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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6)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6)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66)

“춥겠구나. 어서 나오거라.”

장만이 부축해주자 한 백성이 나오면서 감격에 겨워서 울었다. 그런 말 한마디에 백성들은 감읍하고 있었다.

“장작불을 피워놓았으니 어서 그리 가서 몸을 녹여라.”

장만은 한쪽 귀퉁이 군막에 물속에 잠긴 백성들 몸을 녹이도록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었다. 그가 다시 별도로 마련한 군막으로 왕과 왕실 가족들을 안내한 뒤, 장신(將臣)과 방백(관찰사)들을 인솔해 왕을 알현했다.

“전하, 무사귀환을 송축드리옵니다. 난을 평정하고, 걱정없이 정사를 꾸려가시도록 도성을 정리해 놓았나이다.”

“수고하였소. 그런데 안주목사 정충신의 얼굴이 안보이는군.”

왕이 장신들의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며 정충신의 모습이 안보이자 안색이 변했다.

“이번 난 수습에 정충신의 공이 컸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그가 안보인단 말인가.”

장만이 나섰다.

“상감마마, 정충신 전부대장은 도성이 수복되고 역란(逆亂)이 토평되는 것을 보고 급히 행장을 꾸려 평안도 안주 임지로 되돌아갔사옵니다.”

“아니, 나를 기다리지 않고, 안주로 돌아가다니?”


“싸우는 장수로서 싸움에 밀려 성상께서 공주 파천까지 하셨는데 무슨 낯으로 성상의 용안을 뵈올 염치가 있겠느냐며 임지로 되돌아가 사죄하겠다고 하였사옵니다. 물론 북방의 수호도 한시가 급해서 갔나이다.”

“과연 그의 충절이 충신이란 이름 그대로고. 어여튼 빨리 파발마를 띄워서 정충신을 궁궐로 데리고 오시오.”

파발이 띄워진 가운데 이윽고 왕의 행차가 시작되었다. 행차 의식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이런 때일수록 기품과 당당함, 왕의 권위를 보이려는 의도가 역력해보였다. 그래야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궁궐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도가(導駕:임금이 행차할 때 길을 쓸고 황토를 까는 일)가 길잡이로 나서고, 예조판서, 호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의금부 당상관 순으로 문무백관이 양쪽으로 나누어 섰다. 좌상(左廂:몸체의 동서 벽) 군사와 궁시대와 홍문대기(紅門大旗)들이 좌우로 갈라서고, 왼편에는 주작청룡기, 오른편에는 백호현무기가 섰다. 중앙에는 황룡기가 나부끼고, 그 뒤에는 금고대(金鼓隊)가 “뚱다당 뚱땅!” 울리면서 사기를 북돋았다.

이 자체만으로 보면 왕이 치욕스럽게 도망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꾸밈과 장식은 더 이어졌다. 금고대의 뒤를 이어 여섯 개의 정기(丁旗)가 좌우에 나누어 서고, 가운데에는 주작기가, 그 좌우에는 백택기가 강바람에 펄럭였다. 대오의 중앙은 열성(列聖:대대로 내려온 임금)의 위패가 따르고, 별장 열다섯이 또 이를 호위하고, 인로(引路) 열 둘이 푸른 옷에 자건을 쓴 모습으로 인도한다. 그 다음에는 왕권의 상징인 대보(大寶:귀중한 보물)와 시명(施命), 유서(諭書:왕이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등을 임명할 때 내리던 명령서)가 보따리에 싸여서 차례로 가는데 상서원(尙瑞院)의 관원이 조복(朝服: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는 예복) 차림으로 호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각기 각단기 용마기가 또다시 좌우로 나누어져서 중앙의 태평천하기를 호위한다. 현학기(玄鶴旗:금은 학의 깃발) 백학기가 좌우로 갈라서고, 여섯명의 취각군(吹角軍: 짐승의 뿔로 만든 악기)과 군고대가 삘삐리리 풍악을 울리고, 거기에 맞춰 금고대가 뚱다당뚱땅 장단을 맞춘다.

뒤이어 은안장마(銀鞍裝馬:은으로 안장한 말) 두 필이 또각또각 대지를 울리며 걷고, 옹골타자(熊骨朶子:붉은 칠한 나무로 곰처럼 장대를 만든 상) 여섯이 벌려서서 간다. 그 뒤에 또 문무를 상징하는 홍청의 영자기(令字旗:우두머리를 상징하는 깃발)이 좌우에서 가고, 가구선인기(駕龜仙人旗:왕의 행차 시 의장기의 하나로서 깃발의 가장자리에 청색 적색 황색 백색의 4가지 채색으로 불꽃 모양을 만든 깃발), 그리고 고자기(鼓字旗)와 금자기가 좌우편에서 펄럭이며 가고, 두 필의 장마(仗馬:무기를 호위하는 말)이 또 따른다.

왕의 행차 행렬은 이렇게 끝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행차 의례로 과시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길가에 나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끝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비겁하고 치사한 왕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렇게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저 도도한 행차에 모두가 압도될 뿐, 불평불만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한없이 우러르는 대상일 뿐이었다. 환도한 인조는 아침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늦은 식사를 마치고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그가 조정 대신들을 향해 물었다.

“정충신 들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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