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2)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72)

역란(逆亂) 평정 1등공신에 장만, 정충신, 남이흥에 이어 2등 공신에 이수일 변흡 김경운 조시준 성대훈 김기종 유효걸 이희건 박상 등 9명이 선정되었다. 3등 공신에는 남이웅 김완 이휴복 최응일 김태흘 최응수 이락 이택 안몽윤 이우 신경원 이신 송덕영 김양언 오박 지계최 이경정 이정 문회 김광소 등 20명이 받았다. 그런데 이곳 저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신경원은 전쟁 중 도망간 자로서 처단해야 할 자인데 3등 공신으로 책봉되다니, 야료가 있다.”

말 많은 사람들은 신경진과 신경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안 형제이긴 하되 신경원은 전투를 하던 중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공을 세웠다.

“억울한 자는 이수일이다. 영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2등으로 깎인 것이다. 전공은 남이흥에 못지 않다.”

이수일은 임진왜란 당시 성주목사로 있을 때, 명을 어겨 장형(杖刑)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인자하나 완고한 이원익은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를 평가하지 않았다. 한번 잘못 보이면 끝까지 외면하는 것이 사대부의 권위의식이다. 그런데 또 엉뚱한 곳에서 사달이 났다. 부체찰사 이시발, 독전어사 최현, 김시양의 공훈이 제외된 것이다.

“이시발, 최현, 김시양은 문관이니 녹훈에 올리지 말라.”

무슨 일인지 임금이 이렇게 왕명을 내렸다. 문신이기 때문에 공신 서열에서 제외된다는 것인데, 조선의 무인은 문관이 겸무한 경우가 많았고, 지방 수령이 장수 옷을 입고 전투 현장에 투입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시발이 뻣뻣하고 건방져서 왕의 눈밖에 났는데, 이시발만 콕 집어서 제외시키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비슷한 문신들을 골라 녹훈에서 제외시켜버린 것이다. 이시발 때문에 다른 문신들이 불이익을 본 셈이다. 그런데 또 연말에는 반대로 문신 김기종, 남이웅이 공훈록에 책봉되었다.

“배경이 좋으면 없는 공도 생기누만?”

두 사람은 양초(糧草)를 모은 공은 있으나 활약상에 비해 정실이 작용했다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이렇게 녹훈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안주를 지키고 있던 정충신은 파발마를 타고 달려온 연락병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장군, 이조와 병조에서 급히 찾습니다. 지금 당장 궁궐로 가야 하겠습니다.”

정충신은 공신도감(功臣都監:공신을 선정하는 기관)이 그를 공신으로 선정한 것도 모르고 안주성 방어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이조(吏曹)로 달려가서야 그 자신 나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원훈(元勳)으로 봉해진 것을 알았다. 그가 크게 고개를 저었다.

“일에는 본말이 있고, 순서가 있소이다. 소관이 선봉에 서긴 했으나 편장(偏將)의 자격으로 나선 것이요, 총지휘에 방략을 다한 도원수를 제쳐놓고 원훈이 된다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니 받을 수 없소이다. 이조와 병조에서 허하지 않으면 성상께 상소하겠소.”

두 판서가 이를 임금께 아뢰었는데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이귀가 정충신이 주장하니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뜻이 있다고 하여 수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충신의 말을 들어주는 형식을 빌었지만 정충신을 엿먹이는 일이었다. 정충신은 섭섭한 내색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말했다.

“신이 선봉으로 참전한 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고, 후군(後軍) 남이흥은 뒷수습에 더욱 노력했으니 1등으로 책훈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정충신은 부장 지계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전라도 군사를 지휘해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지계최의 논공 또한 적지 않습니다. 3등급 아니라 2등급을 받아도 나무랄 사람은 없습니다.”

“지계최라고?”

“네. 전라도 군사를 지휘해와서 인왕산과 와우산 진지를 지켰습니다. 그 진지가 무너졌다면 이괄 난군이 아현고개를 돌아 서대문으로 쳐들어왔을 것입니다. 전라도 군사들이 목을 굳세게 지켜 이괄을 패주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계최의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신이 그의 용맹과 지혜, 학문을 높이 사서 휘하에 두겠나이다. 지 장수는 대대로 공을 세운 지용기, 지여해 선생의 후손으로서 전라도 광주 고을에서 뼈대있는 집안입니다.”

정충신이 왕과 장만 앞에서 녹훈문제에 관해 이렇게 간곡히 진언한 것은 처음이었다.

“고향 까마귀도 보면 반갑다더니 그런 자세가 갸륵하다. 하지만 한 사람 억울하다 하여 등급을 바꿔주면 다른 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그의 용맹성은 알고 있으니 훗날 반드시 더 큰 훈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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