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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기고-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

김종국 농촌진흥청 기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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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위원
한 겨울 찬바람에 꽁꽁 언 땅속에서 양분을 빨아 올려 하얀 눈꽃과 짙푸른 이파리 사이로 빨간 꽃을 내미는 나무가 있습니다. 꽃송이는 그리 크지 않아 단아한 한국 여인네의 아름다움을 닮았다고들 합니다. 장닭 벼슬처럼 새빨간 꽃이 남쪽 해안가 곳곳에 피는데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 합니다. 그리고 청렴·절조”입니다. 이 꽃은 낭자한 선혈처럼 멍이 들어 나무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한번 뽐내고, 빨간 융단을 깔아놓은 듯 꽃 송이채 떨어져 두 번째 꽃을 피우고, 꽃이 없는 추운겨울 여인네들의 가슴 속 언저리에서 세 번째 꽃을 피웁니다. 노란 황금빛 꽃가루방과 빨간 꽃잎이 너무 조화로운 우리 꽃 동백입니다.

이 동백은 1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이듬해 5월까지 핍니다. 그럼에도 동백(冬柏)이라고 불린 것은 동백이 겨울을 상징하는 꽃나무로 보여서 일겁니다. 다른 나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빨갛게 꽃을 피우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어서 일겁니다. 겨울철 내 고향 장흥에서는 수없이 피고 지는 동백꽃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피는 것이 고요하고 지는 것도 고요합니다. 고요는 결국 시간의 깊이입니다. 춥고 바람 부는 시간의 견딤입니다. 한 송이 동백꽃을 피우기 위해 긴 긴 시간들을 기다리며 엄동을 견뎌내는 동백의 인내와 고뇌를 생각하고, 그 깊은 의지와 속마음을 또한 생각해서 일겁니다.

이처럼 강인한 동백꽃을 자세히 보고 있자면 어쩐지 애닯고 서글프고 아련한 사랑이 연상됩니다. 국민가수 이미자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다며 섬 색시의 애련(哀戀)에 피 멍든 사연과 사무친 외로움을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했습니다. 동백꽃은 시들어 늙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화려하고 아름답던 그 모습 그대로 송이 째 뚝뚝 떨어뜨려서 보는 이의 가슴을 처연하게 합니다. 제 아무리 화려한 삶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종교의 교리와 맞아선지 주로 남쪽 사찰주변에 심겨져 있습니다.

흔히들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는 추운 겨울을 함께하는 절친한 세 명의 친구라 해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합니다. 잎도 꽃도 다진 삭막한 겨울에 나 홀로 피는 동백꽃은 추운겨울에도 스스럼없이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비유해서 세한지우(歲寒之友)라 부릅니다. 동백꽃의 조촐함이 매화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살을 에 이는 추운날씨에도 출렁이는 바닷물소리 들으며 빨간 꽃을 흐드러지게 달고 외롭게 서 있는 고결한 동백의 삶이 애틋해서 하는 말들일 겁니다. 국화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菊香萬里), 난은 자신의 향기로 온 집안을 채웁니다. 그러나 동백의 향기는 국화나 난보다 못해 주위를 유혹하지 못합니다.

내 유년시절 아랫동네 동백 숲에는 수십 그루의 동백이 줄 지어 있었습니다. 동백꽃이 필 때면 동네 또래들과 꽃을 따서 입에 물고 쭉쭉 빨면 달콤한 꿀이 입안으로 스며 들어옵니다. 할머니는 이른 새벽이면 동백 숲에서 까만 동백 씨를 주워 모아 소쿠리에 말렸습니다. 몇 년 전부터 노환으로 서울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은 경대 앞에 앉아 검은 머리에 동백기름 바르고 참빛으로 곱게도 빗어 내렸습니다.

봄을 향한 그리움으로 한 겨울을 가득 채운 동백은 동박새가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동박새는 이름부터가 동백에서 유래된 매우 작은 체구의 앙증맞은 새입니다. 동백은 벌·나비가 활동하지 못하는 계절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해줘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동박새도 꿀이 귀한 겨울철에 동백꽃에서 꿀을 먹을 수 있어 서로 공생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만물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삶도 동백꽃과 동박새 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화평한 사회가 됐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올 겨울 흰 눈이 소복이 쌓이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잠시 접어두고 내 고향 천관산의 동백 숲을 나 홀로 찾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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