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35) ‘송치-미사치’ 구간(2019. 10. 3)
미사치 오르니 월출봉·백운산 능선 파노라마 보는 듯
수리봉~마당재 구간 비슷한 높이 밋밋한 길 이어져
갓걸이봉 가는 길 구절초가 암릉 사이에 만개 ‘유혹’
바위틈 부처손은 계속 내린 비로 측백잎처럼 푸르러

갓걸이봉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능선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 듯 하다.
암릉 사이에서 만개한 구절초.
바위틈서 자라고 있는 부처손.
‘송치-미사치’ 구간을 기록한 트랭글.
호두산 오르는 길에 친구와 한컷.
마사치 정상의 이정표.

어젯밤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큰 비가 오는 바람에 산행을 포기하고 늦게까지 음주를 했는데 7시에 일어나 보니 친구에게서 비가 갠다니 산에 가자는 문자가 와 있다. 급히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풍암동 촌놈포차 앞에 가서 차를 회수하여 운암동에서 친구를 태우고 송치재를 목표로 출발하였다. 송치재 근처에 이르니 태풍과 같이 내린 폭우에 산에서 쓸려 온 나무와 자갈들이 도로에 쌓여 있다.

송치재에는 세모에서 지은 큰 연수원 건물과 기차 1량이 놓여 있는데, 정맥 길은 위 건물을 우측으로 돌아 임도 길로 이어진다. 나중에 보니 근처의 풍력발전기를 건설하면서 낸 임도를 타고 쭉 올라오면 그 길이 정맥 길과 겹친다. 태풍이 지난 후라도 꽤 바람이 남아서 풍력발전기 날개가 괴상한 소음을 내며 돌아간다. 어제는 발전기 주인이 돈 좀 벌었겠다고 친구와 농담하며, 약간 섬뜩한 느낌까지 드는 풍력발전기 날개 아래로 이어진 임도를 지났다. 송치재가 280m 위치에 있어서 지도상 500봉, 570, 550봉에 오르기까지는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 다만 숙취의 영향으로 숨은 조금 가픈데, 다리가 알아서 잘도 올라간다.

오늘은 11km 정도의 산행거리라고 생각해 점심도 안 싸고 친구가 김밥 두 줄을 준비하고 나는 과일만 준비하여 산행에 나섰는데, 농암산(410m)에 이르러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30분이 넘었다. 배가 고파와 농암산을 막 지난 곳에서 길가에 퍼질러 앉아 김밥을 나눠 먹고 다시 힘을 내서 길을 가는데 장사굴재를 지나 500여 미터의 무명 봉우리를 넘고 나서 정상에서 무심코 우측 길로 가버렸다. 산 아래에 순천시 유스호스텔과 순천 자연휴양림이 있어서 정맥 길보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통에 아무 의심 없이 호두산 쪽으로 1km가량 진행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산길이 희미해져서 트랭글을 켜보니 죽청치가 아닌 호두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다. 결국 다시 발길을 돌려서 아까 내려 온 산봉우리를 다시 넘자니 숨이 깔딱거린다. 마침 백계남씨가 호두산에서 죽청치 쪽으로 산행하면서 붙여 놓은 리본이 두 개 보여서 리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산 정상에 오르니 왼쪽에 정맥 길이 뚜렷이 보인다. 1시에 죽청치를 통과하려 했는데, 합쳐서 2km가량 알바를 하다 보니 2시가 넘어서 죽청치에 닿았다. 다행히 갈림길에서 10여분 진행하니 비포장도로인 죽청치에 닿았는데, 여기에서 미사치는 6.8km라고 표지판에 쓰여 있다.

죽청치에서 바로 올라가는 수리봉(508m)까지는 실제로는 가파르지 않다. 아마도 죽청치도 400고지가 넘는 곳에 있는 모양이다. 원래 수리봉은 정맥 길에서 200m정도 벗어난 곳에 있는데 트랭글에서는 508고지에 수리봉 배지를 준다. 수리봉에서 마당재까지는 같은 높이의 밋밋한 능선 길이 계속된다. 마당재는 재라기보다는 능선 길의 작은 봉우리이고 이미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로 보인다. 마당재에서 ‘갓걸이봉’까지는 0.7km라고 쓰여진 팻말이 땅에 쓰러져 있는데 마당재 다음의 630봉이 ‘갓걸이봉’이고, 그 다음에 있는 688봉이 ‘갓꼬리봉’인 모양이다. 아니면 원래 ‘갓걸이봉’으로 부르던 것이 구전되면서 ‘갓꼬리봉’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오늘 산행의 최고봉이 688m인 갓꼬리봉과 그 다음에 있는 708m의 무명 봉우리인 만큼 마당재에서 줄곧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된다.

갓걸이봉에 이르는 길에는 구절초가 암릉 사이에 만개해 있고, 바위틈의 부처손은 계속 내린 가을비로 마치 측백잎처럼 푸르게 피어나 있다. 친구는 구절초 꽃잎이 차로 마시면 좋다고 꽃잎을 따기에 여념이 없다. 갓걸이봉은 위는 토산이지만 옆에서 보면 암릉 길이 뚜렷한 암산이다. 비지땀을 흘린 끝에 오후 4시가 넘어 갓걸이봉에 도착해 보니 태양광 전지판이 딸린 통신탑이 있고, 철책에는 리본들이 수 십개 매달려 있다. 광주 출신의 전설적 산꾼인 문규한씨의 리본도 보인다.

갓걸이봉에서 오늘 목표지점인 미사치까지는 2.0km라고 팻말에 쓰여 있다. 다행히 갓걸이봉에서 미사치까지는 완만한 능선 길이 계속되고, 다음에 가야 할 깃대봉, 월출봉 능선과 그 너머의 백운산 능선이 옆으로 끝없이 이어져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연봉들을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 내가 한국에 태어난 행운 중에 멋진 산들을 볼 수 있고 오를 수 있고 그 안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행운인 것 같다.

마지막에 미사치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어제 내린 비로 미끄러워 여러 번 슬립을 하였지만 스틱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스틱이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30도 정도 휘어지고 만 것이 피해라면 피해다.

오후 5시경 운동시설이 잘 갖춰진 미사치에 닿았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심원마을 쪽으로 내려오니 0.9km 지점에 포장도로와 황전터널이 있다. 114를 통해 구례구역전 택시(061-754-8755)를 불렀더니 10여분 후에 기사님이 도착한다. 그곳에서 송치까지는 꽤 거리가 먼데 택시비는 25,000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승주읍 파출소 옆에 있는 염소탕 집에 들러 배불리 염소탕을 한 그릇씩 먹고 하루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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