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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0)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0)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70)

“응, 그래. 정 공이 투료(投?)를 하였군. 허면 장졸간에 일체감과 단결심이 생기는 법이지...”

투료란 부하에게 먹을 것을 고루 나누어 먹인다는 뜻으로, 부하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참군인 정신을 말한다.

“황공하옵니다. 옛날에 어떤 장수에게 술을 바치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그 술을 혼자 마시지 않고 흐르는 개울물을 큰 항아리에 퍼담아와서 한 됫박의 술을 쏟아부어 군사들과 함께 나눠 마셨다는 유래가 있사옵니다. 그래서 신이 그것을 흉내낸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못됩니다. 신 역시 개울물을 넘치게 독에 담아와서 두 되의 술을 쏟아부으니 술맛을 낼 수는 없었지만, 군사들이 신의 마음씨를 알아보고 마신 뒤 하나같이 따랐나이다. 개성에 이르러서는 개성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져왔고, 상인들은 개성 인삼 스무 근, 서른 근, 어떤 부호는 백 근을 가지고 왔나이다. 받기를 거부하자 상인들은 이괄에게도 빼앗겼는데, 어찌 내 군사에게 먹이지 않겠느냐며 한사코 맡기고 갔나이다. 승리는 신의 노력이라기보다 이런 백성들의 갸륵한 정신이 모아져 거둔 전과이옵니다.”

“거룩한 일이로다. 허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더냐?”

“신이 이것을 받아 모두 절구통에 빻아서 군사 일인당 다섯 수저 씩 분배해 전투 중 힘들 때 먹도록 하였나이다. 양이 부족할까 하여 군교(지휘관)에게는 배분하지 않았나이다.”

“군교가 먼저 먹어야 하는데 병졸에게만 먹였단 말이더냐?”

“그것이 군교의 도리이옵니다. 군졸에게 먼저 먹여야 하는 것이 군교의 책무입니다.”

“장수의 충의로고. 실로 장수된 자가 군졸을 다스리는 모범이로다.”

남이흥이 받았다.

“이러하니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오르고, 이괄 난군은 풀 속으로 뱀이 달아나듯 숨어서 도망가기에 바빴나이다. 저희는 반란군을 공격하는 사람이 되고, 반란군은 우리를 피하여 도주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쥐새끼처럼 어둔 샛길을 이용하여 달아났습니다. 아군은 큰 길에 미리 나가 목을 짚어 그들을 맞았나이다. 그런 중에 애절하게도 김경운, 박영서 중군장이 전사했나이다.”

“의절한 가운데 굴하지 않고 죽으니 장한 일이로다.”


임금이 감격에 겨워 말하자 정충신이 나섰다.

“광주목사 임회 또한 의사(義死:정의로운 죽음)했나이다. 부장 한효중의 말을 듣건대, 임회는 죽으면서도 적을 크게 꾸짖고 칼을 맞았다고 하옵니다. 끝까지 광주 고을을 지키며 분사(憤死)하였나이다.”

“그 또한 장한 일이다. 헌데 기라병이 성 위에서 구경하는 도민(都民:도성의 백성)을 향해 영기를 흔들어 불렀음에도 달려오는 자가 없었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당초에 오는 자가 없었사옵니다.”

남이흥이 대답하자 정충신이 말했다.

“적장 중 하나인 이수백이 정사(正士:의로운 사람으로 보살의 별칭. 정인리라고도 함)를 수검(手劍:칼로 사람을 베 죽이는 행위)한 것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반군이 영변에 있을 때, 이수백이 칼을 빼들어 선언하기를 하나라도 이탈하면 모두 베겠다고 하였다 합니다. 이 말이 도성에도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나서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수백은 의주별장이 되어서 이괄이 중히 여기는 군인으로서 이괄과 함께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기익헌도 처음에는 납지(비밀편지)로 몰래 내통하고 반란군과 상의하여 아군의 계책을 늦추게 하는 반역을 꾀했나이다. 그러면서 일부 반군과 합세해 수괴 이괄의 목을 베어온다고 하는 등 이중적 행태를 보였나이다.”

“천얼 출신으로 궁궐 재건과 조선(造船) 기술이 뛰어나 그 재주를 믿고 등용했는데, 그랬더란 말이냐.”

“그래서 이들을 베면 서북에서 온 군사들이 쾌사로 여길 것이옵니다. 이선철도 강동에 있을 때 도원수 어른의 전령을 배신하고 반란군에 합세했는데, 이 또한 영변에서 협박을 받고 합류한 자들과는 구별해야 할 것이옵니다.”

남이홍이 분통을 터뜨렸다. 정충신이 받아서 아뢰었다.

“이수백은 금부도사를 죽이는 계책을 도왔고, 이윤서·유순무 등을 협박하기를 오늘날 우리의 일을 따르면 살고, 따르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하면서 역적 이괄 부대에 합류시켰습니다. 역도 이선철은 적진 깊숙이 들어갔으나 기익헌과 함께 이괄 목을 베어 되돌아 나왔는데, 그런 자들이 유순무·이윤서·이신 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적중에서 도망쳐 온 그것을 살필 때, 역신과 충신의 기준이 모호합니다. 분명히 가려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한때의 적 유순무·이윤서·이신·이탁 등이 적중에서 원수부로 도망쳐 왔다. 이때 거느리던 군사 4천이 모두 흩어졌다. 진압 군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다행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역신과 충신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인조실록 4권, 인조 2년, 1624.1.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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