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부끄러운 사회

김홍식(광주 일동중 교장·문학박사)

나라 안팎이 몹시 시끄럽다. 이 와중에 태풍 링링, 타파에 이어 또 다시 불청객 미탁이 우리 곁을 사납게 할퀴고 지나갔다. 수확을 눈앞에 둔 벼들이 무참히 쓰러져 액싹하게 물속에 잠겨 있는 남도의 들녘, 자상한 손길과 굵은 땀방울로 자식처럼 키워낸 다 익은 과일들이 땅바닥에 어지럽게 나뒹구는 모습, 산사태로 매몰되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집과 고귀한 인명 희생 등을 보며 우리는 감히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야속하고 하릴없는 관찰자시점의 한숨과 안타까움 한줌 뿐.

사실 태풍처럼 예기치 않은 위기는 늘 다가온다. 또 사회적, 국가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는 언제나 있어왔다. 그 때문에 구성원 전체가 갈등과 혼란에 휩쓸려 혹독한 대가를 치룬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세대, 계층, 지역, 정파 등의 내부 갈등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관계 때문에 그 어느 때 못지않은 고통과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극한으로 치닫는 정쟁은 심각한 국민·국론 분열과 피로감을 넘어 위험한 임계수준을 가까이 하고 있다. 두 쪽으로 나뉜 진영 논리가 전혀 상반되게 작동하는 작금의 현실은 과연 정의가 무엇이고 진실은 실재하는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하나의 사실을 놓고도 너와 나의 정의가 이렇게 제각각이라면 정의라는 말 자체가 처음부터 무색할 수밖에. 자신들의 주장 속에 담긴 괴변과 억지를 스스로 모를 리 없을 텐데도 온갖 지식과 해괴한 논리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까지 참담하게 한다.

이처럼 어른들과 기성세대가 부끄러운 시대에는 아이들 교육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는데 국가와 국민이 어렵고 힘든 상황은 외면한 채 정파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형편없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는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가 매우 영향력 있는 잠재적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래서 ‘개인의 행복과 불행의 수준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는 말도 나온다. 어른들과 기성세대의 잘못이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투영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고스란히 어른들의 책임이다.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로 유명한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 그녀는 여성으로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 자체를 끔찍한 공포라고 생각했던 미국인이다. 이런 그녀가 덴마크 남편을 만나 생활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것은 누구의 강요나 설득도 아니었다. 덴마크 아이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 공손하고 예의바른 모습, 시끄럽게 하거나 고함치는 아이들이 거의 없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저런 아이들 같은 아이라면 당장 애를 낳겠다”고 하며 두 명을 낳아 길렀다. 이러한 덴마크 아이들의 모습이 저절로 되었겠는가. 모두가 부모와 사회, 국가가 행복한 데서 이루어진 결과다.

반면에 날이 새고 눈만 뜨면 우리 기성세대의 민낯이 자꾸만 드러나는 사회 에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가치관과 바른 행동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말은 지독한 위선과 부도덕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눈과 귀를 탓할 정도로 어른스러움을 상실한 기성세대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그 어떤 교육도 무화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하여 기성세대의 왜곡된 생각이나 망언, 부적절한 행태 때문에 아이들에게 심각한 비교육적 영향을 미치는 일은 제발 없어야 한다. 교단에서 선생님들의 열정과 진지한 가르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교정을 떠돌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성세대 스스로 어떤 비교육적 행태를 저지르고 있는지, 아이들에게서 소중한 그 무엇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미안한 마음으로 성찰하며 아이들을 바라볼 일이다.

상황과 맥락이 다르긴 해도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오른다. ‘꺾어서 못쓰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겨우 그 아름다움을 깨닫고, 이제는 자기의 수중에서 시들어버린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늦다. 요즘 아이들의 잘못을 탓하기에 앞서 어른들의 진지한 성찰이 먼저 필요할 때다. 어른들이 주도하는 국가나 사회는 하나의 커다란 학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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