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50)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50)

이괄은 순간 기가 막혔다. 말귀 하나를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을 왕으로 모셨다고 생각되자 가슴에서 천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인성군 공을 왕으로 모시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어쩔 것인가. 어떻게든 믿고 밀어붙여야 한다.

“상감마마, 소관이 나가서 직접 장만과 정충신의 목을 따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되어서 묻는 것이오.”

“걱정일랑 놓으시고, 궁궐을 잘 지키기 바랍니다.”

이괄은 병졸 이십명을 풀어 궁궐을 지키도록 하고, 한명련과 이충길을 선봉으로 삼아 그 자신 창의대장이 되어서 경복궁을 떠났다. 성문을 나온 이괄이 뒤따르는 군사를 향해 명령했다.

“우리는 세 길로 나누어서 산을 포위하여 오른다. 서쪽 부대는 이충길이 이끌고, 동쪽 부대는 한명련이 이끌라. 나는 본진을 이끌고 중앙 진격로를 잡겠다. 나머지 병력은 도성의 백성들을 모두 동원하라. 싸움 구경을 나온 그들이 적에게는 군사로 오인될 것이다.”

인해전술로 적을 혼란스럽게 해야 한다. 한식경 후부터 백성들이 길마재에 이르는 길에 꽉 들어찼다. 그 사이를 이괄의 난군이 재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 광경을 안현 고개에서 내려다보던 정충신의 낯빛이 변해갔다. 저렇게 많은 군사가 위세를 부리고, 연도엔 응원부대가 새까맣게 깔려있으니 중과부적이라는 것이 단박에 느껴졌다. 이때 최응일이 부장이 막영지로 달려와 외쳤다.

“장군, 전라도 군사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뭣이? 전라도 군사들이?”

서강 쪽에서 수백의 군사들이 서편쪽 산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가 전라 병사에게 왕을 보위하라고 지시한 병력이 서울로 올라온 것이었다.

“어서 들라 이르라.”

나라가 위태로운 결정적인 순간에 전라도 병사들은 꼭 나타난다.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에서 왜군을 물리친 주력이 바로 전라도 군사들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안현전투에 합류하려고 올라온 것이다. 그들은 전라 병사(兵使) 휘하의 군사들이었다. 지휘관인 김판세가 정충신 앞에 와서 한쪽 무릎은 꺾고 한쪽 발을 반쯤 세운 뒤 창을 앞으로 내밀며 고했다.

“정충신 장군, 장군의 명을 받고 전라 병사 지휘 아래 근왕병으로 차출되어 공주에 당도했는데, 모함을 받고 전라 병사는 쫓겨나고, 저희 부대는 이시백 군사의 지휘 하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전라 병사를 추종하고 충성하는 군사들인데, 병사 나리가 엉뚱하게 오해를 받고 쫓겨나는 꼴을 보지 못해 올라왔습니다. 정 장군의 지휘를 받자고 불원천리하고 상경했습니다. 장군은 고향에서 이미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는 바, 정 장군 휘하에서 군사로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생각하고 달려왔나이다.”

“음, 그렇군.” 정충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판세를 일으켜세웠다.“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그런데 장군, 서강을 건너오는데 백련산과 안산 사이에 난군들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격퇴할 것이니 식량 보급을 부탁합니다.”

김판세는 이충길이 이끈 난군이 안산 서쪽을 타고 오르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 어서 가서 막아라. 군량 보급은 걱정하지 말라.”

전라도 군사가 숨돌릴 사이없이 산골짜기로 내려가더니 이충길 부대와 일합이 붙었다. 정충신은 보급부대를 동원해 밥과 반찬, 고기를 져나르도록 일렀다.

동편쪽 골짜기에서는 한명련이 이끈 동군이 안현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아직 본진과 동군이 갈리지 않고 섞여서 오르는데, 이괄의 곁에 바짝 붙어가던 한명련이 동풍이 불어오자 기세등등해져서 말했다.

“이괄 합하, 동풍이 거칠게 부는 것은 천우신조의 덕분이올시다. 저것들 연막탄 하나 피우면 꼼짝없이 당하겠군요. 화살 방향도 못잡고 쩔쩔맬 것입니다. 모두가 이괄 합하의 대운의 영향입니다.”

“그렇지. 내 천운을 타고나지 않았으면 어찌 대궐로 말을 달려 들어가겠소. 관군의 정예병은 모두 안산의 마루에 올라가 있고, 밑에서 불을 지피면 쌓아둔 집단에 불붙는 것과 같으니 저것들 모두 불고기가 되거나 훈제가 될 것이오. 장만이란 자는 홍제원에서 겁먹고 자빠져 있다고 하니 관군 장수 몇 놈만 고꾸라뜨린다면 저들은 좆빠지게 도망치거나 투항해올 것이야, 하하하.”

이괄은 마상에서 가슴을 한껏 앞으로 내밀며 당당하게 걸었다. 그가 각 부장들에게 명했다.

“북 한번 칠 때마다 적장 한 놈씩 목을 벨 것이며, 꽹과리 한번 칠 때마다 적병 일백을 잡으렸다!”

그 말과 함께 둥둥둥 전고가 울리고, 삐리삐리삐리 숨가쁘게 나각과 태평소 나발 소리가 퍼져나갔다. 안산 서편쪽으로 진출했던 이충길 휘하의 막료장이 이괄 앞에 헐레벌떡 달려왔다.

“장군, 서편쪽 진격로를 뚫던 이충길 부대가 전멸했습니다. 전라도 군사들이 부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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