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4)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64)

“전하 보십시오. 강변에 도성의 온 백성들이 나와서 엎드려 성상의 귀환을 감격의 눈물로 환영하고 있나이다.”

“알고 있어.”

왕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자신도 벌써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과 꽹과리를 치며 환영하고, 깃발도 펄럭이고, 천세천세 만천세!도 외치며 환호해야 하는데 구경꾼만 모여든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았다. 그동안 고생한 것에 비하면 백성들의 반응이 뜨겁지 않은 것이다. 강을 건너온 한남도원수 심기원이 왕 앞에 꿇어 엎드려 고했다.

“상감마마, 행궁 살림에 얼마나 불편하셨습니까. 능력없는 장수들 때문에 상감마마의 안위에 걱정을 끼쳐드려 황공하옵니다. 하지만 다행히 난이 수습되었으니 안심하시고 국사에 전념하시게 되었나이다. 송축드리옵니다.”

왕은 잠자코 있었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모두 너희들 때문이라는 질책이 그의 심술 속에 담겨져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생했다는 치하의 말 한마디 없었다.

“마마, 강에는 얼음이 풀렸는데 아직도 물이 차갑습니다. 주상께서 타고 건너실 만한 배가 마땅치 않아서 급히 서둘러 다리를 놓았나이다.”

강에는 나무 뗏목을 엮은 다리가 가설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물속에 잠겨 양쪽에서 나무를 떠받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슴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자그마치 인원이 팔백이 넘어보였다. 깊은 강심에는 이십여 척의 배가 밧줄로 엮어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 너머 한강 북편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남안과 같이 수많은 백성들이 물에 잠겨 뗏목을 받치고 있었다.

“이렇게 엉성하게 만들어서 과인 옷이 물에 젖으면 어쩌란 말이냐?”

왕은 화가 치밀었다. 사실 그는 너무 빨리 한강에 당도했다. 도성 귀환을 얼마나 바랐으면 바람보다 빨리 왔을까만, 다리를 꾸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난리통에 모든 배들이 남한강, 북한강 깊숙이 숨어버렸기 때문에 이 배들을 징발하는 데는 적게는 닷새, 길게는 열흘을 잡아야 하는데, 임금은 공주행재소 출발 사흘만에 불시에 한강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얼음이 풀렸다고는 하나 2월의 한강물은 여전히 차갑다. 물속에 잠겨 뗏목을 부여잡고 있는 강쇠돌이(姜鐵石)는 속으로 씨부렸다.

“씨발, 백성들한테 해준 게 뭔데, 차가운 강물 속에 애먼 백성들 쳐박아두는 거야? 하루 막일 못하면 새끼들이 하루 굶는데,..”

그는 억울하고 분했다. 그 옆의 사내가 쇠돌이의 씨부렁거리는 소리에 화를 내며 맞받았다.

“너 누구한테 씨발이라고 했냐? 내가 니 발을 밟았냐, 쌍판대기에 물을 뿌렸냐? 똑같은 처지에 지랄하고 있어. 너 디지고 싶냐?”

그도 화가 나있었다. 그 역시 누구에겐가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이다.

“너나 나나 피똥 싸고 사는 건 매일반이야, 임마. 불쌍한 너한테 내가 미쳤다고 욕하겠냐? 세상이 개좆같은 게 그렇지.”

“그 말은 맞다. 우리 이게 축생과 무엇이 다르겠냐. 나는 시방 다리가 얼어서 감각이 없다.”

“그래서 투덜거린 거야.”

오해가 풀리자 그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힘없는 백성이 어쩌겠나. 좆으로 밤송일 까라면 가야지. 장정 한 천명 모으면 확 갈아엎고 싶고만. 백성들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너 디질라고 그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단 말이여.”

“이런 세상,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쩌겠냐. 좌우지간 저 새끼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니 한 목숨이라면 몰라두 처자를 생각하면 입주둥이 바늘로 꿰매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계속 불만이 싸인 얼굴이었다.

“인두교(人頭橋)를 믿고 과인이 건널 수 있겠나 말이다!”

그는 성질 같으면

“마마, 차가우실텐데 어서 건너셔야 하겠습니다.”

환도준비위원장인 윤방(좌의정)이 왕 앞에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왕이 빨리 건너가야 차가운 물속에 있는 백성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인주(人柱)가 튼튼하냐고 과인이 묻는다. 차가운 물에 과인 몸이 젖으면 어떡하려는고?”

이때 물속에 잠긴 백성 중 하나가 나뭇잎처럼 강 하류로 가라앉았다 떴다 하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뒤이어 또다른 백성이 떠가고 있었다. 차가운 물에 몸이 굳어 가라앉았다가 저만치 떠서 밀려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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