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 변호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영화를 보며 사회를 읽다

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조커’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배트맨 시리즈 영화에서 배트맨의 천적이자 제일가는 악당인 조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코믹북에서 캐릭터를 빌려왔을 뿐 원작과는 다른 차원의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싶은 한 개인이 악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정신으로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달으면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담아낸 작품으로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쓰레기 더미와 슈퍼 쥐가 난무하고 극심한 빈부 격차로 분열된 상태에 있는 고담시와 광대분장을 하는 아서 플렉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작한다. 불안한 대도시의 상황 속에서 광대로 일하는 아서는 낡은 아파트에서 노쇠하고 병든 엄마와 함께 살면서 유명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토크쇼 방송을 보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평범한 서민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성인이 된 아들을 엄마는 ‘해피’라고 부르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지만 불시에 터져 나오는 발작적인 웃음은 상대방에게 불쾌감만을 줄 뿐이다. 이러한 병적인 웃음으로 사람들에게 무시와 외면과 모욕을 늘 받아야 했던 아서는 이로 인해 지하철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우발적인 살인 사건이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동기가 된 사건으로 미화되어 부자들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한 시민들을 격동시켜 도시는 분노로 불타오르게 된다. 아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게 된다. 성공한 코미디언, 즉 ‘조크(농담)하는 예술가’를 꿈꾸던 아서가 사회의 불만세력으로부터 ‘조커’라는 이름으로 수용되며 폭력과 광기어린 모습으로 변화되어 간다. 평생 존재감 없이 살아온 사람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사회가 ‘영웅’으로 반응할 때(영화에서는 망상증으로 표현되지만), 자신의 망상 속에서 연인과 가족과 우상이었던 사람을 하나씩 죽여나가는 근거가 되어 연이은 잔혹한 살인이 전개된다.

이 영화를 사회비판과 풍자에 바탕을 둔 사실적인 사회심리극으로 볼 것인가, 아니며 슈퍼히어로 대중오락물로 분류할 것인가는 관객 각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악인이 된 조커를 보며 ‘악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만들어져 간다’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경청과 공감에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경험하며 뇌 손상을 입은 아서가 정기적으로 상담소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상담소가 곧 폐업될 것이라는 통고를 듣게 된다. 클라이언트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상투적인 상담사에게 ‘진심으로 내 말을 들어준 적이 있느냐’며 반문한다. 직장 동료에게도 상담사에게도 가족에게도 공감받지 못하는 비극적인 현실은 그가 사회적으로 살인을 당한 상태임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하층민을 쓰레기와 슈퍼 쥐와 장티푸스로 빗대는 뉴스, 자신이 롤 모델로 삼았던 토크쇼 진행자의 비열하고 이중적인 모습, 어머니가 사실은 아동학대를 방치하였던 것, 잘 차려입은 부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를 보며 여가를 즐기는 장면과 고성이 오가는 시위 현장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영화 밖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조커’의 감독과 각본가가 역시 ‘연민과 공감의 결여, 예의 없는 사회, 그 환경이 조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빈부 격차의 문제, 부자들의 무지와 공감 능력의 결여는 올해 여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우리 영화 ‘기생충’에서도 똑같이 지적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 보여준 계급 갈등,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의 상실, 하층 계급에 대한 혐오와 계급적 트라우마는 사회의 모든 계급에 좌절감을 안겨준 불편한 영화였다. 이 영화 역시 계급 간 무너진 소통과 신뢰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조커’를 보며 어떤 이는 주인공의 어둡고 파괴적인 내면의 에너지가 담긴 아름다운 춤과 연기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이들은 ‘계급주의’나 ‘사회혁명’, ‘폭동’, ‘인민재판’, ‘좌우파’, ‘신자유주의’ 등과 같은 이념의 문제들을 찾아볼 수도 있다. 또한 망상이라는 정신착란을 겪고 있는 불행한 광대가 세상에 웃음을 주지 못하고 공포를 주는 악당의 탄생을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끊임없는 모순과 분열 속에 있음을 공감할 수도 있다.

짧은 가을날, 영화를 통해 타인의 생각에 공감하고 우리 사회의 암울한 부분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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