일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파놓은 교통호가 나오고 계속해서 정맥 길은 오솔길로 끊어질 듯 이어진다. 존제산 정상 근처에 다다르니 철거되지 아니한 원형 철조망이 나타나고 위 철조망을 우회하거나 철조망 아래쪽으로 난 개구멍을 통과하면서 길이 이어진다. 철조망 옆을 통과하다가 발이 철조망에 걸려 넘어졌는데 친구가 붙들지 않았으면 크게 다칠 뻔 했다. 위 철조망은 옷이 한번 끼면 빠지지 않아 손으로 떼내야 한다. 바지가 여기저기 찢기는 수난 끝에 철조망 지대를 통과했는데, 존제산에 있던 미사일 기지는 이전했는데도 존제산 통신소는 그대로 남아있는지 정문에 열쇠가 채워져 있다.
 

존제산 정상 표지석

등산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오니 이번에는 4m 가까이의 철문이 길을 막는다. 우회로를 찾아서 미확인 지뢰 지대까지 내려가 보았지만 길이 없어서, 결국 내가 선등으로 철문을 타고 넘기로 했다. 철문 오른쪽의 쇠기둥 옆으로 철문을 타고 넘어서 배낭은 스틱으로 낚시 하듯이 받아냈다. 여기서부터 주릿재까지는 군사도로가 임도처럼 넓게 나 있어서 그 길만 따라가면 된다. 길가에는 샛노란 원추리 꽃이 한창이고 장마딸기도 빨갛게 익어서 눈길을 유혹한다. 산 아래는 폭염인데 이곳은 고도가 높아서인지 26∼27℃의 서늘한 기온에 그늘 길로 걷다보니 수 km가 넘는 임도길이 산보길 같다.
 

껍데기만 있는 존제산 미사일.

10시가 넘어서 주릿재에 이르니 그곳에 ‘존제산 703m’라고 크게 쓰여진 정상석과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우뚝 서 있고, ‘회고정’이란 정자도 멋지게 지어져 있다. 보성 벌교읍과 율어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실제로는 ‘호남정맥’이란 공간에서 해방과 6·25전쟁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존제산과 호남정맥이 천혜의 요새가 되어 주릿재와 천치고재 쪽만 지키면 벌교읍 쪽에서는 아무도 율어 쪽으로 넘어올 수 없으니 율어가 빨치산들의 해방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산행 중에 새삼 깨우친다. 보성 율어가 고향인 장문수 형에게 전화했더니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벌교읍 장을 보러 주릿재를 걸어서 넘었다고 한다.

회고정에 돗자리를 깔고 쉬고 있는 부부와 환담을 나누면서 한참을 쉬다가 석거리재로 오르는 산길로 다시 접어들었다. 석거리재에서 ‘동소산 8.0km’라고 쓰여진 등산로 표지를 따라 오르면 되는데 불과 0.6km 오르다 보면 삼거리가 나타나고 호남정맥은 동소산 방향과는 달리 오른쪽 숲길로 희미하게 이어진다. 산 절반쯤을 개간하여 태양광 패널이 가득 깔린 옆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거친 길을 이어 나갔더니 결국 위 발전소 오른쪽 봉우리로 정맥 길이 이어진다.

존제산 정상 오르는 길에 만난 원추리꽃.

여기에서 482봉과 500봉은 높지는 않지만 길이 험하고 억새풀과 소나무 등이 우거져서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발밑과 군데군데 달린 리본을 잘 살피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쉽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석거리재에 1시 20분이 되어서 도착하였다. 석거리재는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데, 태백산맥에 나오는 ‘외서댁’은 이곳에서 시집온 사람이다.

석거리재 정상에는 ‘석거리재 휴게소’가 아직 영업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벌교나 고흥으로 가는 버스도 모두 석거리재를 넘어갔다고 한다. 나는 삼계탕을 친구는 물냉면을 시켜서 국물 한방울까지 다 먹었는데도 아직도 히딩크마냥 목이 마르다. 이미 바닥난 물통 세 개에 가득 물을 채우고 나니 다시 힘이 솟는다. 오후 2시가 되서야 다시 ‘백이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백이산 정상에 선 필자.

백이산은 석거리재에서 보면 봉우리가 3단계로 솟아 있는데 340고지에서 530고지까지 오르는 길이 만만찮다. 이미 기온이 오를 대로 오른 데다가 가끔 나무그늘이 없는 개활지까지 나타난다. 정말 등산모자가 없으면 머리껍질이 타버릴 것 같은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쪼인다. 결국 거의 두시간 만에 준비해 간 물통 두개를 비우고 나서야 백이산 정상에 닿았다.

백이산(伯夷山)은 주나라의 은나라 정벌에 반대해 주무왕의 말고삐를 잡았던 백이와 숙제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정상은 바위 하나 없이 밋밋하고 오직 ‘외서면장’이 세운 정상석만 있다. 백이산에서 빈계재로 내려가는 길은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어서 508고지까지는 순식간에 내려가게 된다. 중간에 편백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에서 한참을 쉬었는데도 30분만에 빈계재에 닿았다. 빈계재 500m 전방에서 승주낙안택시를 불렀더니 빈계재에 닿은 지 5분 후에 택시가 도착한다.

오늘은 미사일 기지 철조망을 넘느라 고생은 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잘 정비된 등산로로 조제산과 백운산만 넘어가면 호남정맥도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아쉽기만 하다.

주릿재에 세워진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문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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