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통합의 길, 독일 교육에서 찾다
<9·完>파독광부가 전하는 이상적인 다문화사회
“우리도 국경 넘으면 외국인, 피부색 다르다고 차별말아야”
1976년 독일 간 김옥배씨 “난 평생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
국내 외국인 노동자·이주여성 차별 소식 볼때 마다 울분
시민사회단체·종교 역할 강조 “차별받는 이웃 도와야”

1976년 파독광부로 독일에 건너와 이곳에 정착한 김옥배(67) 재독한인총연합회 감사는 “우리도 국경을 넘으면 모두 외국인이다”면서 이주민이 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해 조언했다. 사진은 지난 7월 독일 보훔시의 자신의 자택에서 1970년대 독일 생활을 설명하는 김씨의 모습.

“한국에서 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때리고, 임금을 체불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난 정말 울분을 토하지. 내가 한평생을 외국인 노동자로 살았으니까…”

1976년 파독광부로 독일에 건너와 40여년간 이곳에 거주중인 김옥배(67) 재독한인총연합회 감사는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에서 한 평생을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왔다고 본인을 소개한 그는 자신이 독일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임금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재독한인총연합회에 따르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이뤄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모두 1만8천명에 이른다. 북한 보다 남한의 경제력이 뒤쳐지던 당시 이들은 가족을 위해 또 나라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전남 구례 출신인 김씨도 24살의 나이에 부모님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낼 만한 집 한채를 지어드리고자 독일행을 결심했다.
 

1963년 당시 파독광부 선발대의 단체사진. 한국정부는 1977년까지 8천여명에 달하는 광부를 독일에 파견했다.

독일에 건너온 김씨는 단 한 달간의 적응 교육을 마치고 곧바로 지하 1천m 깊이 막장에 투입됐다. 15㎏ 상당의 해머를 들고 폭 1.5m의 좁은 막장을 기어다니다 보면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파독 간호사들도 외로운 객지 생활이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독일에 온 20대 초반의 한국 간호사들은 거구의 독일인들을 간병하느라 진땀을 뺐다. 특히 전문용어가 많이 사용되는 병원 현장은 파독 간호사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독일어 단어장을 챙겨다녀야 했던 이들은 밤이 되면 찾아오는 향수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독일에 잘 정착해 국가 발전의 종잣돈을 매년 한국에 부쳤다. 1965~1975년 사이 독일에서 한국으로 송금된 금액은 모두 1억153만 달러. 당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2%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 매년 파독 노동자들에 의해 한국으로 보내졌다. 파독광부, 간호사들이 독일 산업현장에서 피땀흘려 번 돈이었다.
 

파독광부들이 사용했던 탄차. 현재 독일 에센시 파독광부기념회관에 보존돼 있다.

지난 7월 독일 보훔시의 그의 집에서 만난 김씨는 독일의 사회복지 시스템과 더불어 외국인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 현지 문화 덕분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는 목사님이 얘기하시길 1970년대 독일로 건너온 파독광부, 간호사들의 현재 생활이 한국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며 “이는 모두 독일 시스템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도 집을 여기서 지어봤는데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게 참 많았다. 주거정책의 일환으로 큰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같은 독일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한국도 하루 빨리 제도를 개선해 외국인들을 위한 사회복지망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가서 보니까 의료보험 제도도 많이 뜯어고쳐서 좋아지긴 했더라”면서 “그런데도 내국인에 대한 사회복지 시스템에 아직 문제가 있는데, 이주민들의 복지가 나아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특히 국가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민간의 노력도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나서 외국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파독광부들이 사용했던 공구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불행한 일인데 자기들이 이주여성과의 결혼을 선택해 놓고 나중에는 반인간적인 행태를 보이는 걸 보면 일반적인 상식이 개선돼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서 “그러려면 정치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사회와 종교단체들이 외국인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나라 정책에 의지하는 것보다 종교 등이 외국인들을 위해 할 수 있들을 자기들 몫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우리 주변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는 이웃들을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가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있느냐”고 토로했다.

끝으로 김씨는 “한국사회는 지금 사회복지정책이 틀을 잡아가고 있는 과도기로 보이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다”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다. 우리가 독일인들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곳에 왔을 때부터 그들과 다르지 않은 대우와 처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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