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대표 항구 도시’ 나주 영산포 옛 명성 되찾는다

1980년대 이후 포구 기능 완전 상실…‘쇠퇴의 길’ 걸어와

주민 주도 첫 ‘영산포의 날’ 제정…역사 재조명 작업 활발

근현대 역사문화 자산 활용…지역 경제·관광 활성화 도모
 

전남 나주지역 주민들이 호남의 대표 항구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영산포의 옛 영화를 재조명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사진은 지난 1981년 하늘에서 본 영산포 모습. /나주시 제공

호남의 대표 항구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나주 영산포(榮山浦).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이 바닷길과 통하던 시대, 영산포는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안 지역 대표 내륙 항구로 큰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지난 1981년 영산강 홍수피해 등 재해 방지를 위해 목포에 영산강 하구언이 준공됨에 따라 영산강 물길이 막히면서 영산포는 포구로써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는 줄곧 쇠퇴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그저 ‘영산중·고등학교’, ‘영산포여자중학교’, ‘나주시 영산동’ 같은 이름에서 옛 지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정도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영산포의 옛 영화를 재조명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올해 처음으로 영산포의 날 제정을 추진하는 등 영산포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이 다채롭게 펼쳐질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영산포의 날 추진위원회(위원장 이기준)는 지난 9일 전남 나주시 영산포여자중학교 강당에서 ‘제1회 영산포의 날 제정 기념식’을 개최했다./나주시 제공

◇‘옛 항구도시 영화 되찾자’

영산포의 날 추진위원회(위원장 이기준)는 지난 9일 전남 나주시 영산포여자중학교 강당에서 ‘제1회 영산포의 날 제정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나주시 영산·이창·영강동 등 3개동 주민들이 ‘영산포’ 주민으로 하나 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강인규 시장과 무소속 손금주(나주·화순) 의원, 신정훈·배기운 전 국회의원, 주민, 출향 향우 등 200여명이 참석해 영산포의 발전을 기원했다.

행사는 나주시립합창단, 팬울림공연, 옛 영산포 사진을 담은 추억의 영상 상영 등 식전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기념식 선언, 개회사, 시정발전 유공시상, 경품 추천 등으로 진행됐다.

부대 행사로 추진위와 출향향우들을 위한 영산강 황포돛배 승선체험도 진행됐다.

이기준 영산포의 날 추진위원장은 “이번 행사는 전라도의 대표 항구 도시인 영산포의 옛 영광을 되살리고, 재조명함으로써 영산포인의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1970년대 영산포 선창.

◇영산포 과거·현재

영산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영산강을 통해 중국, 일본 등을 잇는 해운의 국제적 해운 요충지였다. 특히 조선 초기 영산강의 수운(水運)을 이용, 한반도 남부지방의 전세(田稅)를 거둬 영산창(榮山倉)에 모았다가 서울로 다시 운반하는 조운(漕運) 기능을 수행했다.

조선 중종 때 이러한 기능이 영광 법성창으로 옮겨져, 영산창은 폐지됐지만 수운에 적합해 전라도 남해안 일대 산물 집산과 거래 중심지로서 상업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목포 개항 이후 1902년부터 일본인의 이주가 시작돼 시장터를 중심으로 원정(元町)이 형성됐고 강변을 따라 상업이 발달하면서 영산포 은좌거리가 호남선 철도 개통 이후 더욱 번성하게 된다.
 

영산포의 일본인 지주가옥.

영산포는 일본인들이 대거 진출한 만큼 그들이 남긴 일본식 건물들도 유난히 많다.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쌀 수탈 거점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와 조선식산은행, 일본인 지주가옥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도 일본식 건물들이 영산포 일대에 대거 남아 일제치하 수탈의 아픔과 역사를 있는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영산강에서 운항 중인 황포돛배.

영산포가 번성했던 시기의 정점과 현재의 상황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1970년대 이후 영산포는 목포에 영산강 하구언이 설치(1981년 완공)되면서 배가 더 이상 드나들지 않게 돼 포구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이후 다양한 지역적인 요인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됐고, 현재 3개 동을 합친 인구 수는 1만명이 채 되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1981년 영산포읍은 나주군 나주읍과 병합해 금성시가 됐고 1986년엔 금성시가 나주시로 변경되면서 ‘영산포’란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역민의 뱃길 복원운동이 시작됐다. 지난 2008년 5월 황포돛배를 재현한 목선 운항을 시작으로2012년 9월 영산포 선착장에서 고려시대 뱃조각을 바탕으로 복원한 왕건호(97t)가 운항되면서 영산포 뱃길이 다시 열렸다.
 

영산포 홍어거리 조형물.

◇코끝이 톡 쏘는 알싸한 맛 ‘숙성 홍어’

이런 가운데 영산포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숙성 홍어’다.

숙성 홍어의 유래는 고려말기 왜구들이 남해안 지역을 노략질하자, 흑산도 인근의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포로 피난길에 오르며 싣고 왔던 홍어가 발효되면서 유독 맛이 좋아 즐겨먹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산포 옛 선창거리에는 40여개의 홍어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영산포만의 숙성방법을 거쳐 식당에서 웰빙 요리로 만들어 내놓기도 하고, 도매로 다른 지역으로 넘기기도 한다. 영산포 옛 선창거리에 만들어진 홍어거리에 들어서면 알싸한 홍어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처음 온 이들은 코를 막고 찡그리지만, 대부분은 군침을 삼키며 식당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영산포홍어축제

영산포에서는 매년 노란 유채꽃이 필 무렵, 홍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는 4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영산강 둔치체육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15번째다. 홍어축제에서는 홍어의 톡 쏘는 맛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행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홍어거리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는 선착장에서는 황포돛배에 올라 1시간 동안 영산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도 있다.

중·서부취재본부/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나주/정도혁 기자 vsteel@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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