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52)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52)

궁수들이 화살 촉에 독을 묻혀 활을 쏘았다. 화살이 빗줄기처럼 산 아래로 쏟아졌다. 반군 몇놈이 쓰러졌다.

“멈춰라.”

일단 한번 위협을 가했으니 그 다음 수순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과연 반군들이 숲 속으로 숨었다. 적의 정탐병이 부지런히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타고 넘는 모습이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적의 동태는 물론 도성의 시가지, 재 아래 사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충신이 건너편 둔덕에 군집한 인파를 보더니 전령에게 군령을 내렸다.

“도성 안의 모든 사민들은 근왕군이 한양 탈환을 위해 왔다는 방을 붙이고 오라. 장만 도원수, 정충신 전부대장이 이끄는 3만의 군사와 전라도 응원병이 길마재에서 적을 섬멸하기 위해 집결해 작전을 전개 중이니 탈환은 시간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알리기 바란다. 백성들은 정보를 잘못 알고 역적의 무리에게 협력할지 모른다. 근왕군을 돕지 못하겠거든 자중자애하도록 하라.”

연락병들이 네이, 대답을 하고 급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1624년 2월11일(음력) 묘시와 진시 사이, 빠른 사람은 아침을 먹었거나 게으른 사람은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구경 나온 백성들이 관군 군사들이 써붙인 방 앞에 모여들어 수군거렸다.

“어제는 이괄 군이 영은문으로 나오라는 방을 써붙이고, 오늘은 관군이 자기들한테 호응하라고 방을 써붙였네. 누가 역적이고 누가 충신인지 알 수가 없군. 어떻게 돼가는 세상이여?”

장안 사람들이 또 수군거렸다.

“우린 이기는 자의 편에 서야 하지 않겠나. 누가 이길 것 같애?”

“서로들 역적이라고 하니 두고 보자고. 좌우간 한쪽은 개창날 거고, 다른 한쪽은 나라를 집어먹는 것이지. 역적이 되거나 영웅이 되는 것은 중 하나 아니겠나.”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시덥잖은 헛소리는 그만하고 구경 한번 하세나.”

도성 사람들도 언필칭 타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긴 나라의 수준은 민중의 수준일 것이다.

이괄 군대 쪽에서 북을 둥둥둥 울리고, 깨갱깨갱 꽹과리 소리가 숨넘어갈 듯이 울리더니 본진의 수천 군사들이 기세좋게 재를 오르고 있었다. 군졸이 총으로 응사하려고 하자 정충신이 재빨리 제지했다.

“가만 있거라. 아직 때가 아니다. 거리가 좁혀져야 한다.”

아침의 찬바람이 재를 훑고 지나갔다. 2월의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찼다. 이괄이 큰소리로 외쳤다.

“저놈들이 잔뜩 겁을 먹었군. 전의를 잃은 것이 분명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니 송장처럼 늘어져 있을 것이다. 한달음에 올라가거라. 조반(早飯)거리도 안되는 것 상대하려니 내 손이 심심하구나. 주먹 꼴리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정충신이 바위 옆 마상에서 서슬이 퍼렇게 군령을 내렸다.

“북을 세 번 울리면 동남쪽 군사들이 즉시 방포하라. 주력 보군은 바위를 굴려라.”

방포하자 정충신이 일각도 안되어서 일시에 멎게 했다. 군사들이 싸우다 말고 왜 멈추라고 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북편 쪽에서 독전어사 최현이 길마재 아래로 한지를 동여맨 활촉을 날려보냈다. 반란 군사 한 명이 종이가 매달린 화살을 주워 이괄의 아우이자 반군 중군장 이양에게 갖다 바쳤다. 이양이 화살의 한지를 폈다.

-역적 괄은 나오너라. 오시오중(五矢五中:화살 다섯 개를 쏘아서 다 맞춤)하는 나와 맞짱뜨자. 네놈의 배꼽과 새알 같은 불알을 맞춰버리겠다.“

그것을 읽고 난 이양이 형 이괄에게 갖다 주는 대신 불에 꼬시르고 자신의 전복(戰服) 자락을 찢어서 글을 끄적거려 화살 끝에 동여맨 뒤 산꼭대기로 날려보냈다. 날아간 화살이 꼭대기에 도달했다. 화살이 꼭대기까지 날아간 것에 이양은 몹시 고무되었다.

“니깟놈들은 독안의 쥐새끼여. 내 화살 한방이면 눈을 잃을 것이다.”

날아온 화살을 연안부사 이인경이 주워 읽었다.

-정충신 보거라. 너는 병신이냐 충신이냐. 세가 강한 우리 군사에 붙어야 너의 입신출세가 보장되는데, 왜 지금까지 거기서 헤매느냐. 네가 정녕 이괄의 동지라면 지금 당장 내려와 항복하고, 새 임금께 벼슬을 받으라. 너는 이괄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마땅히 정승 자리를 줄 것이다. 거역하면 네놈 콩팥을 끄집어내 씹어먹을 것이다. 이양.

글이 하도 괴이하고 요상해서 이인경은 정충신에게 종이를 가져다주었다. 정충신이 글을 읽고 한바탕 껄껄떨 웃었다.

“입이 험하군. 하긴 니놈들도 입은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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