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 울린 총성’ 조국 해방의 등불 비추다

항일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6>독립운동 역사 살아 숨쉬는 하얼빈
‘하얼빈에 울린 총성’ 조국 해방의 등불 비추다
중국 하얼빈역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중근 동상·친필 유묵·유서·편지 등 전시
‘731 부대 전시관’엔 일제 잔혹함 고스란히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의 서른살 청년이 중국 도심 한복판에서 총성을 울렸다. 이 총성은 조국해방의 등불을 비췄고 전 세계에 대한독립운동을 알리는 시발점이 됐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격살했다. 현재 하얼빈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친필 유묵, 사진 등 일대기를 전시한 기념관과 일제의 잔혹함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731부대 죄증 진열관’이 있다. 이처럼 일제가 하얼빈에서 남긴 상처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하얼빈역은 하얼빈시 난강국의 철도역이다. 1899년 쑹화장(송화강)역이었으나 1903년 하얼빈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설치돼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

하얼빈 역 정문 왼편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지난 2014년 1월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하얼빈역 1번 플랫폼 바로 앞에 있던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100여㎡ 규모로 만들어졌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을 비롯 일생과 사상을 담은 사진과 친필 유묵, 유서 내용, 가족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안중근 의사 의거에 연루돼 감금된 사람들
하얼빈역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의 유언.

특히 기념관 유리창 너머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현장 지점이 표시돼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히 엿볼 수 있었다. 저격 현장 천장에는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이라는 설명 문구가 눈에 잘 띄게 걸려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는 도시 ‘하얼빈’

하얼빈은 흑룡강성(헤이룽장성)의 성도이다. 쑹화강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공업 도시로 인국는 1천만 명에 이른다. 하얼빈은 러시아의 지배를 오랜 기간 받아 러시아 문화가 일찍이 들어온 도시다. 재정 러시아 시대 때는 ‘동양의 작은 파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얼빈의 거리는 마치 유럽의 고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이곳엔 소피아 성당이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높이 53.35m로 동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903년 제정 러시아의 보병사단이 하얼빈에 들어오면서 멀리 고향을 떠난 병사들을 달래기 위해 1907년 나무 구조로 건축했다. 이어 1923년부터 9년간 벽돌로 재건축됐다. 전형적인 배전정(拜占庭) 양식을 갖추고 있는 이곳은 1996년 11월 중국의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선정됐다.

청자빛 돔과 붉은 색 벽돌이 멋스러운 이곳의 내부는 하얼빈의 역사가 담긴 흑백사진들이 전시돼 영욕의 과거를 재조명하듯 화려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731부대 죄증 전시관 ‘마루타’

중국 하얼빈에는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감행했던 하얼빈역 뿐만 아니라 일본군의 잔인함이 고스란히 남겨있는 ‘731부대 죄증 진열관’이 있었다. ‘731부대’는 일제 관동군 산하 부대다. 기념관에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이 전쟁포로 3천여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과 약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끔찍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었다.

 

 

중국 하얼빈에 있는 ‘731 부대 죄증 전시관’에는 일본군이 전쟁포로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 모습이 재현돼 있다.

아쉽게도 전시관을 설명하는 글들은 중국어와 영어로 설명돼 있어서 자세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통역 번역기가 비치돼 있어 한국인도설명을 들을 수 있다.

굳이 번역기가 없어도 이곳에 전시된 당시 포로들이 겪었던 생체실험은 생생히 재현된 모형과 사진 자료 등으로 참혹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침실, 포로의 팔에 날카로운 주삿바늘로 정체모를 약을 주입하는 일본군, 총구를 향해 서있는 포로군, 이를 설명하는 동상과 사진들이 잊히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간혹 이곳을 방문하는 일본인과 제지하려는 중국인들이 종종 몸싸움을 벌인다고 한다. 현재에도 일본군의 과거 만행은 아직까지 중국인들에게 씻겨지지 않은 것 같았다.

‘731 부대 죄증 전시관’일대에는 일본군이 전쟁 포로들을 생체실험 목적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전용 기찻길이 있다.

731부대는 바이러스와 곤충, 동상, 페스트 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의 연구단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각각의 연구단마다 ‘마루타’라고 불리는 인간을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했다. 1940년 이후 해마다 ‘마루타’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돼 한국인과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이 희생됐다고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군은 이러한 만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시 살아남은 150여명의 ‘마루타’들까지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31 부대 전시관’에 앞에 있는 비석.

전시관 일대에는 전쟁 포로들을 생체실험을 목적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전용 기찻길이 있었다. 현재는 이용되지 않고 있으며 풀밭이 된 상태였다. 이 기찻길로 당시 포로들은 귀와 눈을 가린 채 칠흑 같은 어둠속에 끌려와 ‘마루타’로 이용됐다. 또 전시관에 남겨진 ‘마루타’ 소각장이라 불리는 큰 건물을 볼 수 있었다. 건물엔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거대한 환풍구가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줬다.

일제가 하얼빈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인, 러시아인 및 전쟁 포로들을 ‘마루타’로 사용했다면, 중국 다롄에서는 안중근 의사 등 우리의 민족 열사를 투옥한 여순감옥이 있다. 여순감옥에서 조국의 독립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들의 슬픈 생애를 취재하고자 다롄으로 향했다.
/김영창 기자 seo@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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