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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41)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41)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41)

한편 임금의 남천(南遷) 길에 왕족들이 따랐는데 선조의 후궁 온빈한씨 소생인 흥안군 제가 한강을 건너 남쪽 노들나루에 이르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성격이 활달하고 호방해서 사교의 폭이 넓은 인물이었다. 자유분방한데다 소년시절 이괄과도 교류가 깊은 사이였다. 그런데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뭔가 행동이 이상했다. 그쪽과 내통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를 두고 사간원의 대간들이 위험인물이니 그를 위리안치(圍籬安置) 시켜야 한다고 간언했다. 위치안치란 죄인을 유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이다. 중죄인에 해당하는 형벌로서 가시나무 대신 탱자나무가 많은 전라도 섬에 이 형을 받은 사람이 많이 배치되었다.

인조는 대간들의 간언을 묵살했다. 단순한 혐의만으로 위리안치시키다니, 그것도 천리 밖 전라도 절해고도로 보낸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이긴 하지만 세 살 아래인 흥안군과는 어렸을 적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흥안군 제는 선조의 10남으로, 온빈한씨 소생이다. 광해군, 정원군, 임해군, 순화군, 신성군, 경창군, 인성군의 이복동생이며 영창대군의 이복 형이다. 친남매로는 남동생 경평군, 영성군, 그리고 누이로 정화 옹주가 있다. 그중 인물이 빠지지 않고 학문도 높으며, 교류하는 친구도 많아 그 자신 야심이 많았다. 형인 광해군, 조카인 인조가 왕이 되었으나 자신의 학문과 외모로 비추어도 꿇릴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인조는 삼촌들 중 흥안군 학문과 활달한 성격을 높이 샀다. 임해군 순화군은 물론 친 아비인 정원군은 성질이 포악하고 패악질이 심하여 악명이 높았는데, 흥안군은 무엇보다 풍류를 즐기는 멋이 있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패악질과는 거리가 있어서 어린 삼촌을 동생처럼 여기고 함께 즐겨 놀았다. 그런 그를 적과 내통한다고 유배시킨다는 것은 도리나 인정상 맞지 않았다.

그러나 왕족이 어디론가 사라지니 따르는 관속들과 근왕병들도 산을 하나 넘으면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내려가면서 신경진 윤숙에게 나가 싸우라고 했지만 군사들이 투지가 없다고 명을 거역했다. 수원을 지나 오산쯤 가서는 부리(府吏:부사 직속의 관속)와 향소(鄕所)의 임원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향소는 각 고을 수령의 자문 기관으로 수령을 보좌하고 풍속을 바로 잡고 향리의 부정을 규찰하며, 국가의 정령(政令)을 민간에 전달하고 민정을 대표하는 자치 기구다. 임원으로는 향정(鄕正) 또는 좌수(座首)가 있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이들이 왕의 행차를 보고도 사라져버리니 도대체 국가의 기강이 엉망이었다.

인조는 처음엔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준비했다가 발길을 돌렸다. 대신 인목대비를 우의정 신흠과 좌의정 이정구로 하여금 강화도로 행차토록 했다가 뒤늦게 임금의 행차와 같이하도록 했으니 남천이 갈팔질팡이어서 질서도 없고 중구난방이었다.

임금은 공주에 당도해 심기원을 한남원수(漢南元帥)로 삼아 적을 막게 하고, 신경진은 도감병(都監兵)을 이끌고 행차 뒤를 지키도록 했다. 충청, 전라 군사로 하여금 공주산성과 금강을 나누어 지키도록 명했다. 임금의 어가를 수행하는 호가대장(扈駕大將)은 김류가 맡았다.

인조가 공주도 안심하지 못하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든지 일본국에 군사를 요청하자고 중신들에게 안을 냈다. 영의정 이원익이 나섰다.

“상감마마, 이번 파천은 외적에게 쫓기는 것도 아니요, 국내 반도로 인하여 잠시 피하시는 것이옵니다. 공주는 강도 막히고 쌍수산성(雙樹山城: 공주시 쌍수산에 있는 산성)이 있으니 공주가 천연 요새입니다. 더 내려가도 이만한 피난처가 없사옵니다. 몇 년은 안식처로 삼아도 무방한 곳이옵니다.”

이원익은 왜적과 맞닦뜨려 싸운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어떻게 반도를 무찌르기 위해 왜군을 청병하느냐고 마음 속으로 낙심천만하였다. 저렇게 정신없는 사람을 왕으오 모신다는 것이 마음 속으로 불덩어리가 솟았지만 신하는 주군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

인조가 공산성에 들어가 있는 며칠 후 전라병사 전초관이 달려와 보고했다.

“전라병사들을 골라 근왕병으로 삼고자 3천을 이끌고 왔나이다.”

그러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이원익 영상이 소리쳤다.

“저 놈을 체포하라. 역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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