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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7)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7)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77)

망고이태는 홍타이지, 아민과 함께 숙의에 들어갔다.

“강홍립을 불러오도록 하자.”

망고이태가 말하자 홍타이지, 아민이 동시에 머리를 저었다.

“강홍립 그 자는 조국을 생각하지 후금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비를 잃고 도망나온 한윤과는 다르지요.”

“그러면 한윤더러 설득하도록 해야지. 한윤의 아비 한명련과 강홍립은 임진왜란 시 막역지우였어. 진을 함께 하며 왜군을 물리친 공적이 있단 말이야.”

다음날 망고이태가 한윤을 불렀다.

“우리는 너의 투항을 의심하고 있으나 진정성을 믿고 융숭하게 대접했다. 조선을 치자는 것은 진심인가?”

“그렇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인조 일당을 쳐서 조선을 살리자는 것이지요. 내 힘이 부족하니 후금의 힘을 빌리고자 하오이다. 그러면 후금과 조선은 형제국이 될 것이오. 이럴 때 후금도 꽁무니가 불안하지 않겠고, 자신감을 갖고 명을 칠 수 있지요.”

“단순히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말해보라.”

“나는 인조반정의 부당성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후금)을 배척하고, 지는 해(명)를 받드는 것은 국익상 맞지 않소. 광해 시절로 돌아가야 하오. 후금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현재의 조선 신료로는 되지 않소. 내가 귀국에 온 것은 아비의 원수를 갚는 일방, 귀국과의 맹약으로써 조선과 후금의 안녕과 번영을 도모하자는 두가지 임무 때문이오.”

“이 목표를 이루려면 강홍립을 선봉에 세워야 한다. 우리로서는 조선의 길 안내자가 절대로 필요하다.”

한윤도 강홍립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를 통해 아비를 추억하고, 아비의 활약상을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며칠 후 망고이태의 주선으로 한윤, 강홍립 두 사람이 술자리에 마주앉았다.


“절 받으십시오. 아버지 친구를 만나니 소인 아버지를 뵈온 듯 가슴이 저립니다.”

“아버지가 화를 당하셨다지?”

수척해진 얼굴이었으나 강홍립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났다.

“배신자에게 칼을 맞았습니다. 원수를 갚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피맺힌 한이 있습니다.”

“나는 조선 궁궐 사정을 잘 몰라.”

강홍립은 심양의 소릉(昭陵:오늘의 북릉) 북편에서 연금 상태에 놓여있었다. 소릉 축조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군사 수백 명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소릉은 후금이 도읍으로 정하기 위해 심양의 북쪽에 대대적으로 축조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중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 능원이 되었다. 능묘 앞에는 황색 유리기와로 된 아름다운 전각이 솟아있는데,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만주족 수장의 기개를 드높이는 상징물이 되었다.

“만주족을 만인이라고 보았는데 이들의 나라 사랑은 참으로 갸륵하다. 누르하치가 승전한 것을 비롯하여 사르흐 전투에서 패배한 것까지도 비석을 세워 기리고 있다. 초소에서 일하던 강아지를 기리는 비석까지 있다. 왜에 빌붙어 한 목숨 구걸하고, 얻어먹을 것이 없나 하고 비르적대는 조선 사회와는 달라. 우리가 똑바로 보아야 한다. 대국이 그냥 대국이 아니다.”

강홍립은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후금 왕자들이 그를 조선 공격의 선봉으로 세우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윤은 어떻게든 그를 끌어들여야만 했다.

“소인은 선친과 강 장군이 왜란 때 많은 전공을 세우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자네의 춘부장(春府丈)은 정기룡, 김덕령과 함께 돌격형 장군으로 평가를 받은 용장이었지. 병사들과 동거동락하여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높았고, 무예에 능하여 앞장서서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네. 그런 사람이 운을 잘못 타고 나서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나도 애석하게 생각하네.”

그런 말을 들으니 한윤은 더욱 억울하고 분했다. 강홍립이 추억에 어린 듯 담담하게 다시 말했다.

“자네 춘부장은 변장(邊將:첨사,만호,권관의 총칭)과 수령 중에서 가장 잘 싸운 사람이었어. 선조대왕이 윤두수에게 왜란 중 누가 잘 싸웠느냐고 묻자 ‘한명련을 비롯해 김덕령?선거이·홍계남·정희현·권응수·백사림이 역전의 용장들’이라고 했네. 우의정 이원익도 ‘군대가 40∼50인 뿐인데도 한명련이 나타나면 승리로 이끌었다’고 했어. 당상관의 신분으로서 졸오(卒伍)와 같이 처신하여 진흙밭을 뛰어다니기도 하였는데, 다른 당상관들이 비웃을 때, ’너희가 전쟁 맛을 알아?‘ 하고 오히려 호통쳤네. 그래서 정충신처럼 막중한 북방 변경을 지키도록 구성순변사로 보냈던 것이야. 그런 사람이 졸지에 가버렸으니 안타까우이. 못된 신료들을 부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그렇다면 친금파인 정충신 장군과 연을 대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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