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57)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57)
임회의 혀를 자르고 배를 가른 광경을 심복 이수백과 기익헌 이선철이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 멀뚱히 바라보다가 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쫓기는 이상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은 득될 것이 없다. 특히 관아의 벼슬아치를 해친다는 것은 필시 보복을 부를 것이다. 후환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풀이하듯 사람 배를 갈라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사태를 회의하기 시작했다.

한편 정충신은 부하 유효걸을 시켜 이괄을 추격하도록 지시했다.

“관군이 뒤쫓으면 도망자들은 필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흩어지면 판세는 우리 것이다. 그러니 줄기차게 뒤쫓으라. 현재 이괄을 수행한 반란군은 몇 명쯤 되는가.”

“보병 일백에 기병 이십 명 정도입니다.”

“발이 더딘 보병이 볼모가 될 수 있다. 기병부대를 2진으로 나누어라. 한쪽은 뒤에서 쫓고, 다른 쪽은 도주하는 그들 옆구리를 찔러 이괄의 보병부대부터 갈라쳐라. 바삐 움직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유효걸이 임지로 달려가 작전을 펴는 사이 반란군은 아닌게아니라 눈치를 채고 도망을 가고 있었다. 길을 달리고 나루를 건너면서 내빼는 반군이 속출했다. 그들은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때가 되면 산적이 되든지, 그것이 아니면 속세와 인연을 끊고 머루와 달래, 고사리를 꺾어먹으며 살아갈 작정을 했다. 이 풍진 세상 짊어지고 가기엔 세상이 너무 야비하다. 무지랭이 군사들에겐 너무 힘에 부친다.

서편 쪽에서 관군 기병이 으흐흐, 야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호군(胡軍) 오랑캐 같소이다.”

쫓기던 기익헌이 귀를 세우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후금군까지 들어왔다면 우린 볼장 다 보았소. 인조란 자가 왜놈 군대건 후금군이건 부른다고 하더니 그렇게 한 모양이군. 나라 꼴이 더 어지럽게 되었소. 쫓기는 신세니, 발붙일 곳이 없구먼. 더러운 세상이오.”

이수백이 분이 난 목소리로 탄식했다. 그는 자신들을 추격하는 부대가 조선군은 물론 후금군까지 가세한 것으로 판단했다. 관군 기병들인데, 그들은 모든 것을 극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괄은 밤이 이슥해서 이천 묵방리에 당도했다. 지친 몸을 지푸라기가 깔린 헛간 방에 누이니 만 잡사가 허무했다. 혁명이 왜 이렇게 구차하게 되어버렸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머리가 텅 빌 뿐,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허망했다.

문제는 계획성없이 성질대로 저질렀다는 것, 발기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 그리고 공명 공감을 받지 못하는 흥안군 제를 군왕으로 뽑은 것이 불찰이라고 생각되었다. 흥안군의 존재감은 너무나 미약했다. 인성군 공이라면 어느 정도 권위가 인정돼 백성들로부터 발기의 명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숨어버렸다. 이괄은 무엇보다 궁궐에 들어가 흥안군을 왕위에 앉히는 절차를 밟느라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해버렸다는 것이 통한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꼭 그것만이 실패 요인이 되는 것같지 않다.

-그래 맞다. 정충신의 전략에 말려든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다. 패착이 아니라 자멸이다. 정충신은 평안도 도원수부에서부터 밀린 듯이 꾸미면서 내 뒤를 따르면서, 그 사이 군비를 보충하고 전력을 확충했지. 내 군사들 진을 빼면서 결정적 승부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야. 마침내 안현 전투에서 최후의 일합을 겨뤄 승부를 내버리려 했던 것이야. 그걸 천하의 내가 간파하지 못했네. 에라, 미친 놈...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벽에 이마를 찧어 박살내고 싶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그의 뇌리에 또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아아, 그래. 다된 밥을 그르쳤지. 한양 궁궐을 접수할 것이 아니라 남행하는 인조를 쫓아가 그의 목을 노렸어야 했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야. 완전 전략 오판이야. 궁궐만 차지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궁궐은 빈 껍데기 뿐이었어. 왕이 있는 곳에 권위와 법도가 있는데 그것을 망실했어. 왕이란 국가의 상징으로서 백성 위에 의연히 서있는 것이니 그를 쳤어야 천하가 뒤집어지는 것인데, 그 생각을 못했어. 그게 결정적 불찰이었어. 그가 거적으로라도 살아있다면 백성들이 따를 것인데, 그것을 방기한 것이다. 아아, 이 천한 놈... 내 대가리가 그것밖에 안된단 말인가. 몇 수 위를 내다보는 정충신을 데려다 놓았어야 하는데, 그것이 실책이다. 내 운이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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