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42)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42)

이원익은 흥안군 제가 내빼자 모두를 의심하고 또 어떤 누구도 불신하고 있었다.

어가가 공주 금강에 당도할 때쯤 해가 기울었다. 금강 북편에서 김류가 초요기(招搖旗: 싸움터에서 대장이 부하 장수를 부르거나 지휘하고 호령할 때 사용하는 기)를 휘둘러 배를 불렀으나 한 척도 오지 않았다. 모두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너편 강에서 수십 척의 배가 한 줄로 열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선단은 이상한 깃발을 달고 있었다.

“저 배가 무엇이냐.”

이원익이 묻자 지방 관아의 관속이 펄쩍 뛰었다.

“큰 일입니다, 나리. 이몽학의 잔당들이 행패를 부리러 오는 것같습니다.”

“뭣이? 이몽학의 잔당?”

이몽학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6년 국사가 어지러움을 보고 모속관(募粟官: 식량을 모으는 임무를 맡은 관리) 한현 등과 함께 홍산(鴻山: 오늘의 홍성) 무량사에서 의병을 가장하여 동갑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뒤 난을 일으켰다. 이때 김경창·이구·장후재 등과 사노(私奴) 팽종, 승려 능운 등과 함께 승속군(僧俗軍) 600∼700명을 거느리고 홍산 쌍방축에 모였다. 1596년(선조 29) 7월 일당이 야음을 틈타 홍산현을 습격하여 함락하고, 이어 임천·청양·대흥을 함락한 뒤 여세를 몰아 홍주성에 진입했다.

그러나 관군과 내응하는 자가 나오고, 반란군의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부하 김경창·임억명·태근 3인에 의하여 이몽학이 피살되고, 김경창 임억명마저 관군에게 붙들려 처형당하자 잔당들이 일시에 차령산맥으로 기어들어가 산적이 되었고, 관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남쪽 기지에 있던 김덕령이 이들을 소탕하러 올라갔다가 반군과 연합한다는 모함을 받고 비참하게 죽었다. 이런 억울한 죽음 때문인지 산적들은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이때 임금의 행차를 보고 분기를 터뜨릴 참으로 배를 몰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임금 일행은 당황했다. 몰상당할 위기에 처했고, 혹 이괄 군대와 합류하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그런데 하류 쪽 기슭에 숨어있던 다른 선단이 몰려오더니 이몽학선단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몽학선단은 임금 지원선단이 만만치 않다고 보고 그대로 하류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기슭에 있던 선단이 북편 나루로 다가오더니 육척 장신의 장정이 배에서 내렸다. 벙거지를 쓰고, 몸에 시커먼 옷을 걸친 자가 허리를 굽신 절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상감마마, 큰 일날 뻔했습니다. 소인은 공주 감영 노령청(奴令廳:노예와 포로를 수용하는 감옥)을 지키는 수노(首奴:관노의 우두머리)이옵니다. 아무래도 임금님의 행차가 불안하여서 금강 구석에 선단을 꾸려놓고 있었습니다. 이몽학의 잔당들이 차령산맥과 계룡산을 근거지로 노략질을 하며 활개를 치고 있사온데. 미리 알고 행패를 부리기 전에 소인이 쫓아냈습니다. 이런 일이 빈발할 것인즉,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천운이로다. 가상하다.” 인조가 탄복했다.

“소인이 노비일망정 나라의 신민이온데, 어찌 이 땅을 지키는 데 허술하겠나이까. 나라의 일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상을 내리겠다.”

수노는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 임금님 일행을 모두 공산성으로 안내했다. 수노는 부하들을 시켜 먼지 자욱한 선화당을 청소하고, 망가진 어가를 새로 수선하고, 노령청에서 쌀 30석을 가져와 밥을 안쳤다.

“국창(國倉:나라가 관리하는 창고)은 소인들이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어서 노령청에 있는 것을 가져왔나이다.”

인조와 신료들이 선화당에 들고, 내아에 대비와 비빈이 들고, 왕족과 비빈(妃嬪)들이 처소에 들었다. 수행 관리들은 동헌과 중군영을 사용하게 되니 비로소 질서가 잡혔다. 임시 궁궐이지만 궁궐같은 구색은 갖추었다.

그런데 이때 느닷없이 전라도 군사 3000이 몰려온 것이었다. 이몽학의 후신들에 놀란 이원익은 다시 깜짝 놀랐다. 이것들이 김덕령의 원한을 품고 올라온 것인가. 그는 전라 병사(兵使)의 전초관(前哨官: 부신(符信)의 출납과 사졸의 진퇴를 맡아보는 무신)에게 명했다.

“어떻게 군졸들까지 달려들 수 있단 말이냐. 군졸은 이인 땅으로 물러가 있고, 대신 병사(兵使:병마절도사의 준말)만 들라.”

군사들의 당장 퇴진을 명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정충신 전부대장의 전통을 받고 올라왔나이다,”

“정충신 장수라니, 무슨 하명이었더냐?”

“정충신 장수는 저희 고장 광주 출신이온데, 급히 군사를 모아 어가를 뒤따르라 하였나이다. 이괄의 협객이 달려들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인조가 놀라고 이원익도 놀랐다.

“마마, 과연 정충신답사옵니다. 평안도에 있어도 장만과 정충신이 수수방관할 사람이 아니지요. 이괄의 수도 입성을 저지하면서, 공산성에서는 전라도 군사로 하여금 지키도록 조치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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