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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56)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56)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56)

이괄은 인왕산쪽 비탈길에서 부하들이 관군 중군장 김경운과 이희춘을 조총탄으로 쓰러뜨리자 전세를 뒤집은 듯이 좋아했는데, 한 순간에 남이흥 변흡 두 장수가 환도(環刀)를 휘두르며 달려들어 이들을 제압해버렸다. 이때 정충신 부대의 매운 재와 고춧가루가 살포되고, 전라도 군사들이 눈을 못뜨고 갈팡질팡하는 반군을 베니 공격선과 후퇴선이 일시에 무너져버렸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었다.

“똑같이 고춧가루를 뒤집어 썼는데도 저놈들은 끄떡없고,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했단 말이다. 무슨 조화란 말이냐.”

이괄이 도주하면서도 방방 떴다. 그러나 그것은 고춧가루 포대를 살포하는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하는 것과,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는 것과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는 반군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후퇴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조선왕조실록(인조실록 4권, 인조2년, 1924년 2월28일)에 따르면, 안현(안산) 고개 공방전은 묘시(오전 6시 무렵)부터 사시(오전 11시)까지 계속되어 적의 좌영장 이양이 죽고, 400여급이 도륙되었다. 1000여 적병이 부상을 당하고, 300백여 명이 생포되었다. 아군의 피해는 그 10분지 1에 지나지 않았다. 철저한 정밀 타격전과 고갯마루에서 화생방전(매운재와 고춧가루 살포)을 편 전술적 우위에서 얻어진 결실이었다.

계곡 아래에는 어느새 적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핏물이 강을 이루었다. 계곡의 구렁창에는 삭발해 승려로 위장한 윤인발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그는 형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낸 윤의립의 서질로서 젊었을 적 이괄과 친하게 지낸 사이여서 이괄의 난에 합류한 것인데, 채 학문을 펴지도 못하고 명분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이괄 군의 도성 입성을 인도했던 내응자 이욱 역시 정충신 수색대에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측결처분 되었다. 그는 이괄의 집안 동생으로서 품질좋은 갈색 애마를 흑색으로 먹칠해 숨기며 전선을 누볐지만 수색대의 눈을 피해가진 못했다.

이괄은 이들을 잃은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겼다. 이들이 곁에 있었다면 솟아날 구멍을 찾을 수 있었는데 졸지에 가버리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여기고, 도성을 빠져나와 수구문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충신 부대가 안현 마루를 내려오자 계곡에 있던 전라도 군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정충신의 명을 받고 패잔병을 수색하긴 했으나 죽이지 않고 무장해제 시켰다. 패잔병들은 죽는 줄 알고 목을 내놓았는데 하나같이 살려주니 감읍한 나머지 개선하는 정충신 전부대장을 향해 눈물로 하소연했다.

“장군, 우리가 앞뒤를 모르고 살았습니다요. 목숨을 살려주시니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장군을 따르겠나이다.”

“너희 잘못이 아니니 앞으로는 분별력있게 행동하기 바란다.”

정충신 뒤에는 어느새 이수일과 김기종이 따르고, 유효걸이 호위했다.

이괄은 친위대와 잔여부대가 집결하자 해시(밤 열시) 수구문을 벗어났다. 정예 기병만을 거느리고 떠나는데 여기저기서 불평불만분들이 쏟아졌다.

“보병은 지금 수레도 없소. 그렇게 빨리 도주하면 우리만 체포되라는 것이오?”

“그러니까 달려오란 말이오.”

“뭐가 어쩌고 저째? 네 발 달린 놈과 두 발 달린 인간이 같단 말인가. 그 병마 우리가 한번 타보자. 배고파서 이 이상 걷지도 못하겠다.”

잘 나갈 때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없었다. 예로부터 잘되는 집은 분란이 없지만 안되는 집은 잘 나가던 것도 무너지기 쉽다. 이괄은 군사들을 더디게 걷도록 하고 뒷 일을 생각했다. 함길도 산간으로 도망을 가나, 아니면 다시 군사를 재편해 도성을 공격해야 하나. 하지만 일단 무너진 군사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힘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가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심의 방향이다.

삼전도(三田渡) 북편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송파에 이르렀다.

“광주(廣州)로 가자. 광주에 산이 깊으니 일단 그리로 가자.”

경기도 광주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출몰하는 깊은 산중이었다. 일단 그곳에 숨어서 내일을 도모해야 한다. 이괄이 광주 남방 오십리를 달려 경안역에 이르니 광부목사 임회와 맞부딪쳤다. 그는 마침 잘되었다 싶어 그를 불러 닦달했다.

“쌀을 50가마니를 풀어라.”

“어디에 쓸 것인가.”

“보면 모르나? 군사들을 먹여야겠다. 군사들이 이틀을 먹지 못했다.”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반군을 먹이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네 이놈, 난군에게 식량을 준 벼슬아치가 어디 있다더냐?”

그렇게 말한 임회를 이괄이 그의 혀를 뽑아 칼로 잘랐다. 졸지에 쫓겨난 신세도 분한데, 일개 목사 따위가 패주를 알고 대들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그는 칼로 임회의 눈을 박고, 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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